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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 벳쇼別所 가문, 광기의 농성 (上) 역사



  이 글은 故 시바 료타로 씨의 역사 에세이집인《역사의 세계로부터》의 9 ~ 18쪽에 수록된〈벳쇼 가문, 광기의 농성〉을 번역한 포스트입니다.
 

  - 반슈(播州, 하리마 지방, 역주 : 지금의 효고 현兵庫県 남서부)에는 미키三木 성을 쓰는 사람이 많다. 꼭 미키 성을 쓰지 않는다 해도, 이 평야를 경작하고 있는 다수의 농가들은 선조가 미키 농성전에 참전하였다는 구비담口碑談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붉은 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옛 하리마 지방


  내 할아버지인 후쿠다 소하치福田惣八는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얼마 후, 효고 현兵庫県 코우가오리히로広播郡広라는 마을에 가지고 있던 전답을 팔아 오사카大阪로 이주하여, 떡집을 차렸다. 원래는 미키 성을 썼다고 한다. 미키 성이 함락되었을 때 앞의 마을로 도망쳐, 다른 성 병사들과 함께 저습지를 개간하고 부락을 만들었던 자들의 자손이라 들었다. 반슈 지방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성이 함락된 후 도주할 때에 벌어진 무서운 이야기들이 전래되어 왔기에, 이야깃거리가 적은 농촌에서는 마치 어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마 유사 이래 반슈의 주민들이 체험한 최대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토쿠가와 시대德川時代 중엽에 아코 아사노 가문赤穂浅野家의 소동(츄신구라忠臣藏)이 있었지만 사건의 규모로 보자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작년 8월,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이 전투의 중심지가 되었던 미키 성三木城을 찾아갔다. 성은 하리마 동부 미키 시三木市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국시대 당시 벳쇼 씨의 죠카무라城下村였던 미키 시가지는 이들이 몰락한 후엔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고 토쿠가와 시대에는 철물점 거리로서 존재했으며, 지금도 이 지역산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대단히 고전적인 고요함을 간직하면서 강과 구름을 갖춘 들판 속에서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지금도 전국시대 벳쇼 가문의 추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인사을 받았다.

  옛 성이 있던 작은 언덕을 후잔釜山이라고 했다.


옛 시대에 그려진 미키 성의 구조


  언덕 위에 있는 자그마한 이나리 신사를 위해 만들어진 기다란 돌계단을 올라가보자 커다란 녹나무가 있었고, 그 무성한 가지를 해가리개로 삼아 지어진 사무소가 보였다. 녹나무 아래에 서 보자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울음소리가 단번에 멎어버렸을 정도로, 이 언덕에는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드문 것처럼 보였다. 녹나무 아래에서 쳐다보니 사무소의 접객실은 활짝 열려 있었고, 칠기로 만들어진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서 40대 연배로 보이는 두 사람이 열심히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다. 본 적도 없고 면식도 없는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짓까지 해 가면서, 이리로 와서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겠냐는 의미로 말을 걸어왔다. 이 사람이 이나리 신사의 신관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이 땅의 화가로 언제나 그들 둘이서 농성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왔던 것인데, 오늘의 화제는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가 농성 당시에 어떤 갑옷을 입고 있었겠느냐는 게 이야기의 중심인 듯 했다. 나와 가족들이 그 옆에 앉자, 친절한 신관 분은 유유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성 장병의 자손분이시군요. 그렇지요? 매년 오봉(백중맞이) 무렵이 되면 그들 자손들이 온갖 지방에서 이 성터로 찾아오기 때문에, 차림새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아하."

  나는 신관의 혜안에 짐짓 놀라면서,

  "그렇지만 제 선조가 어떤 이름이었는지를 모릅니다." 고 하자,

  "그러시겠지요. 미키 성의 장병들은 귀농한 이후, 세상을 의식하여 그 이름을 감춘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얼마 전에도 고치高知에 사시는 분이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오셔서는 '선조께 공양을 드리고 싶은데 내 선조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기록에 남아 있는 성 장병의 명부 중에서 적당한 걸 골라서 '이 분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나저나 귀하의 조상은 당췌 어떠한 성이셨는지?"

  "미키, 였다고 합니다만."

