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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큰 오해》성격이 수상쩍은 인물들 역사



  본 글은 2007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씨의 저서《전국시대에 대한 큰 오해戦国時代の大誤解제 1장 <수상쩍은 인물들> 중 6편인【 성격이 수상쩍은 인물들 】부분(p. 36 ~ 39)을 번역한 것으로 주로 일본 NHK 대하드라마에서 자주 나타나는 인물묘사와 구성, 그리고 그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 책은 2019년에 문고본으로 신판이 출간된 상태이므로, 이 책 내용을 더 이상 번역하진 않을 겁니다. 가능한 한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였으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은 물론, 주인공 편에 서는 사람은 우선 예외없이 올바른 사람 / 선량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피카레스크 노블' 이라 불리는,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은 장르가 존재하며, 영화나 연극세계에서도 때때로 이러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으나, 대하드라마에서는 일단은 그러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이토 도산斎藤道三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나라 훔친 이야기國盜り物語》같은 경우 그런 이야기로 만들어도 좋을 법 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서 보는お茶の間向け 드라마로선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작자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씨도 도산의 행동을 "새로운 시대에 즉응卽應한 '정의' 의 모습" 이라고 보고 계셨던 모양이니, 더욱 더 그렇다.

  그렇다곤 해도 주인공이나 주인공 편의 사람들을 깨끗하고 올바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청난 무리를 해야만 한다. 실제 있었던 일이든 꾸며낸 일이든 그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며, 반대로 그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적당히 개작하거나 "무시" 할 필요가 생긴다. 과거, 시대고증가이신 이나가키 시세이稻垣史生 씨는《황금의 나날黄金の日日》에서 이시카와 고에몬石川五右衛門이 선량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하셨는데, 극단적인 경우 그러한 묘사도 존재한다.

  주인공 편의 인간이라면 도둑놈이라도 선역으로 그리는 반면, 주인공과 적대하도록 되어 있는 자는 실제론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라도 호의적으로 대접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실재했던 그 인물과는 꽤나 캐릭터성이 차이나는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여기선 모두 다룰 수가 없으므로, 뒷 장들을 통해서라도 다뤄보려고 한다.

  주인공을 허벌나게 치켜세우며 적이 되는 사람을 깎아내리는 이 방식은, 의외로 옛날에 유행했던 강담講談의 전통을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른다.《타이코키太閤記》의 사례를 들자면 주인공인 (토요토미豊臣) 히데요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랑하고 활달하며, 성실하면서도 도량 넓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나, 그와 적대한 인물들 - 예를 들자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 같은 경우 더없이 오만불손하고 심술궂은 인간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같이 까다로운 경우도 있다. 메이지 시대 이후,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너구리 영감狸親父" 이라는 식으로 강담이나 대중소설에서는 일종의 악역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그 이에야스와 치열하게 싸운 미츠나리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진 못했다. 그 잔재는 대하드라마 같은 데서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NHK도 의외로 고풍스럽게 드라마를 만드는 듯하다. 시청자들 쪽도 옛날 사람들이 강담을 통해 역사를 배웠던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대하드라마를 시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그도 당연할 것이다. 일부 민방民放들이 만드는 드라마들처럼 노골적인 권선징악극이 벌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점과는 반대로 현대적인 감각을 지나치게 반영했기에 이야기가 수상쩍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역사학자들 쪽에서 역사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을 때, 문제점 중 하나로 "평화를 위해 싸운다, 는 줄거리가 많은 것이 거슬린다" 고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평화주의자 토쿠가와 이에야스" 가 등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무턱대고 현대풍 가정의 구성원처럼 만들어내고 있다" 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것도 오늘날의 견해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나, 그 시대 사회의 모습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무시한 캐릭터 만들기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면 완전히 연출적인 필요에 의해 실상과는 다른 인물의 성격설정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타이헤이키太平記》에선 음흉한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 / 살짝 경박한 동생 아시카가 타다요시足利直義, 라는 식으로 묘사되나, 문헌에 기반하여 보는 한 두 사람의 성격은 위와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이러한 턱없는 짓이 가능한 건, 일반적인 시청자분들이 타카우지 / 타다요시 형제의 캐릭터성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확고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둔중하게도 보이는 너구리 영감님 분위기를 띠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촐랑촐랑거리면서 요령 좋게 처신하는 토쿠가와 이에야스, 라는 설정으로 드라마 같은 걸 만들어 본다면 곧장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아 식은땀을 흘릴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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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6/09/24 22:03 # 답글

