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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다 테츠오] 히노 토미코日野富子는 악녀였는가? 역사



  토미코 악녀설은 진실인가?

  오닌ㆍ분메이의 난応仁ㆍ文明の乱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언급되는 사람이라면 쇼군 (아시카가足利) 요시마사義政의 부인인 히노 토미코이다. "토미코가 요시히사義尙를 악착같이 차기 쇼군으로 추대하려 하지 않았다면 오닌ㆍ분메이 난은 안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라는 주장은 자주 접하곤 한다. "난리통에 적敵들을 상대로도 돈놀이를 한 괘씸한 여자" 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그녀에겐 악녀의 레테르가 붙여져, 역사잡지 특집으로【일본사 10대 악녀】같은 기획기사가 집필되면 히노 토미코는 반드시 그 중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히노 토미코는 악녀였던 것일까? 악녀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경우 그녀의 "악업惡業" 으로 세상에서 언급되는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기로 하겠다.

  (1) 쿄토로 들어가는 일곱 입구에 관문을 설치하여 통행세를 징수했다.
  (2) 고리대금업을 벌여 슈고다이묘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더 나아가 적 측 무장들 상대로도 돈놀이를 했다.
  (3)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 곧장 죽어버린 걸 요시마사의 측실인 이마마이리노츠보네今參局의 저주 탓으로 돌려, 섬으로 유배보내진 이마마이리노츠보네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4) 자기 자식인 요시히사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퍼부어, 그를 차기 쇼군으로 앉히기 위해 오닌ㆍ분메이의 난을 일으켰다.

  분명, 이만한 "악업" 들이 전해지는 대로 모두 사실이라면, 토미코 악녀설을 부정하는 건 힘들지도 모른다.

  우선 "일곱 입구에 관문를 설치" 한 것은, 관문을 설치하여 통행세를 걷는 게 당시 사회에서 일반적이었는지, 아니면 지극히 특수한 행위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효고키타칸이리후네노쵸兵庫北関入船納帳' 를 다룬 바 있는데, 이는 효고 항구에 토다이사東大寺가 설치한 관문으로, 그곳에서 통행료를 징수하였다.

  당시 항구나 하안川岸에는 여러 개의 관문이 설치되었는데, 예를 들면 쿄토와 오사카 만을 연결하는 선박 운송의 주요 루트였던 요도가와 강淀川 연안의 경우, 카와치 지방河內囯에 설치된 것만 쳐도 무려 616개의 관문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쿠게(公家, 역주 : 일본 조정 귀족)나 사원寺社에서 설치한 것으로 육상교통 쪽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쿄토로 들어가는 나가사카구치長坂口 / 아와타구치粟田口에는 야마시나 가문山科家이 관문을 설치하고 통행세를 걷었으며, 쿠라마구치鞍馬口에는 마데노코우지 가문万里小路家이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관문을 설치하였었다.

  토미코가 분메이 12년(1480) 9월, 쿄토로 들어가는 7개의 입구에 관문을 설치한 것도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편승한 것으로, 딱히 '악업' 중 하나로 간주될만한 일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여자이면서", "여자 주제에" 그렇게 했기에 '악업' 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래서는 명백한 여성멸시적 발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토미코가 이 때 관문을 설치한 건 오닌ㆍ분메이의 난에 의해 황폐화된 조정 궁궐 수리를 위해서라는 명목도 갖추고 있었다.


  '우둔한 남편' 을 둔 아내가 해야만 했던 일

  두 번째는 고리대금업 행위인데, 고리대금업 자체를 '악업' 이라고 단정한다면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돈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사복을 채우고, 자기만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려고 한 것이라면 비난할 만 하나, 토미코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는 고리대금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국가예산에 충당하고 있었다. 오닌ㆍ분메이의 난에 의해 전국이 황폐해져, 막부는 종래와 같은 수입을 거둘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지출은 당연히 나가는 것으로, 이 때문에 토미코가 수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고리대금업을 한 측면이 존재한다.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초상화


  그리고 그 배경에는, 허우대만 멀쩡한 쇼군이었던 요시마사가 정치업무를 내팽개쳐버린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알기 쉽게 빗대자면 '우둔한 남편을 둔 아내가 필사적으로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과 비슷하다. 나로서는 요시마사를 비난할지언정 토미코를 비난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 다음인 이마마이리노츠보네 건도, 억울하게 책임을 덮어쓴 것이라 본인은 생각한다. '이마마이리노츠보네가 저주를 했다' 고 토미코가 참언讒言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증거가 불충분하고, (유배지인) 비와 호琵琶湖의 오키노시마沖島에 암살자를 보내어 살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위 혐의을 부정하고 이마마이리노츠보네가 도중에 할복자살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정치와 여성》)

  마지막 이유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쇼군의 정실인 자신이 낳은 아들이 쇼군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건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리라. 근본적 원인은 역시 요시마사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있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간주하고 있다.

  토미코가 악녀로 간주된 것은 역시 '여인의 정치' 를 부정하는 풍조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귀여운 아내상을 미덕으로 간주하던 가부장적 가족제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에 간여하고 직접 정치에 나서는 여성은 악녀가 된다. 그 가치관에 의해 토미코 악녀설이 부상한 것이리라.

 
출처 :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日本の歴史がわかる本 室町ㆍ戰國 ~ 江戶時代 篇》
p. 61 ~ 65. 三笠書房, 1991.
 
 

덧글

  • 도연초 2017/03/18 20:51 # 답글

    1. 히노 도미코가 수전노라고 욕먹으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이유중 하나가 오닌의 난으로 인해 작살난 황거를 복구하기 위한 것도 그 중 하나라더군요; 하지만 세간에는 남편 유흥비로 탕진된다는 카더라가 퍼져서 저런 오해를 산 게 아닐까 하는...

    2. 게다가 저 시점이면 이미 나라의 세금 수입은 개쪽이라(알짜배기인 세토내해의 상권을 장악한게 쇼군가가 아니기 때문) 요시마사도 할만큼 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기에 결과론적으로 지나치게 비판받는 게 아닌가 하는 평가도 있고요.

    3. 더구나 당대 여성 중에서는 의외로 학식이 풍부한 여성이었다는군요(그녀의 은사가 무려 관백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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