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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큰 오해》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역사



  본 글은 2007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씨의 저서《전국시대에 대한 큰 오해戦国時代の大誤解제 2장 <왜곡된 히어로들> 중 5편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부분(p. 62 ~ 66)을 번역한 것입니다.(대체로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기 이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센 리큐 숙청 / 조선 침략 / 히데츠구 숙청 등의 이야기는 다른 글을 참조해 주시길) 위 책은 현재 종이책으론 절판된 상태이나, 아마존 킨들 등을 통해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입니다. 가능한 한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겠으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상당히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히데요시의 인기는 에도 시대부터 대단히 높았다. 이 시대에 막부는 그 인기가 토요토미 가문 찬미로 이어지지 않도록 눈을 부라리고 있었음에도, 서민들 중에는 히데요시의 팬이 많았다.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입신출세 사상立身出世思想이 보급됨에 따라 인기는 더욱더 치솟기만 하였다. 일개 방랑아가 텐카비토天下人로까지 출세하였다는 "타이코 님太閤樣" 의 이야기는 입신출세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에혼타이코키絵本太閤記》에서 미화된 히데요시의 모습


  이 정도로 히데요시는 칭송받아 왔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와 언급되기를 꺼린 이야기들이 대단히 많았다. 이러한 면을 대하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뤄왔는지에 대해선, 아쉽지만 본인은 일일이 체크하지 않았기에 적절한 사례를 제시할 수가 없다. 단지 그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회피하는 듯했던 인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필두는 본인의 출신, 그리고 과거의 이력과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특히 오다 가문을 섬기기 전의 이력에 관해서는, 그렇게나 수다쟁이였던 그가 이야기로 남긴 것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또 찌질하여, 이야기할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본인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온갖 종류의 트라우마를 달고 다녔으리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한때 그가 토오토우미遠江 지방에서 미꾸라지를 팔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하였으나, 인접한 지방인 미카와三河에서도 미꾸라지를 팔고 다녔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는 카와이 젠자에몬河合善左衛門이라는 자가 멋지게 만들어놓은 논두렁을 밟아 무너트렸다가, 이를 목격한 카와이에게 참담히 구타당한 적이 있었다.

  히데요시가 성공한 후,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그 가신들을 붙들고 "미카와 지방에 카와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뭐하고 있는가?" 라며 열심히 묻고 다닌 것 같다. 이 질문을 받은 자들은 하나같이 "그 자는 옛적에 죽었고 후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한다. 히데요시는 "그런가. 지금까지 건재했더라면 옛날 일의 답례를 하려고 했는데." 라고 답했다고 하니, 어지간히 굴욕적인 추억으로 남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카와이의 집안이 단절되어 버렸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거짓말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적어도 30년 정도 지난 옛날 일에 그가 집착하고 있었다는 에피소드인데, 그가 고향 마을에서도 별것 아닌 일로 또래 아이에게 낫자루로 폭행당했다는 일화는 그것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이다. 텐카비토가 된 히데요시는 고향 마을을 찾아가 이곳의 세금을 면제해주겠다고 하면서, "그 때의 원한을 잊을 수 없으니, 그 자식이 살아있다면 목을 베겠다." 고 말했다.

  히데요시의 서슬을 보고 마을 사람들도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지, "그 자라면 죽고 없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히데요시는 "자식들은 살아 있는가?" 라고 다시 질문했다. "자식도 죽었습니다. 이미 손자 대가 되었지요." 라며 다시 거짓말을 하자 히데요시도 드디어 납득하며, "손자라면 도리가 없지. 이 마을의 모두에게 세금을 면제하겠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언급되기를 꺼린 이야기라는 건, 무엇보다 주군 가문이었던 오다 가문과의 관계이리라. 히데요시는 결과적으로 (오다織田) 노부나가信長의 후계자가 되었으나 노부나가가 죽었을 당시의 "계승순위" 는 결코 높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후계자인 노부타다는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고 말았으나, 성인이 된 아들인 노부카츠信雄 / 노부타카信孝 두 사람이 건재했다. 가문 내에서도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같이 히데요시보다 격이 높은 자가 존재했고, 비슷한 격을 가진 정도의 인물도 몇 명이나 있었다. 노부나가의 동맹자였던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히데요시보다는 훨씬 거대세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데요시는 주군의 원수를 갚는데 성공한 실적을 근거로 여기에 끼어들긴 했으나, 이것만으론 그가 순조로이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죽고 없는 노부타다의 아들로 아직 3세였던 유아(훗날의 오다 히데노부織田秀信)를 오다 가문의 후계자로 천거하는 변칙수奇策을 들이밀어 그 실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였기에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織田信雄를 구슬러서 그를 표면에 내세웠다.

