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문예춘추 Special》시진핑習近平의 굴곡진 전반생 (下) 뉴밸



  이 글은 일본의 거대출판사인 분게이슌쥬文芸春秋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삼아 3달에 1번씩 계절별로 출간하는 잡지인《文芸春秋 Special》의 2016년 여름호 p.88 ~ 98, 시바타 테츠오柴田哲雄 아이치가쿠인대학 교수님께서 집필하신《시진핑 비록 - 독재자가 보냈던 동굴생활를 번역한 글입니다. 집필된지 6개월이 넘어가는 글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바타 테츠오柴田哲雄>

  1969년 나고야 시에서 출생. 화둥 사범대학에 유학한 후, 쿄토대학 대학원 인간ㆍ환경학 연구 박사 후기과정을 단위취득하고 퇴학했다. 박사博士. 주된 저서로《시진핑의 정치사상형성》(彩流社) /《중국 민주화ㆍ민족운동의 현재》(集広社)등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가르침

  이렇게 가혹한 문혁을 체험했음에도, 시진핑이나 보시라이들은 문혁과 마오쩌둥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훗날, 당 위원회 서기가 되어 충칭시重慶市에 '군림君臨' 한 보시라이는 대중을 동원하여 마오쩌둥 시대의 혁명노래를 부르게 하거나(창홍唱紅), 마피아를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대중의 갈채를 의식한 억압정치를 펼치기도 했다.(타흑打黑)

  이러한 대처는 2012년,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수상으로부터 "문혁의 재림" 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앞선 2010년에 충칭을 시찰한 시진핑은 이 '창홍타흑' 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시진핑의 입장상 보시라이는 최대의 정적이었으나, 마오쩌둥과 문혁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는 점에서는 오히려 보시라이와 통하는 게 있었던 듯하다.

  2013년 1월, 시진핑은 "두 가지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兩個不能否定" 고 연설하면서, 개혁개방 이후의 역사관으로 그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금으로선 부정당하고 있는 문혁을 재평가하려 한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근년에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삼아 이들에게 서민들과 직접 접촉할 것을 요구하는 '대중노선 교육 실천활동大衆路線敎育實踐活動' 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마오쩌둥이 1940년대에 옌안延安에서 벌였던, 문혁의 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풍운동(整風運動, 공산당원들의 사상개조를 지향한 운동)' 과 유사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 있어 문혁은 어떠한 것일까? 앞에서 서술한 대로 그들은 유소년기부터 양친과의 접촉이 빈곤했고, 공산당 교육시설에서 길러졌다. 이곳에서는 마오쩌둥이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그들에게 문혁이란 건 말하자면 '마오쩌둥 신앙에 대한 시련試鍊' 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진핑도 보시라이도 그 시련을 훌륭히 통과하여, 문혁이 끝났을 무렵에는 "마오쩌둥의 마음에 합하는 공산주의자" 가 되어 있었다. - 이 점이 그들의 사상형성 과정을 되짚어봤을 때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스트레이트한 해석이라 생각된다.    

  "마오쩌둥의 마음에 합하는 공산주의자" 라는 건, 말하자면 대중에게서 배우고 / 대중과 함께 걸어가는 공산주의자를 가리킨다. 보시라이의 '청홍타흑' 도, 시진핑의 '반부패투쟁' 도,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이 정책은 권력 탈취를 노린 수법이란 일면도 가지고 있으나, 그런 동시에 그들이 물들어있던 정치적 이념 그 자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와 대극을 이루는 건 시진핑의 아버지ㆍ시중쉰習仲勳이 말년에 보인 행보이다. 1970년대 말에 드디어 명예회복에 성공한 시중쉰은 개혁파의 리더적 존재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을 지지하며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에 힘을 쏟았다. 민주화를 지향한 정치개혁은 개인숭배를 강요한 마오쩌둥 체제를 근저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활발히 일어난 학생들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도 후야오방과 마찬가지로 이해심을 보였다. 그 뿐만 아니라 공식석상에서 덩샤오핑의 은퇴를 넌지시 권유하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후야오방이 실각하면서 시중쉰도 좌천되었으나, 만년에 들어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개혁파 성향의 잡지인《옌황춘추炎皇春秋》를 후원하는 등 여러 활동을 계속한 바 있다.

