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07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님의 저서《전국시대에 대한 큰 오해戦国時代の大誤解》제 1장 <수상쩍은 인물들> 중 7편인【 평가가 수상쩍은 인물들 】부분(p. 39 ~ 43)을 번역한 것으로 주로 일본의 NHK 대하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을 주로 논하면서 그 폐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 책은 2019년에 문고본으로 신판이 출간된 상태이므로, 이 책 내용을 더 이상 번역하진 않을 겁니다. 가능한 한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였으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주인공을 '정의로운 인물'이라든가 '선량한 인간'으로 만들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자를 나쁘게 말하는 것도 평가에 관한 문제임은 틀림없으나,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대하드라마가 소재로 삼는 인물이 대체적으로 '위인エライ人'이라는 것이다. '위인'은 동시에 '유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같은 전국시대의 인물이긴 해도 '위대함'이라든가 '유능함'의 방향성이 상당히 차이나며, 노부나가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를 비교한다면 분야부터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공통되어 있는 점은, 그들이 어떠한 의미에서든 성공한 사람이며, 그 분야에서는 능력을 발휘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실패한 사람은 일단 위인으로 비치지도 않으며, 따라서 유능한 사람으로 간주되지도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뭐 대하드라마라는 장르의 성격상 그건 그대로 타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위대해" 라든가, "성공한 건 그가 유능했기 때문이야." 라고 쉬이 평가하는 경향이 수상쩍다는 건 시청자 분들께 한 번 확인시켜 드리고 싶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다 노부나가를 다루는 데서부터 시작하는《근세 일본 국민사近世日本國民史》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집필하신 토쿠토미 소호徳富蘇峰 씨가 흥미로운 말씀을 하신 바 있다. "결과를 아는 사람이 주장을 내세우려다 보면, 아무튼 성공한 사람은 위대하게 보이고 실패한 사람은 시시하게 보이는데, 그래서는 공평한 역사안史眼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행운이라든가 불운이라든가 하는 요소를 걷어낸 후 그 인물의 실제 가치를 감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말로 지당한 밀씀이나, 이 소호 선생 본인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등의 인물들에게는 몹시 불공평한 견해를 보이고 계시므로 배짱도 편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역사가들이나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결과론자들이다. 그렇기에 성공한 사람, 특히 천하를 거머쥔 사람에게는 점수가 대단히 후해진다. 덧붙이자면 이 사람들은 행운이라든가, 요행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역사를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성공한 인간은 전적으로 장본인이 유능했기 때문이다'는 결론을 내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라든가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 같은 경우, 그들에게는 원래부터 천하를 잡기에 유리한 '발판'이 존재했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의젓하게 있는 동안에 운을 만나 천하의 주인이 되어버린 경향이 강하다. 떠받들렸을 때 잘 처신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정말로 유능한 인물은 그들을 추대한 사람들 속에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타카우지가 성공하는 데는, 대하드라마에서 촐랑이 비슷하게 그려지는 동생 아시카가 타다요시足利直義의 깊은 사려와 뛰어난 실행력이 큰 역할을 했다.
오다 노부나가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같은 경우에는 분명 고유한 재능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성공에서 차지하는 재능의 비율이 행운의 비율을 상회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또 미묘하다. 에도 시대의 학자들 가운데는 "히데요시가 천하를 잡은 건 그의 지혜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행운의 산물이다."고 주장한 사람이 여럿 있었으나, 그렇게 말하자면 그 자들이 '토쇼 신군東照神君' 어쩌고 하면서 추어올린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야말로 더욱 더 그러하다. 이에야스의 성공에서 행운의 비율을 제외하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소호 씨가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성공한 인물에 대해서는 결과론적으로 갖다붙여서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껏 찬양하는 게 가능하다. 역으로 실패한 인물에 대해서는 별개의 의미로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으므로, "이 점이 잘못되었다.", "그 점이 나빴다."는 식으로 자비없이 매도하게 된다. 아케치 미츠히데 /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등이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건,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하드라마도 실패한 인간, 좌절한 인간을 다루고 있지 않느냐." 하는 목소리도 있을 법하다. 분명히 일견해보면 그렇게 보이는 인물들이 제법 주인공 자리에 앉은 바 있다. NHK 대하드라마 초대 작품인《꽃의 생애花の生涯》의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부터가 그러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는 '개국開國'이라는 대사업을 성취한 위인으로 나온다.《카츠 카이슈勝海舟》의 주인공 같은 경우도,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라 텐노 존숭尊王 / 막부 옹호佐幕의 대립을 극복하고 에도 성江戶城 무혈개성을 주도한 위인인 것이다.
카이슈가 성공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유능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나오스케 쪽은 대단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주인공으로 앉혀놓은 이상 위대한 정치가라도 되는 양 인물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므로, 소호 씨의 주장이 뒤집히는 예라 하겠다.
패배자를 정말로 패배자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작품도《요시츠네義經》를 비롯하여 몇몇 작품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經를 치켜세우는 건, 옛날부터 이어져 온 '호간비이키(判官贔屓, 역주 : 요시츠네 동정론으로 대표되는 약자 / 패배자에 대한 동정심리)' 감정에 편승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전술가로서는 천재적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다"니 어쩌니 언급되지는 않는다. 오로지 '비극의 귀공자' 같은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요시츠네 동정론에 대해 "그것은 노인들과 어린애들이나 하는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축해버린 바 있다.
그 이에야스가 세운 막부의 편에 서서 마지막까지 싸운《신센구미!》가 부각되는 것도 요시츠네와 마찬가지 경우라 생각된다. 분명히 그들은 패배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비상 경찰조직으로서는 꽤나 유효했고, 또 유능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덧글
2. 그러고보면 시대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듯이 역사관이 달라지는 만큼 위인은 비판받고 묻힌 인물들은 발굴되고 악평을 듣던 이들은 재평가를 받고...
3. 요시츠네 자체는 당시로서는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자비한 존재였다는 게 일본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니(원평 시절 전쟁 자체가 신사적인 전쟁. 뭐 전쟁의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않는 특이한 양상이라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장수끼리 싸우거나 무사들의 기마궁술전이었는데 이걸 통째로 무시하고 민가 소각, 약탈, 살육에 더해 단노우라에서 헤이케 측의 군선 노잡이까지 사살하는 등 당시로서는 반칙이나 다름없는 행동. 전쟁이 끝나 형과 대립해서 도망칠 때도 그를 오랫동안 따른 벤케이 같은 사람만 함께했지 그 외에는 그에게 호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만 봐도...) 대중의 감성이 무엇이길래 아직도 인기를 끄나 싶긴 합니다. 삼국지의 촉한에 대한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일련지...
2. 한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사람의 평가가 시대에 따라 어텋게 변해왔는지만 살펴도 재미있는 경우가 많을 듯 합니다 ㅋㅋㅋ
3. 뭐 다테 마사무네처럼 안 좋은 의미에서 반칙적인 플레이(전국시대 일본 토호쿠 지방에서 처음으로 집단학살을 상투수단으로 사용하는 등)를 저질러 악명을 떨쳤음에도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인물도 있고, 남북조시대의 키타바타케 아키이에 같은 경우도 보급로 생각도 안한 채 타카우지를 토벌하러 대군을 이끌고 오슈에서 쿄토를 향해 행군했기에 입경 도중, 특히 토카이도의 주민들에게 떼강도짓을 많이 저질렀다는 혐의가 있음에도 아직까지 비운의 명장, 귀공자라는 이미지를 보전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