오다 노부타카의 초상화


  노부카츠와 노부타카를 비교해보면 노부카츠 쪽이 인물의 됨됨이는 상당히 떨어졌다. 히데요시는 그렇기 때문에 노부카츠에게 주목했던 것으로, 노부타카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결탁하여 히데요시에게 대항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카츠이에가 패배하고 멸망하자, 노부타카는 자살을 강요당했다. 그래도 히데요시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어서 노부카츠를 사주하여 그러한 처분을 내리도록 한 것인데, 그 배후에 히데요시가 있었다는 건 당사자인 노부타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바였다.

오다 노부카츠의 초상화


  그렇다고 해도 위의 것은 간접적인 행위이지만, 그 이전에 인질로 잡아둔 노부타카의 어머니 / 노부타카의 딸을 살해한 것은 히데요시 자신이 지시한 일이었다. 노부타카의 어머니라면 결국 옛 주군인 노부나가의 측실이었던 여성인데, 그녀를 책형에 처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 건은 덮어두고 싶었던 듯, 편찬하게 한 히데요시 자신의 전기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온갖《타이코키太閤記》에도 누락되어 있다.

  노부카츠는 그 후,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잡고 히데요시에게 대항해보기도 했으나, 다시 화해를 한 후 커다란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전국 제패가 끝나자마자 온갖 이유를 내세워서 그를 추방해버렸다. 그 후에 다시 소량의 영지를 하사하여 그를 부활시켜주긴 했으나, 다분히 "이용하고 버린" 데 가깝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오다 가문의 당주旗印가 된 히데노부도 무사하기는 했으나, 어느 새에 중급 다이묘로 내려앉아 버렸다. 물론, 할아버지의 천하가 그에게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덧글

  • 진냥 2016/09/04 15:35 # 답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전후로 까이는 분위기인데, 이번 글에서는 드물게도 그 전부터 깔 거리를 발굴하는 내용이네요. 재미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9/04 18:26 #

    그전에도 까일 구석이 없던 건 아니었죠. 특히 오다 가문을 자기가 가로채는 과정이 그러한데 자기나 추종자들, 그리고 후대의 팬들이 아무리 금칠을 해주어도 노부나가가 죽은 후 히데요시의 행보는 하극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가 옹립했던 어린 주군을 죽이진 않았다는 점에서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죽게 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보단 양반일지도 모르지만(....)
  • 明智光秀 2016/09/04 16:37 # 답글

    나도 이제 다 되었나베.
    이 책 나도 가지고 있는 책인데...
    오다 노부타카의 그림의 한자... 코베 노부타카라고 읽었음;;;
  • 3인칭관찰자 2016/09/04 18:39 #

    다 되셨다니 무슨(.....) 듣보잡 성씨인 "칸베" 보다는 도시 "코베"로 읽히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요. 요즘 경감님께서 일본출장을 많이 가시다 보니 칸베보단 코베를 더 많이 접하셔서 잠시 착각하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 키키 2016/09/04 17:28 # 답글

    오로지 상승욕구만 가지고 있는 사람, 언제나 헤헤 웃으면서 스스로 '천민'임을 강조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컴플렉스가 심했던 사람이었죠. 적으로 돌리면 굉장히 골치아픈 타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9/04 19:03 #

