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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와 카이엔타이》철저해부 카이엔타이海援隊 (3) 역사



   이 글은《新 歷史群像シリ-ズ 20 坂本龍馬と海援隊》p.124~131. 타케시타 토모카즈竹下倫一 씨가 쓰신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막부 말기 일본 역사인물들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그 동지들이 나가사키에 설립한 무역집단으로 혹자는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 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경영난 때문에 '카이엔타이' 로 갈아입다

  카메야마 샤츄는 무기알선 뿐만 아니라 료마 자신이 나서서 삿쵸맹약薩長盟約을 중개하고, 제 2차 쵸슈 정벌 때 샤츄를 총동원하여 쵸슈의 원군으로 참전하는 등, 대단히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나 수익 자체는 거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츠마 번에서 사 준『와일웹』은 처녀항해에서 폭풍에 휩쓸려 침몰하였다. 이로 인해 카메야마 샤츄는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카메야마 샤츄는 대원들 외에도 많은 수의 수부들을 데리고 있었다. 샤츄의 대원(닷판로시)에게는 사츠마로부터 매달 봉급이 나왔으나 수부의 임금까지는 지급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수부들에 대한 보수는 카메야마 샤츄가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와일웹』을 잃었을 때, 료마는 수부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가주게." 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부들 다수는 "돈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카메야마 샤츄에 있게 해 주시오." 라며 눌러앉았다.

  료마는 그들의 의기에 보답하기 위해 여러 번의 지인들을 동원하여 오즈 번大洲藩에 몇 명의 수부를 고용시키고, 지인인 쵸후 번 무사長府藩士 미요시 신조三吉慎藏에게도 "만약 자네의 번에서 해군을 만든다면 인원을 충당해주겠다." 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딱히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료마는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토사 번土佐藩에게 카메야마 샤츄의 편의를 봐 달라고 하자." 는 것이다. 당시 토사 번에서는 제 2차 쵸슈 정벌에서 막부군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번의 여론이 급선회, 사츠마 / 쵸슈와 친해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러한 토사 번에게 있어서 사츠마 / 쵸슈와 강고한 연결고리를 가진 료마의 존재는 정말로 둘도 없는 인재였던 것이다.

  이 당시, 토사 번은 번의 무사 미조부치 히로노죠溝渕広之丞를 료마에게 접근시켜 "토사 번을 위하여 일하지 않겠는가" 하고 타진하였다. 미조부치 히로노죠는 료마가 에도에서 검술수행을 하고 있을 무렵의 지인이었고, 그 당시에는 토사 번의 관리가 되어 나가사키로 나와 있었다. 료마는 "토사 번이 카메야마 샤츄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리하여 카메야마 샤츄를 새로이 단장한 것이 '카이엔타이海援隊' 이다.


【카이엔타이의 조직과 인원】


  토사 번의 소속이지만 독립ㆍ자급자족

  카이엔타이와 카메야마 샤츄는 기본적으로는 그닥 차이가 없다. 구성원도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고 하는 일도 똑같았다. 카이엔타이와 카메야마 샤츄의 가장 큰 차이는 "스폰서가 사츠마 번에서 토사 번으로 바뀌었다." 는 점이다

  그리고 '스폰서의 성질' 도 크게 변했다. 사츠마 번은 카메야마 샤츄를 단순히 '호의' 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츠마 번의 마음이 변하면 지원이 끊어질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사츠마 번은 카메야마 샤츄 말기에, 구입해주기로 한번은 약속하였던 카메야마 샤츄용 함선 구입을 계약 성사 직전에 취소시키는 등, 지원 규모를 축소하고 있었다.

  반면에 토사 번은 해원대를 자기 번의 외곽단체로 위치시키고 카이엔타이 지원을 '스스로의 의무' 로 규정했다. 그리고 토사 번과 카이엔타이의 목적 같은 것을『규약』으로 명문화시켰다. 카이엔타이는 보다 안정적인 입장을 얻게 된 것이다.

  단지 카이엔타이는 토사 번 산하의 하부조직이었나? 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카이엔타이는 카메야마 샤츄 때와 마찬가지로 독립ㆍ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였고,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사업을 벌여 그 수익으로 운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 마이너스가 생기면 토사 번이 메꿔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카이엔타이는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수익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 토사 번이 경제적인 지원을 해 준다는 건 카이엔타이에게 대단히 고마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카이엔타이 구성원=토사 번 무사는 아니다. 카이엔타이 규약에서는 '카이엔타이 대원의 조건' 을【 토사 번이나 다른 번을 닷판(무단이탈)한 자. 바닷일에 뜻이 있는 자. 】로 명기하고 있다. 이 구절에는 료마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생각된다. "토사 번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은 받고 있지만, 토사 번의 하수인이 된 것은 아니다." 는 말이다.

  카이엔타이라는 명칭도 "바다로부터 토사 번을 원호한다." 는 의미이다. 즉 카이엔타이는 군사ㆍ사업 등의 영역에서 토사 번을 돕고, 토사 번은 카이엔타이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대등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카이엔타이에는 토사 번 / 키슈 번 등을 이탈한 낭인浪人 약 20명(시기에 따라 조금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였음)과, 수부들이 약 30여 명 있었다. 그 대부분은 카메야마 샤츄 시대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앞에서 료마가 "나가달라." 고 했을 때 끝까지 붙어있던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카이엔타이 경영에는 상인도 여러 명 협력하였다. 료마는 상인들을 특히 존중했다. 이러한 료마에게 호의를 품고 협력한 상인이 꽤나 있었던 것이다. 나가사키에서 사츠마ㆍ쵸슈의 어용상인을 하던 코소네 에이시로小曽根英四郎는 카메야마 샤츄의 설립이나 카이엔타이의 나가사키에서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시모노세키 상업계의 중진이었던 이토 스케다유伊藤助太夫도 료마 부부에게 시모노세키에서 지낼 거처를 내어주는 등, 카이엔타이의 시모노세키 지점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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