  "아아, 누구나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분들의 조상이 미키 씨가 되었지만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미키 성에서 농성하여 싸운 장병들 가운데 미키 성을 쓰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관은 면목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걸 딱하게 생각했는지

  "아니, 그건 말이죠. 아마 다른 성씨를 쓰고 있던 사람들이 성이 함락된 이후, 미키 땅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성을 미키로 바꾼 것이겠죠. 도망친 무사들이 우연하게도 하나같이 미키로 성을 갈았을 정도이니, 당시 이 성에서 벌어진 공방전은 그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사카로 돌아온 후, 별개의 용건으로 칸사이 대학關西大學에 근무하는 아리사카有坂 조교수를 만나 미키 시가지에 갔던 이야기를 하자, 벳쇼 나가하루 그 자가 나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헤에." 하면서 놀라자, "교진巨人 군단의 벳쇼 선수 같은 경우도, 아무래도 나가하루의 자손인 것 같다." 고 내게 말했다. 아리사카 씨도 벳쇼 씨도 효고 현 출신으로, 반슈 평야는 지금도 벳쇼 주종主從의 자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만큼 이 농성전의 규모가 컸다는 말도 될 것이다.

 
  - 텐쇼 5년(1577) 츄코쿠中囯의 모리 씨毛利氏를 공격하기로 결의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고슈(江州, 역주 : 오우미近江 지방. 지금의 시가 현滋賀県) 오다니小谷 22만 석의 성주였던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筑前守秀吉를 야전사령관으로 임명, 아즈치에서 병력을 출발시켜 그 군용을 과시함으로써 모리 가문의 위성국이었던 반슈의 여러 호족들을 회유하게 한 후, 연말에는 일단 병사를 물렸다.

  제 1차 출병은 위력정찰과 정치공작을 위해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결과 히데요시는 모리를 공격하는 것이 힘든 일임을 자각하고 우선 반슈 최대의 호족이었던 벳쇼 지쥬 나가하루別所侍從長治를 아군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에게 헌책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벳쇼 나가하루의 초상


  벳쇼 가문은 하리마 동부에서부터 셋츠 지방에 걸쳐 24만 석의 판도를 가진 다이묘大名로, 원래부터 아시카가足利 쇼군 막하의 무장인 아카마츠 씨赤松氏의 서출이자 무라카미 겐지村上源氏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유서 있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전국시대 말기인 이 무렵에 접어들어서는 중세적 명가들 대부분은 멸망당해 자취를 감추었고, 각 지방의 판도는 누대에 걸쳐 이루어진 가문이 아닌, 당대에 득세한 실력자들로 다시 칠해지고 있었다. 명문의식 강한 벳쇼 일족의 입장에서 보면, 오와리尾張 지방에서 굴기하여 토카이도東海道를 제압한 후 돌연히 쿄토로 입성한 오다 노부나가라는 신흥세력 따위야 가소롭기 짝이 없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벳쇼의 명문의식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벳쇼를 츄코쿠 지방 공격의 선봉으로 삼는다, 는 영예를 떠안깁시다." 라고 노부나가에게 헌책했다. 노부나가는 이 헌책을 받아들여, 벳쇼의 본거지인 미키 성에 급사急使를 파견했다. "귀하께서 아군에 가담해주신다면 반슈 지방을 주는 건 물론이며, 그 외에도 공적에 따라 후하게 은상을 내리겠소."(《벳쇼나가하루키》)

  나가하루는 당시 21세의 청년으로, 전국시대 무사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옛 무사에 가까운 미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역시 전국시대 최후의 명문가 자제였음이 분명했다. 설령 신흥세력 밑에 들어간다고 할지언정 대군의 선봉을 맡는다는 점이 무문의 영예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승낙한 후 인질을 보내었다. 한 지방의 운명을 단순히 미의식에 따라 걸어버렸다는 점도 그런 난세에 유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노부나가로서는 기실 약속을 그대로 이행할 생각은 없었다. 반슈 지방을 주겠다는 수표는 이미 자기 밑에 있는 직속장교인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비밀리에 주어버렸기 때문이다. 전국쟁패의 결승전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노련한 선수와, 구식 룰에 한없는 미의식을 느끼는 스포츠 딜레탕트(호사가)의 승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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