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카츠 카이슈] 하타모토 이주 후의 전말 아오조라문고



  이 글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당시 보신전쟁戊辰戦争에서의 패배로 토쿠가와 막부 세력이 해체된 후, 토쿠가와 가문徳川家이 메이지 정부로부터 기존의 막부 영지를 몰수당하는 대신,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옛 영지였던 스루가駿河 / 토오토우미遠江 / 미카와三河 3개 지방 70만 석 영주로 봉해져 토쿠가와 일가와 그 직속무사들, 그리고 그들의 식솔들이 에도를 떠나 집단이주했을 때의 소소한 막간극을 막부의 신하였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이후에도 신정부에게 중용되었던 카츠 카이슈勝海舟가 회고한 글입니다.   


  - (메이지) 유신 당시, 옛 하타모토(旗本, 역주 : 토쿠가와 본가에 직속된 무사들. 그 식솔들을 데리고 새로운 본거지인 시즈오카静岡로 옮겨갔다)들로서 시즈오카로 이주한 사람들은 약 8만 명이었는데, 정부는 "10일 내로 이주시켜라." 고 주문하였으나, 이는 도저히 불가능하였기에 20일의 유예를 요청하여 기선 2척에다 나눠 태우고 이송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대단히 곤란하여 1만 2천 호밖에 되지 않는 시즈오카에 갑자기 8만 명이 쏟아져 들어왔기에, 내가 직접 농가를 사이를 돌아다니며 분주한 끝에야 일단은 겨우 모든 사람들이 묵을 수가 있었다.

  이 때, 누마즈 산간에 꽤나 넓은 땅을 경작하고 있던 유서 깊은 가문이 있어 그곳에 약 50명 정도를 숙박시키고, 나도 거기서 1박하였다. 지금은 그 집안 주인의 이름을 잊어버렸으나 70세 정도 되는 노인으로 내게 인사하며 말하길,

  "졸자의 집안은 이 지역에서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만, 귀인을 묵게 하는 건 이걸로 두 번째가 되는군요." 라 하기에,

  "두 번이란 건 언제와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가?"

  "옛날 혼다 사도노카미(本多佐渡守, 마사노부正信) 님이 묵어가셨고, 지금은 카츠 아와노카미勝安房守 님께서 묵고 계신 것을 말합니다."

  "혼다 사도노카미가 묵어간 데 대한 어떤 기록이라도 있는가?" 고 묻자,

  "기록으론 남아있지 않으나, 구전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 라고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그것은 타이코 님(太閤樣,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오다와라 정벌에 나서시기 1년 전의 일로, 내년 여기에 10만 대군이 올 것이므로 미리 군량과 말여물을 준비하려면 신분이 낮은 관리로는 일이 진척되지 않을 것을 걱정하였는지, 혼다 님께서 직접 이곳에 오셨다고 합니다." 고 하였다.

  "그렇다면 다음 해에 군량과 말여물은 갖춰졌는가?" 하고 묻자 답하길,

  "10만의 병사가 왔는데도 쌀 시세가 떨어졌습니다. 이는 작년부터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쌀을 비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우에사마(上樣,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음덕이 있었던 것이, 원래 누마즈 해안은 언제나 파도가 거칠어 군량 같은 걸 큰 배로 양륙시키는 게 힘들었는데도, 이 당시에만은 대단히 날씨가 쾌청하고 파도도 얌전해졌기에 타지로부터 군량을 용이하게 수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지방에서는 풍파가 잔잔한 것을 일컬어 '우에사마의 날씨' 라 부릅니다." 고 했다.

  고인의 정취를 담는 것이 옛날엔 이와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들 8만 명이 시즈오카로 옮겨간 지 3~4일만에 단무지절임조차 동이 났고, 4~5일 정도 지나자 휴지까지 바닥나버려 나도 실로 낭패했었다.

 

덧글

  • 진냥 2016/05/23 22:42 # 답글

    아, 최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서루조당]이라는 작품에 카츠 카이슈가 등장해서 흥미가 높아지던 참인데 좋은 글을 번역해주셨군요. 감사히 읽겠습니다!ㅠㅠ
  • 3인칭관찰자 2016/05/23 22:59 #

    아... 쿄코쿠 씨의 책에도 카츠 카이슈가 등장하는군요. 도움이 되었다면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
  • 2016/05/23 23: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23 23: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Hyth 2016/05/23 23:17 # 답글

    간단하게 계산하면 원래 인구의 2배 정도가 폭탄드롭(...) 된 셈인데 본문 뒤의 상황이 궁금해지네요;;
  • 3인칭관찰자 2016/05/23 23:56 #

    이주한 사람들의 참상은 영지를 빼앗기고 혼슈 최북단의 불모지로 쫓겨난 아이즈 번 사람들 정도는 아니어도 그에 필적했다고 하니, 정말로 밑바닥 생활을 겪은 것 같더군요. 굶어죽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3년 후(1871)의 폐번치현으로 봉건제가 혁파되면서 토쿠가와 영주 밑에 계속 머무를 명분도 사라졌을 텐데, 이후 그 사람들이 계속 이 땅에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behavior 2016/05/24 15:49 # 삭제 답글

    직할 400만석에 친족들까지 합치면 8백만이나 되었던 막부가 70만석으로 줄어든 걸 보니 250년 전 우에스기 모리 등이 당했던 일이 돌고 돌아 이번엔 자기들에게...
  • 3인칭관찰자 2016/05/24 18:31 #

    모리 입장에선 총 한번 못 쏴보고 당했던 굴욕을 후손들이 갚아준 격이군요(....)
  • 無碍子 2016/05/24 19:17 # 답글

    휴지를 썼다는게 놀랍습니다.
    우리나라 산골에서는 70년대에도 학생이 없는집은 이웃에 폐지 얻으러 다녔거든요.


  • 3인칭관찰자 2016/05/24 20:49 #

    원문에서는 치리가미塵紙라 나와있습니다. 지금의 휴지와는 달리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통종이라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주로 화장실에 갈 때와 코 풀때 썼다고 하니 당시로는 훌륭한 휴지였을지도.
  • 無碍子 2016/05/25 16:00 #

    물론 휴지라는 표현이 펄프로 만든 화장지라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만. 그 시절 조선에서 종이로 뒤처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겝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5/25 17:43 #

    의외로 볼일 볼때에 휴지, 아니 종이라도 갖고 다니는 습관이 우리나라에서는 꽤 늦게 보급된 거로군요.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743
480
346749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