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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와 카이엔타이》철저해부 카이엔타이海援隊 (1) 역사


  이 글은《新 歷史群像シリ-ズ 20 坂本龍馬と海援隊》p.124~131. 타케시타 토모카즈竹下倫一 씨가 쓰신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막부 말기 일본 역사인물들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와 그 동지들이 나가사키에 설립한 무역집단으로 혹자는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 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카이엔타이는 어떻게 해서 설립되었는가?】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삼은 희소성

  신센구미新選組, 키헤이타이奇兵隊가 대표하듯 막부 말기幕末에는 수많은 로시(浪士, 확실한 소속집단이 없는 자. 낭인)들로 구성된 결사ㆍ군사조직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사카모토) 료마가 만든 카이엔타이海援隊 - 카메야마 샤츄亀山社中는 대단히 유니크한 부류이다. 뭐가 희소하냐고 한다면, 경제적 자립을 지향했다는 점 때문이다.

  로시라는 존재는 경제적 기반이 대단히 취악하다. 그러므로 로시들의 집단에서는 언제나 경제문제가 발목을 잡게 된다. 로시들 집단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노상강도 짓을 하거나, 상인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부류들이 속출하였다.

  키헤이타이는 시모노세키의 상인인 시라이시 쇼이치로白石正一郎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신센구미는 막부의 출자로 설립된 조직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기대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카이엔타이(카메야마 샤츄)는 경제적인 호구책을 스스로 사업을 하여 해결하려고 했다. 단지 처음부터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다는 말은 아니고 사츠마 번과 토사 번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계속해서 경제적 자립을 지향하여 최종적으로는 자립하기 직전까지 도달하였다.

  카이엔타이의 전신인 카메야마 샤츄는 막부의 신하幕臣 카츠 카이슈勝海舟가 만든【코베 해군학원神戸海軍塾】이 그 원형이다. 해군학원은 증기선의 조타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각 번들로부터 폭넓게 원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료마와 토사 번을 뛰쳐나온 로시들도 카츠가 "맡아두는" 형태로 이 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겐지 원년(1864) 10월, 해군학원은 카츠의 실각으로 말미암아 폐쇄되었다. 료마를 비롯한 닷판로시(脫藩浪士, 소속되어 있던 번을 무단으로 뛰쳐나간 무사. 붙들리면 최소 중금고. 최악의 경우 처형)들은 풍운이 몰아치는 막부 말기의 코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그들에게는 기댈만한 곳이 없었다. 특히 도사 번을 뛰쳐나온 로시인 료마들이 위험했다. 토사 번이 닷판로시 검거를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카메야마 샤츄의 발족

  료마는 사츠마 번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사츠마 번은 당시 정보수집 목적과 만약에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여 수많은 로시들을 숨겨주고 있었다. 이 당시에 사츠마 번 가로家老였던 코마츠 타테와키小松帯刀가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에게 보낸 편지에 료마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편지에 의하면 코베 해군학원에 있던 토사 출신 로시들이 찾아와 "현재 토사 번에서는 영지를 이탈하여 로시가 된 무사들에게 가혹한 처사를 하고 있소. 우리들은 토사로 돌아가면 즉각 사형이오. 우리는 에도에서 서양선박을 빌려서 항해하고 싶으니 그때까지 사츠마 번이 우리들의 신변을 맡아주지 않겠소?" 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코마츠는【 항해할 때 승무원으로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오사카의 한테이(藩邸, 번 공용저택)에 수용하기로 했네. 】 라고 이어서 적었다.

