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키쿠치 칸] 시즈가타케賤ヶ岳 전투 (2)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카츠이에는 중원에서 위세가 등등했던 히데요시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전엔 제장들 가운데 상석에 앉았던 자신도, 이대로 가면 결국 일개 시골영주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 히데요시의 득세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서서히 카츠이에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도 그러한 반대파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 남자가 카츠이에의 짧은 생각을 진정시킨 후 헌책을 하였다.

  즉, "한랭한 기후가 다가오는 지금 전쟁을 벌이는 건 불리하다. 에치젠越前 지방은 홋고쿠(越前, 호쿠리쿠 지방)에 위치하여 11월 초순부터 다음 해 3월 무렵까지는 눈이 깊게 쌓여 군마의 왕래가 불편해지므로, 이 시기를 피하고 눈이 녹고 물이 흐르는 시기에 대군을 남하시켜야 한다." 고 말한 것이다.

  카츠이에는 기뻐하면서 이에 동의하고, 가신인 코지마 와카사노카미小島若狭守 / 나카무라 분카사이中村文荷斎로 하여금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 카나모리 나가치카金森長近 / 후와 히코조(不破彦三, 카츠미츠. 미츠하루光治의 아들)를 호출하게 했다. 카츠이에는 "본인과 히데요시가 불화하고 있기에, 세상은 지금 전쟁이 시작되기라도 할 것처럼 소란스럽고 평온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론 히데요시와 화합하여 함께 천하의 평화를 도모하려 하므로, 그 중재를 해주길 부탁한다." 고 하였다. 마에다 등은 정말로 지당한 뜻이라고 하면서, 도중에 나가하마의 (시바타) 이가노카미 카츠토요伊賀守勝豊까지 데리고서 타카라데라宝寺로 찾아가, (하시바羽柴) 히데요시秀吉와 대면하였다. 

  사자使者로 온 취의를 들은 히데요시는 "가문의 중신이신 시바타 님을 어찌 소원히 대하겠는가. 이후로는 물과 물고기같은 사이가 되어, 어린 군주를 지키면서 천하의 정무를 맡아나가야 할 것이다." 고 답했다.

  사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서약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건 이쪽에서야말로 받고 싶은 것인데, 나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니와丹羽 / 이케다池田 / 모리森 / 삿사佐佐 등에게도 회람장을 보내어 내년에 일동이 한 자리에 모인 후에 교환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만이 서약서를 교환해서는, 다른 데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걱정이다." 고 말하며 거절하였다. 지당한 이야기였기에 사자들도 이 이상의 문답은 하지 않고 돌아갔다.

  카츠이에는 자세한 보고를 받고는 "내년 봄에는 원숭이의 면상을 효수할 수 있겠다." 고 기뻐하였으나, 이렇게 하여 히데요시를 방심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던 카츠이에는 기실 역으로 히데요시에게 기만당한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사자를 돌려보낸 후 가신들을 돌아보면서 웃으며, "밝은 거울에 물건을 비추듯 카츠이에의 계략이 뻔히 보이는군. 이럴 것 같아서 키요스清洲에서 그의 발을 묶어놓은 것이지." 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아사 진스케湯浅甚助를 호출하여, "자네는 나가하마長浜로 가서 이가노카미 카츠토요伊賀守勝豊와 그 요리키与力들을 설득하여 아군으로 끌어들여라. 나가하마를 양도했을 때 그들과 친해진 자네라면 별 일도 아닐 것이다." 라고 지시했다. 

  진스케는 이 임무를 떠맡고 나가하마로 가서, 카츠토요의 가로인 토쿠나가 이와미노카미(徳永石見守, 나가마사寿昌), 카츠토요의 요리키로 붙여진 야마지 쇼겐(山路将監, 마사쿠니正国) / 키노시타 한우에몬木下半右衛門 등을 구슬렀다. "이번에 히데요시에게 붙으면 자네들 모두를 다이묘로 발탁할 것이며, 카츠토요는 앞으로 홋고쿠 지방의 총대장이 될 것이다." 는 식으로, 아침저녁으로 설득하였기에 가로들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여 그들 가로들이 카츠토요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카츠토요도 아버지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을 두려워하여 승낙하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찬성하고 말았다. 

  원래 카츠토요 자신은 카츠이에의 양아들이긴 했으나 카츠이에에겐 친아들 곤로쿠権六가 있었던 데다, 병치레가 잦은 몸으로 화려한 활약도 하지 못하였기에 소외받고 있었으므로, 카츠이에에게 불만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해의 신년 축하자리에서 카츠이에의 새해 첫 술잔을 카츠토요를 제치고 그 총신寵臣인 사쿠마 모리마사佐久間盛政가 따르려 하는 것을, 카츠토요가 모리마사의 소매를 끌어당겨 제지시킨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러저러한 원망이 있었기에, 진스케의 변설과 어우러져 카츠토요가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 것이다.

  히데요시는 카츠토요의 배반을 미리 내다보고 나가하마를 통 크게 카츠이에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렇게 하여 히데요시의 전투준비는, 카츠이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현저히 진행되어 갔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743
480
346749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