  얄궂은 일이지만 이《옌황춘추》에 대해 시진핑은 지금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진핑은 정치성향으로는 친아버지인 시중쉰보단 마오쩌둥의 '아들' 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추어 작가와의 교류

  작금의 반부패투쟁이 시진핑의 권력강화와 집중화를 목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단순하게 권력투쟁만이 시진핑의 동기라고 간주해서는 사태를 잘못 받아들일 위험성이 존재한다. 만약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었다면, 부패를 적발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선에서 멈추는 쪽이 더욱 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패적발 움직임이 끝없이 확산되어, 지금에 와서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크나큰 원한을 사버렸고 시진핑 암살계획까지 그럴듯하게 흘러다니는 상황이다.   

  시진핑의 반부패투쟁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대중과 함께 걸어간다" 는 이념에 의해서도 지탱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려 하는 건, 젊은 시절의 시진핑과 작가作家인 자다산賈大山의 친밀한 교류다.

  문혁 말기인 1975년, 시진핑은 공농병학생의 일원工農兵學員으로 시험도 치르지 않고 명문 칭화대학淸華大學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의 연줄을 타고 중앙 군사위원회 변공청中央軍事委員會弁公廳의 비서(일본의 경우 방위대신防衛大臣의 비서관 지위)로 취직하여, 중앙 군사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장이었던 겅뱌오를 모셨다.

  그러나 시진핑은 20대 후반에 이르러 이 화려한 지위를 그만두고 허베이 성河北省 정딩현正定縣이라는 벽촌에 부임하였다. 자다산은 이 정딩현의 문화관에 근무하면서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해나갔지만, 일평생 한 권의 소설 단행본도 출간하지 못한 일개 아마추어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처지는 너무나도 격차가 심했다. 그러나 시진핑에 따르면 첫 만남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알고 지낸 벗과 같이 화제가 마를 때가 없었다." 고 한다. 그러한 교류는 1997년에 자다산이 병으로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시진핑은 자다산의 질병 치료비를 대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후에는 추도문까지 작성하었다.

  시진핑은 자다산에게 다가간 이유에 대해 자의 소설이 "농담과 유머감각이 있는 언어, 명철로 가득한 분석, 꾸밈없는 우아한 묘사, 정교하고 세련되며 교묘한 독자적 플롯에 언제나 경복했기 때문." 이라고 술회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자다산 소설의 테마가 농촌을 무대로 삼아, 서민을 괴롭히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일삼는 간부를 펜으로 단죄筆誅하며, 대지에 뿌리박고 고결하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그들의 편에 서서 윗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간부를 칭찬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공산당원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0대 초반, 푸젠성福建省으로 옮겨간 시진핑은 후야오방의 실각에 따른 아버지의 좌천에 연좌되어, 푸젠성을 대표하는 경제도시 아모이厦門를 떠나 닝더 지구寧德地區라는 빈곤한 지역으로 좌천되었다. 여기서 시진핑은 마치 자다산 소설의 세계를 지상에서 실천하려는 듯, 현지에서 2천 명에 달하는 간부들의 부패를 철저히 적발하였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반부패투쟁' 의 원점을 여기서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시진핑의 권력욕은 어떤 '이상주의' 에 의해 채색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과 터럭만큼이라도 상이한 것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좁은 도량을 보이는 것이다. 과거 일본에서 이상주의를 표방하던 좌익 진영의 내부엔 이와 비슷한 현상이 많이 관찰된 바 있다.

  어떠한 의미에선 "시진핑은 이상을 내건 지도자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이 바로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상과의 간극

  지금까지 마오쩌둥적인 대중지향을 신봉하는 시진핑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나, 그는 개혁개방 이후의 지도자로서의 모습도 당연히 겸비하고 있다. 그 키워드는 '시장경제화''의법치국(依法治國, 법률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 이다.

  덩샤오핑이 지향한 정치개혁은 어디까지나 시장기능을 충분히 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선 종래의 사회주의 경제에 입각해 있던 정치제도까지 시장경제화 진척과 발맞추어 바꿀 필요가 생겼다. 이 점에서 후야오방이나 시중쉰이 지향한 민주화 정치개혁과는 나아가는 방향이 상이했던 것이다. 시진핑도 푸젠성에서 재임하던 시기(1985~2002) 이래 덩샤오핑과 유사한 정치개혁 구상을 품고 있었다.