  료마들은 애초부터 '항해로 돈을 벌어 경제적 기반을 얻으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료마들이 에도에서 빌리려 한 서양선박이란 게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료마는 막부 소유의『코쿠류마루黒龍丸』라는 서양선박을 대출하려 했던 흔적이 있는데, 그 배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서양선박 대출은 불발로 끝난 것 같고, 료마들이 이 시기에 독자적인 선박으로 항해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료마들은 한동안 사츠마 번에 신세를 지며 사츠마 선박을 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 다음 해인 케이오 원년(1865), 료마들은 나가사키로 거주지를 옮겨서 카메야마 샤츄를 발족시켰다. 카메야마 샤츄는 나가사키에서 "카메야마 도자기亀山焼き" 라는 도기를 취급하던 점포를 숙소로 쓰고 있었다. 당초에는 "샤츄" 란 이름으로만 불리다가 숙소의 이름이 덧붙어【카메야마 샤츄】로 불리게 된 것이다.

  카메야마 샤츄는 사츠마 번의 뒷배를 받으며 항해 등의 사업을 하다가, 막부 토벌전 같은 비상시에는 사츠마를 지원하는 사설군대가 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카메야마 샤츄의 원척은 독립과 자급자족이었지만 초기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사츠마에게서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카메야마 샤츄는 사츠마 번에서 사 준『와일웹』이라는 서양식 범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원 한 사람당 월급 석 냥 두 푼을 지급받았다. 석 냥 두 푼은 현재의 화폐가치로 15만 엔(160~170만원) 정도가 된다.

  (당시의 화폐가치를 측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료마가 이 무렵 편지에서 "성인 남자 한 사람이 먹고 살려면 60냥은 필요" 하다고 썼으니, 60냥=300만 엔으로 단순히 1:50000으로 계산했다. 앞으로 이 기사에서는 1:50000을 견지하겠다.)
 
  


덧글

  • oldman 2016/07/29 23:00 # 답글

    잘 보았습니다
    '카메야마 샤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군요^^
  • 3인칭관찰자 2016/07/30 08:25 #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처음엔 막연히 나가사키의 지구 이름에서 따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가 이 글을 보고 알았지요. 저런 유래가 있었을 줄은....
  • 2016/08/22 09: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ehavior 2016/07/30 12:21 # 삭제 답글

    막말에 저런 독자적인 무력을 갖춘 집단들이 번의 지원까지 받으며 성행했군요. 카이슈와 다카모리의 에도성 개성 회담이 없었으면 정말 제2의 전국시대가 터질 수도 있었겠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7/30 12:53 #

    에도 성 개성이 결렬되었을 때를 가정하셨듯이 보신전쟁에서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승승장구하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되었더라면 그렇게 군웅할거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behavior 2016/07/30 12:28 # 삭제 답글

    교양으로 동양사의 이해를 들을 때 교수님이 탈번은 물론 사형이지만 그당시 번들의 재정이 막장이라 지불할 급료가 없어서 암암리에 탈번무사들을 눈감아 주었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삿쵸토비같은 재정상태가 나은 번들은 탈번무사들을 철저히 잡았었나 보네요
  • 3인칭관찰자 2016/07/30 13:03 #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케바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반막부파가 실권을 잡고 있던 쵸슈 번은 탈번에 관대했고, 한편 사츠마 번은 탈번에 엄격했지요. 토사 번도 반막부파인 타케치 한페이타가 일시적으로 실권을 잡았을 때는 쵸슈 번과 비슷했다가, 번주의 아버지인 야마우치 요도가 타케치 등의 반막부파를 탄압하기 시작한 이후론 탈번무사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지요.
  • 남중생 2016/08/22 00:11 # 답글

    "구이요리를 취급하는 점포"라는 게 조금 이상해서 찾아보았는데, "카메야마 구이亀山焼き"는 요리 이름이 아니라 도자기 종류인 것 같습니다. 카메야마 샤츄도 도자기를 구웠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보다 자연스러운 해석이네요.
    원문에 실제로 "구이요리"라고 명시되어 있었나요? 아니면 3인칭 관찰자님께서 "~야키"니까 구이요리라고 짐작하신 건지요?
  • 3인칭관찰자 2016/08/22 08:57 #

    제가 지금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아 확인해드릴 수는 없지만 말씀 듣고 검색해 본 결과 남중생님 말씀이 정답으로 보입니다. 제가 오역한 게 거의 확실하네요. 옳은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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