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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매문문답賣文問答 아오조라문고






  편집자 : 저희 월간지의 다음 호에 무언가를 집필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작가 : 안 됩니다. 지금처럼 잔병치레가 많아서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요.

  편집자 : 그래서 특별히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동안 쓰시면 책 한 권은 나올 법한 쌈박질도 있는데.

  작가 : 여차저차한 사정이 있으므로, 이번만큼은 거절하게 해 주십시오.

  편집자 : 곤란하군요. 어떤 거라도 좋으니까. - 원고지 두 장도, 석 장도 좋습니다. 당신의 이름만 붙어있으면 됩니다.

  작가 : 그런 글을 싣는 건 어리석지 않습니까? 독자가 안타까워지는 건 물론이고, 잡지에게도 손해가 될 것입니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격이다, 라고 험담을 듣게 될 터인데...

  편집자 : 아니, 손해는 되지 않아요. 무명 글쟁이의 작품을 실을 때는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잡지사가 책임을 지게 됩니다만, 유명한 대가가 쓴 작품의 경우는 좋든 나쁘든 책임을 지는 건 언제나 그 작가가 되니까요.

  작가 : 그렇다면야 더욱더 일을 떠맡을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편집자 : 그러나 귀하 같은 대가라면 태작 한두 개가 나와도 명성이 떨어질 걱정은 없겠지요.

  작가 : 그 말은, 5엔이나 10엔 정도 도둑맞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둑을 맞아도 상관없다는 논리인데요. 도둑맞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개같은 꼴이겠군요.

  편집자 : 도둑맞는다고 생각하셔서 불쾌해하지 마시고, 기부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작가 : 농담하시면 곤란합니다. 잡지사에서 원고를 사러 오는 건 장사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물론 어떤 주장을 내세워보려 한다든가,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이러저러한 간판을 내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 주장이나 사명이란 것에 충실할 수 있는 잡지는 얼마 없을 겁니다. 팔리는 작가에게는 원고를 사 가고, 팔리지 않는 작가는 그(해당 작가) 쪽에서 부탁을 해도 사 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도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삼아 잡지사의 제안을 거절하든가 승낙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편집자 : 하지만 10만 독자분의 희망도 생각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가 : 그건 어린아이나 속일 수 있는 로맨티시즘입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그런 말을 진정으로 곧이듣진 않을 겁니다.

  편집자 : 아니, 저 같은 경우 성심성의껏 독자의 희망에 부응하려는 겁니다.

  작가 : 그거야 귀하로서는 그렇겠죠. 독자의 희망에 부응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장사의 번영으로 이어질 테니.

  편집자 : 그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귀하는 장사, 장사라고 말씀하시지만, 귀하에게 원고를 써 달라고 하는 건 그저 장삿속에서만 비롯된 게 아닙니다. 기실 귀하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작가 : 그건 그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게 글을 써 달라고 하시는 건, 어떠한 호의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저처럼 무른 인간은 그만한 호의에도 쉽게 마음이 동합니다. 못 쓰겠다, 못 쓰겠다고 하면서도 쓸 수 있으면 써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솔히 무언가를 떠맡았다가 좋은 결과가 난 적은 없었지요. 제가 불쾌한 꼴을 당하지 않으면, 귀하가 불쾌한 꼴을 당할 겁니다.

  편집자 :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의) 의기에 감동하여 적극적이 된다지 않습니까. 의기를 한 번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작가 : 마침 여기선 의기같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편집자 : 그렇게 핑계만 대지 마시고 제발 아무거나 써 주십시오. 제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작가 : 곤란하군요... 그렇다면 지금 귀하와 나눈 문답이라도 글로 쓸까요?

  편집자 : 어쩔 수 없으시다면 그렇게라도 해 주십시오. 그럼 이번 달 중으로 써주셨으면 합니다.

 
  (복면을 쓴 남자,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다.)

  복면을 쓴 남자 : (작가를 향해) 네놈은 한심한 놈이로군. 고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더니, 일시적인 땜빵을 위해 엉터리 같은 이야기라도 쓰겠다는 말이구나. 이 몸은 옛날에 (오노레 드) 발자크가 하룻밤 만에 멋진 단편을 하나 완성시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그 녀석은 한 번 몹시 흥분하면 족욕까지 해 가면서 쓰기를 계속했어. 그 처절한 정력에 비하면 네놈 따위는 송장이나 마찬가지야. 아무리 한 때의 땜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째서 그런 녀석에게 배우려고 하진 않는 거지?

  (편집자를 향하여) 네놈도 마음가짐이 옳지 않구만. 허우대만 멀쩡한 원고를 게재하는 건 미국에서 법률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지. 조금은 눈앞의 이해관계 외에도 고상하고 양식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라.


  편집자도 작가도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망연히 복면 쓴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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