    그러고보니 '독안룡 마사무네'의 히데요시는 상당히 중후했지요. 너구리급은 아니었지만.
  • 3인칭관찰자 2016/09/24 22:28 #

    NHK 대하에서도 히데요시를 중후하게 묘사한 작품이 있긴 있었던 거군요.
  • rumic71 2016/09/25 20:52 #

  • 3인칭관찰자 2016/09/26 11:41 #

    히데요시 주제에(?) 꽤나 후덕하게 나왔군요... 이에야스라 해도 믿길 정도.
  • 레이오트 2016/09/24 22:31 # 답글

    한국에 평화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미지를 퍼뜨린 인물은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한국인의 외국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형성에 지대한 기여를 해 온) 이원복 교수입니다. 그의 저서를 보면 그 유명한 두견새 이야기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치 느긋하고 평화롭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권력을 잡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요.
  • 3인칭관찰자 2016/09/24 22:51 #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판》나온 때보다 훨씬 옛날(1970년대)에 일본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작품으로 60년대 일본에서 엄청나게 히트친 역사소설《도쿠가와 이에야스》가《대망》이란 이름의 해적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은근히 스테디셀러가 되어 왔는데 그 책이 토쿠가와 이에야스=평화주의자라 주장하는 전형적이고 또 대표적인 작품이지요. 거기에 대면 이원복 교수의 토쿠가와 미화는 애교죠.
  • 레이오트 2016/09/25 00:12 #

    사실 성질 급하고 냉혹하며 극단적 실력주의 노선의 패권주의자 오다 노부나가와 임진왜란이라는, 동아시아 역사 흐름을 송두리째 뒤흔든 대전쟁의 원흉이며 개인적으로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속임수와 감언이설을 숨쉬듯이 해댄 전형적인 음흉한 야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교대상으로 놓으면 비단 도쿠가와 이에야스만 아니라 웬만한 정치가는 평화주의자로 보이지요.
  • 3인칭관찰자 2016/09/25 10:14 #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 약 250년간 일본에 평화시대가 찾아온 것도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레이오트 2016/09/25 14:03 #

    거기다 우리가 아는 일본 문화라는 게 에도 막부 시대 완성되기도 했으니 그럴만도 하겠군요.
  • 도연초 2016/09/24 23:04 # 답글

    가장 심한 미화 하면 쿠스노키 마사시게를 빼놓을 수가없죠; 매우 껄끄러운 존재인데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제국시절에는 성역이었습니다. 그나마 패전후 요시카와 에이지 태평기 덕에 색다른 해석, 속은 새까만 이미지가 유행했고 역사학자들도 남공이 미화되지만 그건 과장이며 그도 나름 한몫챙기려는 일을 안 한건 아니다라고 보니까요(그의 문장인 기쿠스이몬과 신조라고 알려진 칠생보국이란 단어는 극우들에게 꾸준히 악용된다는게 씁슬한 현실...)
  • 3인칭관찰자 2016/09/25 10:06 #

    말씀대로 쿠스노키는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까진 일본제국이 신민들에게 요구한 진충보국의 상징이자 성역이었죠. 빠가 까를 부른다는 법칙 때문인지 요즘은 옛날만큼의 인기는 없는 듯 하지만 사실 그가 남긴 군사적 공적은 인정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가 '멸사봉공한 천하충신' 이었냐는 문제는 별개로 하고)

    (그러고보니 '키쿠스이' 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카미카제 자폭=항공특공을 지시하는 일본 쪽의 작전명이 되기도 했지요..)
  • 도연초 2016/09/25 11:01 #