  시진핑은 2012년에 권좌에 오른 이후 공산당의 중요한 회의강령에서 "철저한 시장경제화" 를 주문하고 이에 맞추어 '의법치국' 을 주안점에 둔 정치개혁 실시도 강조하였다.     

  이는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의회에 의한 입법제도를 지향하는 'rule of law' 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위로부터의 철저한 법률엄수를 지향하는 'rule by law' 인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화를 철저히 추진하는 것도 '의법치국' 도 쉽게 실현이 가능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시진핑은 2015년 여름 중국 주식시장이 출렁거릴 때, 철저한 시장경제화는 커녕 이와 역행하는 식의, 권력남용으로도 비칠 수 있을 강경한 개입을 했다.

  그리고 최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파나마 페이퍼' 에 의해 시진핑 친누나의 남편(자부)이 부정축재를 하여. 그 돈을 조세회피 지역으로 옮겨놓은 후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시진핑 친족에 의한 이런 부정행위는 원래 시중쉰이 자신들이 경험한 고난 체험과 부친으로서의 애정에 의해. 그 자식들에게 "해외로 나가서 살라" 고 권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시진핑은 '파나마 페이퍼' 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로써 반부패투쟁은 '의법치국' 과는 전혀 무관한, 자의적인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시진핑의 정치란 건, 지향하는 이상과 실제로 행하여지는 정책의 갭이 크다, 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중국이 흥륭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벽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시진핑 자신의 사상이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마오쩌둥적 대중지향에 따라 법을 초월하는 '인치人治' 를 펴 나가는 것과 '의법치국' 은 명백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여곡절이 있을지라도 시장경제화를 철저히 해나가며, 이에 따라 '의법치국' 을 지향하는 시진핑의 태도가 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이 과제들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중국의 흥륭은 없다는 것을 시진핑 그 자신이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그의 외교정책의 경우, 이미 푸젠성에 재임하던 시기에 마오쩌둥의 '독립ㆍ자주'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념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말하자면 "과거에 소련과의 대립도 불사했던 것처럼 미국이나 그 동맹국과의 대립도 불사하며, 약간의 경제발전이 희생되더라도 안전보장, 주권, 영토문제를 보다 강력히 중시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념은 당시 장쩌민이 추진하고 있던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有所作爲, 능력을 숨기고 힘을 기르며,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한다)" 라는 억제적 외교정책에 은근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작금 남중국해南支那海와 센카쿠 제도尖閣諸島에 대한 강경한 접근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시진핑은 명백히 푸젠성 재임 당시의 이념에 기반하여 외교정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한漢나라 무제武帝인가?

  마지막으로, 약간 폭론暴論으로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으나, 중국의 역사에 비추어 시진핑의 위치부여를 해보려고 한다. 가령 마오쩌둥이 시황제라면, 덩샤오핑은 한 왕조를 창시한 고조(高祖, 유방), 시진핑은 일단 한 무제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고조는 상궤를 벗어난 시황제의 통치와 진나라 말기의 동란에 의해 살아있는 것만이 고작이던 민중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마찬가지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극좌적인 통치에 의해 심하게 피폐해져 있던 민중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한 무제는, 한 고조 이래의 황제들에 의해 축적된 부를 이용하여 숙적인 흉노匈奴에 맞서 여러 번 원정군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 시대를 거치며 고도성장을 달성한 경제력을 등에 업고 착착 남중국해에 군사거점을 설치하여, 동아시아 /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저러한 중국경제의 경착륙론이 선전되고, 중국의 쇠퇴가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될 것처럼 말하는 관측도 행해지고 있다. 경제 쪽 기류의 변화는 분명히 쇠퇴의 징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한 무제 시대의 한 왕조와 마찬가지로 시진핑의 중국도 흥륭했으면 흥륭했지, 그렇게 쉽게 쇠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시진핑이 시장경제화 철저 / 의법치국에 실패한다면, 그 흥륭은 벽에 부딪히게 되어 전성기가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한다. 내부적인 위기인자를 방치하고 있는 가운데 대외정벌을 반복하며 팽창을 지향하다가, 사회불안이 명백히 증대되어 왕조의 쇠퇴로 이어진 - 그러한 사례들은 바로 그 중국의 역사를 통해 확인된 교훈이 아니었던가.

