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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다 테츠오] 현대 일본에 자리잡은 무로마치室町 시대 식문화 역사



  하루 세 끼 식사 관습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생겼다?

  무로마치 시대(1336~1573)는 고대나 겐페이 쟁란 시대, 남북조 내란 시대, 전국시대, 그리고 막부 말기 ~ 유신 시기에 비해 아무래도 수수하여,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이렇다 할 것 없이 200년이 넘는 세월이 담담히 흘러가 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곤 한다. 그러나 사실 무로마치 2백여 년은 현대의 우리들 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대였던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다룰 부분이지만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차茶, 꽃꽂이お花, 정원庭, 그리고 노能와 쿄겐狂言 등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들인데, 이러한 특색을 갖춘 문화적인 면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 중 상당 부분도 무로마치 시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지적하려 한다.

  방금 본인은 '일상생활 중 상당한 부분'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래서는 너무나 막연하기 때문에, 의, 식, 주 각자의 분야별로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자. 가장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 곳은 식생활 관련이므로 여기서부터 시작하겠다.  

  "일본인이 아침식사 / 점심식사 / 저녁식사, 이상 하루 세 끼를 먹게 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를 놓고는 여러 설이 존재하는데, 가장 유력한 학설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지 모르나 그 이전 시대의 일본인들은 하루에 두 끼(아침식사 / 저녁식사)만 먹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오늘날의 관습과 동일한 생활리듬은 무로마치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들도 무로마치 시대에서 비롯된 것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무로마치 시대의 선종 사원禪宗寺院에서 비롯된 정진요리(精進料理, 역주 : 육류ㆍ어류ㆍ난류 없이 만들어낸 사찰요리)가 현재 일본요리의 뿌리가 된 케이스는 각별한 것이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나가노 현 젠코사善光寺의 정진요리(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대표적인 사례로는 두부 요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쿄토의 난젠사南禪寺와 그 주변에서는 지금도 맛있는 두부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이곳의 다양한 조리법에는 감탄하게 된다.



오늘날 시판되고 있는 난젠사 두부(출처 : 타베로그)


  두부 그 자체도 무로마치 시대가 되어 널리 전파되었던 듯, 문헌학적으로도 분안 원년(1444)에 만들어진《카가쿠슈下學集》라는 중일사전漢和字書 음식편에 두부가 거론된 것이 최초였다고 여겨지고 있다.《카가쿠슈下學集》를 편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산五山 선승들이 지었다고 일컬어지므로, 선종 사원의 요리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짐승의 고기나 새의 고기를 위시한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정진요리라는 것을 강조한 음식으로 간모도키雁擬き가 있다. 두부에다 다진 채소를 얹고서 얇게 감싸 기름에 튀긴 후, 여기에 양념을 더해 다시 쪄낸다. 이 음식의 색깔과 모양이 기러기 고기를 얇게 저민 것과 닮았다고 하여 '간모도키(기러기를 모방하다)' 라는 이름이 태어났다고 한다.


간모도키(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튀김두부 / 구운 두부 등, 두부를 재료로 삼은 음식들은 많다.

  두부와 마찬가지로 낫토納豆도 무로마치 시대부터 문헌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낫토라면 이토히키낫토(糸ひき納豆, 역주 : 실같이 늘어지는 낫토)를 가리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과자의 일종인 아마낫토甘納豆를 떠올리실지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종류인 시오낫토塩納豆도 잊으시면 곤란하다. 오히려 선종 사찰에서는 시오낫토 쪽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시오낫토(출처 : 일본 야후 쇼핑몰)


  오늘날에도 쿄토 다이토쿠사大德寺의 낫토는 유명하며, 시즈오카 현静岡県 밋카이치쵸 다이후쿠사大福寺의 하마나낫토浜名納豆도 명성이 있다. 발효된 대두大豆를 소금물에다 재운 후 다시 이를 건조시킨 음식이다. 산초와 생강을 첨가하여 독특한 맛을 가미하며, 그 제조법은 이들 선종 사원에서만 비밀리에 전수시켜 왔다.

  유바(湯葉, 역주 : 두부를 가열할 때 표면에 응고되는 막. 요리에 사용) / 후(麩, 밀기울)를 사용한 요리들이 보급된 것도 무로마치 시대였다.

  그런 한편으로 미소(味噌, 된장)와 쇼유(醬油, 간장)가 일반화된 것도 무로마치 시대 이후이다. 미소는 일본인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중시되어 왔으나, 카마쿠라 시대의 단계에선 나메미소(嘗味噌, 밥반찬용 조미 된장) 정도로,《츠레즈레구사徒然草》에서 작은 접시에 놓인 이 미소를 곁들여 술잔을 나누는 묘사가 그려졌듯, 현재의 미소와는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들이 이용하는 형태의 미소가 일반화된 건 무로마치 시대로 접어든 이후로, 미소를 물에 푼 후 여기에 야채 / 생선 / 조류 고기 등을 첨가한 미소시루(味噌汁, 된장국)가 보급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갖가지 영양소를 국그릇 하나에 집약시킨 미소시루가 일본인의 건강을 지켜주었다, 고 지적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일반적인 미소시루(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쇼유가 제조 / 이용되어 온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카마쿠라 시대 초기, 중국의 경산사徑山寺에서 만드는 미소 제조법이 키슈 유아사紀州湯浅에 전해졌는데, 그 제조과정에서 발효통 바닥에 생기는 액체가 찜 요리의 맛을 내는 데 어울린다는 걸 발견한 사람들이 이를 개량해나간 끝에 유아사 타마리 쇼유를 양조하는 데 성공, 쇼오正応 시대(1288~1293)에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이시카와 히로코石川寬子 편저《食生活と文化》) 쇼유가 발명된 건 카마쿠라 시대 말기로, 보급된 건 무로마치 시대였다는 말이다. 사실《분메이혼세츠요우슈文明本節用集》에서 '쇼유' 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다.

  미소와 쇼유, 둘 다 일본요리의 맛을 내는 데 기초적으로 사용되는 것들로, 이들이 무로마치 시대를 출발점으로 점차 보급되어 갔다는 점은 보다 중시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그 외에도 소면索麵과 우동이 보급된 것도 무로마치 막부 시대로, 이 음식들도 모두 선종 사찰들의 요리에서 비롯되었다. 


출처 :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日本の歴史がわかる本 室町ㆍ戰國 ~ 江戶時代 篇》
p.14 ~ 17. 三笠書房, 1991.

 

덧글

  • 도연초 2017/03/18 20:54 # 답글

    1일3식이 기존 학설에서는 센고쿠(아즈치모모야마)~에도초기로 잡는데 의외로 시대가 앞당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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