    사실 그 군사적인 업적도 시모아카사카의 농성후 위장자살과 전설적인 농성전인 치하야성 빼면 뭔가 눈에 띄는게 별로 없다는게 문제죠... 미나토가와에서 다카우지의 육상부대만 예상하고 포진하는 잘못된 판단으로 죽음을 자초한 셈이니.(사실 치하야 농성전 말고 미나토가와만큼 그를 미화시키는 정점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그보다 똑같은 근황의 아이콘이라던 닛타 요시사다는 쿠스노키 마사시게와 달리 인지도가 덜하고 심지어 일본제국 시절이었는데도 비판적인 평가를 받긴 받았다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쿠스노키 마사시게의 신묘한 용병술 자체가 수백년동안 태평기 등의 군담으로 무가부터 민간까지 쭈욱 이어져 오다보니 인지도 차이는 감안해야겠지만요.

    (여담으로 일본다큐 한토막 '악당 쿠스노키 마사시게 미나토가와에서 할복하다' 편이 방영되자 미나토가와 신사, 시조나와테 신사[쿠스노키 마사츠라]측에서 NHK에 항의를 했었죠. 문제는 그시절 악당이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대세를 따르지 않는, 다시말해 호조 가문에 복종하지 않는 자였기에 붙은 이름이었다고 따로 해명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 3인칭관찰자 2016/09/25 11:46 #

    호죠 잔당들의 반란을 진압한 타카우지가 조정에 반역하여 닛타 요시사다군을 격파하고 쿄토 코앞까지 왔을 때 쿠스노키는 키타바타케 아키이에의 오슈 군대와 함께 타카우지 군을 연파하여 큐슈 로 패주시키기도 했지요. 뭐 미나토 강 전투에서 패전하고 자살한 건 사실이지만.

    닛타 요시사다의 경우 카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공은 크지만 타카우지와 벌인 싸움에선 거의 패배를 거듭하다 결국 타카우지 부하들과 싸워 어이없이 전사하였기에 쿠스노키에 비하면 임팩트가 부족했지 않나 생각합니다.《타이헤이키》가 대체적으로 쿠스노키를 포함한 남조 인물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는데도 닛타에게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걸 봐도...
  • rumic71 2016/09/25 20:16 #

    그러고보니 "미나토가와다!" 라고 외치면서 산화한 구일본군 장성이 있었지요. 누군지는 잊어버렸지만...
  • 도연초 2016/09/25 21:17 #

    Rumic71 / 그게 제721항공대 진무대(자살병기 오카를 장착하는 1식육공 부대) 대장 노나카 고로 소좌가 격추당해 전사하는 당일 출격전 말한 겁니다. 미나토가와 자체는 가망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입니다. 노나카 소좌의 말뜻은 '우리는 죽으러 간다'였기에...
  • 진냥 2016/09/25 00:06 # 답글

    아, '그 시대 사회의 모습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무시한 캐릭터 만들기'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국민교육과정 시절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에 열광해서 엄청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 '이건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람세스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확 싫어지더라고요. 여기에 [대망]도 추가타를 가해서(...) 지금은 역사 소설이라면 짭쪼름한 눈으로 바라보는 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현대의 드라마에 의해 재해석된 인물은 그 시대의 역사 인물이라기보다는 현 시대의 역사 인물이 아닐지? 이걸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재활 중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9/25 10:45 #

    그런 환상이 깨지시는 기분... 어째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역사소설이라면 "작가가 옛날 세계관을 빌려 현 시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소설" 이 많다고 생각하고, 상당수 역사소설들의 주인공이 작가의 오너캐가 아닌가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ㅠㅠ

    시바 료타로 씨가《료마가 간다》에서 그린 완전체 사카모토 료마가 실제 역사의 료마와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걸 소설에 심취해있을 땐 자각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 도연초 2016/09/25 11:03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랬듯이 인간은 자기가 보이는 것만을 본다고 했죠. 어디서든 그렇습니다.
  • 2016/09/25 05: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9/25 10: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9/25 12: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9/25 15: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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