    노부나가 밑에 있을 시기 히데요시가 여러 번 중대한 월권행위를 저질렀을 때(테도리 강 전투 직전 무단으로 철수한 것과 우키타 나오이에를 오다 쪽으로 배반시키면서 노부나가의 승인 없이 나오이에의 영지를 보장한 것 등) 다른 무장이 그랬다면 당장 카이에키당할 사안을 얼마간의 칩거명령이나 견책만으로 무마시켜 준 걸 보면 정말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꽤나 아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자기가 죽은 후 자식들이 이 머리까진 쥐새끼에게 농락당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히데요시 특유의 인간심리 장악과 친화력은 아마 밑바닥 생활을 겪으면서 개화된 것이라 보이는데, 그만큼 노부나가를 섬기기 전까지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고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비참한 꼴도 많이 봤으리라 생각되기에 컴플렉스가 장난 아니었을 듯 싶습니다. 그걸 끝없는 상승지향의 자양분으로 삼은 것은 대단하긴 합니다만(.....)
  • 존다리안 2016/09/04 19:26 # 답글

    능력은 있으나 속이 좁은 게 문제였군요.
  • 3인칭관찰자 2016/09/04 20:40 #

    본디는 속이 좁은 것 같으나 적어도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큰 사나이로 인식했고, 말년에 추해진 모습을 여러 번 드러냈긴 해도 토요토미 히데츠구나 이시다 미츠나리 같은 인물들이 히데요시 대신 덤터기를 쓴 덕에 히데요시 본인은 후세까지 그런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도연초 2016/09/05 11:08 # 답글

    1. 이런 점에서 보면 주원장과 비슷합니다.(둘 다 평민 이하 출신에 비참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그런 경험이 없이 빈털터리 천민이 덜컥 천하인이 된다는건 어불성설이지만요)

    2. 오다 노부타카가 할복 전에 남긴 유언 자체를 보면 좀 섬뜩하죠. 요약하면 "주군의 자리를 빼앗고 주군의 자식들을 쳐내리니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인데 이게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는 말 안해도 아실듯.

    3. 노부카츠가 몰락했어도 그나마 현존하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 거의가 그의 후손이라는게 위안일 따름(결국 두 차례의 오사카성 포위전에서 이에야스측과 꾸준한 밀담 끝에 복수를 이루었다는것도 있지만)
  • 3인칭관찰자 2016/09/05 16:14 #

    1. 생각해보니 많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둘 다 태어난 시기가 난세 아니었다면 최하층민으로 살다 죽었을 텐데.

    2. 이에야스가 대신 원수를 갚아준(?) 셈이랄까요.

    3. 맞습니다. 에도 시대까지 살아남은 오다 일족 계열의 다이묘와 하타모토들의 실질적 종가도 노부카츠 계열이었고(막부에게 처벌당해서 영지가 삭감당하기 전까진 3만 석 영주인데도 한 지방의 태수=국주급 예우를 받았다고) 지금 현존하는 노부나가의 후손들 대부분도 노부카츠의 자손들이지요.
  • 2016/09/05 10: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9/05 16: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ehavior 2016/09/09 14:43 # 삭제 답글

    저런 속좁은 결점투성이(장점도 많긴 하지만) 인간이 천하를 잡은 데는 친구 토시이에랑 아내 영향도 컸을까요? 토시이에가 죽고 키타노만도코로가 출가하자마자 가신단이 콩가루가 되어버렸으니
  • 3인칭관찰자 2016/09/09 20:28 #

    둘 다 히데요시가 천하를 잡게 하는 데 안팎에서 거들었지요. 특히 토시이에의 경우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결정적인 순간 시바타 카츠이에를 배반하여(세키가하라 전투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생각날 정도) 히데요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으니...

    키타노만도코로의 경우는 세키가하라 시점에서는 은거상태이긴 했으나 출가하지는 않았던 걸로 압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서 현실무대에서 중재를 맡는 경우가 제법 있었던 걸로.

    요즘에는 이시다 미츠나리들이 지지하는 요도도노와 대립하여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카토 키요마사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간접적으로 세키가하라 당시 동군을 응원했다는 설이 많이 수그러들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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