      

덧글

  • 깨알같은 하프물범 2017/02/17 23:31 # 답글

    진핑이가 한무제 흉내내다가 한방 맞겠다 싶습니다. 좀 맞아야 하구요.
  • 3인칭관찰자 2017/02/18 07:26 #

    솔직히 근래 우리 나라에 하는 짓을 보면 저 사람을 좋게 생각하기가 힘들긴 하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이 시진핑의 팽창행보를 이대로 묵인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 히알포스 2017/02/26 00:07 # 답글

    진핑이.....그러고보니 Korea SNL 에서 텔레토비 시리즈에서 방영했던 풍자물 텔레토비 시리즈에서도 이 사람을 가리켜서 진핑이라고 했지요
  • 3인칭관찰자 2017/02/26 01:23 #

    대선 전후해서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제법 재미있게 봤었기에 프로그램 없어질 땐 나름 아쉬웠죠.(폐지 당시 항간에 지금 대통령이 이 코너 별로 안 좋아했다.. 는 말도 돌아다녔던 걸로)
  • 히알포스 2017/02/26 15:36 #

    (공지에 현실 정치 얘기는 자제해달라고 말하셨지만) 저 역시 SNL 은 재밌게 봤습니다. 하지만 말하신 [여의도 텔레토비] 와 [~게임즈] 밖에 보지 않았지요. SNL 방영 타임엔 보통 게임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서 말입니다.

    저도 그런 풍문을 들었습니다. 근데 풍문은 풍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 국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 실제를 드러내려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 지금 직무정지된 모 대통령씨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사실이라면 찌질하기 그지 없습니다. 뭐, 그 사람이 하는 일들이 다 그런 식이었지요.
  • 3인칭관찰자 2017/02/27 13:21 #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현 대통령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도 지금 갖고있는 이미지가 바닥인지라 (....)
  • 히알포스 2017/02/26 15:10 # 답글

    올려주신 글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분석에 비해서 시진핑이라는 인물을 꽤 특이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 같네요, 글의 주제 자체는 시진핑이라는 인물의 Early life 입니다만, 그 Early life 를 이용해서 시진핑이 지금 펴고 있는 정책을 분석하고 있군요.

    오히려 Early life 를 설명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결국 지금 그는 왜 이런 정책을 펴고있나, 를 말하려는 것 같네요.
  • 히알포스 2017/02/26 15:32 # 답글

    하지만, 그런 분석에는 동의하기 힘든 게, 저는 지금의 현대 중국의 문제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의지나 정책으로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왜 부패와 손을 끊지 못하는가] 의 댓글에서 다른 분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사실 모(毛)주석 본인 정도 되는 급의 지도자가 아니면 - 대륙을 통일하고 정권을 창출한 사실상의 "창업자", 그리고 어쩄든 죽을 때까지 중국공산당의 권력을 많은 부분 쥐고 있었으니까 - 어떤 한 가지 요인으로만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 히알포스 2017/02/26 15:35 # 답글

    습주석이 모주석보다 강한 카리스마나 권력, 아니면 당을 강하게 장악하고 있다?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서 중국 사회가 엄청나게 발전하고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뭐 중국 뿐만 아니라 어떤 세상이든지 발전하고 넓어질수록 아무리 권력자라도 개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아지지요. 다 알고 대처하기도 힘들어지구요.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 글의 뒷부분은 좀 생각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겠네요.
  • 3인칭관찰자 2017/02/27 13:22 #

    시진핑의 권력이 마오급은 아닐지라도 현 중국정부의 지도자인 원맨으로서 강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중국사회가 과거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더라도 강대한 힘을 지닌 실권자의 인생 이력을 알아보는 게 무의미하진 않을거라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사례로 들긴 애매하고 우리나라 문민정부 이후의 사례를 들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상고 출신 법조인이었다는 점을 그분의 비주류 의식과 연관짓는 게 가능할 것이고, 현 대통령이 부모를 모두 암살로 잃었다는 점은 최태민 최순실의 발호, 국정개입과 무관하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3970
631
317798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