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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사회주의자或社会主義者 아오조라문고





  그는 젊은 사회주의자였다. 일개 하급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 때문에 그와 의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뜨거운 정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친구들이 그를 격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어느 단체를 조직하여 10페이지 가량의 팸플릿을 출판하거나, 연설회를 열기도 하였다. 물론 그도 그들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비치는 한편으로, 때때로 그 팸플릿에다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그들 외에는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것 같았으나, 그는 기고한 논문 중 한 편인《리프크네히트(역주 : 1871 ~ 1919, 독일 공산당 창립자. 독일 공산화를 목적으로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동지인 로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살해당했다)를 기억하며》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글에는 면밀한 사색은 담겨있지 않았지만, 시적인 정열이 가득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학교를 나와서는 어느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의 모임에 소홀하지 않고 계속 얼굴을 비추었다. 그들은 변함없이 열렬하게 자신들의 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수가 암반을 깨부수듯 한 발짝 한 발짝씩 이를 실행에 옮겨보려고도 했다.

  그의 아버지도 이제 와서는 더 이상 그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한 여자와 결혼하여, 작은 집을 얻어 동거하게 되었다. 그 집은 사실 자그마했으나 그는 불만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여기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 애완견, 툇마루 앞의 포플러나무 - 이것들은 그의 생활에 있어 어떠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모종의 친근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가정을 가지게 되었던 데다가, 한편으로는 촌각을 다투는 직장업무에 쫓겨있었기에 언제부턴가 그들의 모임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정열은 결코 쇠퇴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자신은 지금의 자기가 몇 년 전에 비해 결코 달라진 게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 동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그들의 단체에 새로이 가입한 청년들은 그의 나태함을 비난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물론 이 점은 언제부턴가 그 모임에서 그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그는 아버지가 되어, 더욱더 가정에 애착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정열은 지금도 사회주의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야심한 밤에도 전등불 아래에서 자신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동시에 한편으로, 그가 이전에 집필한 십 수편의 논문들 - 특히 그 중에서도《리프크네히트를 기억하며》를, 왠지는 몰라도 어딘가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냉담했다. 그는 이미 그들이 비난할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그를 남겨둔 채 - 내지는 대체적으로 그와 비슷한 몇 명인가를 내버려둔 채 - 그들의 일을 착착 진척시켜갔다. 그는 옛 친구들과 만나면 새삼스럽게 푸념을 하곤 했다. 그러나 기실 그 자신도, 언제부턴가 속인俗人의 평화에 만족해가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어느 회사에서 근무하며 중역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젠 옛날보다 훨씬 큰 집에서 살면서 여러 명의 자식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열은 어디에 있는가. 그 점은 오직 신만이 아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등의자에 앉아 시가 한 개비의 맛을 즐기면서, 때때로 그 자신의 청년시대를 추억했다. 그 추억은 묘하게 그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동양에서 말하는 "체념あきらめ" 이란 단어가 그를 구원해주었다.

  그는 분명 낙오자였다. 그러나 그가 쓴《리프크네히트를 기억하며》는 어느 청년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 자는 주식에 손을 댄 끝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한 오사카大阪의 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그의 논문을 읽고서, 이를 계기삼아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물론 그런 사실은 그로선 전혀 알 리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등의자에 앉아 시가 한 개비를 물고서는, 그의 청년시절을 반추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아마 지극히 인간적으로 말이다.

    

덧글

  • 남중생 2016/05/06 01:52 # 답글

    세번째 문단에 "지하수의 암반을 깨부수듯"은, "지하수가 암반을 깨부수듯"이 보다 자연스러운 번역일 것 같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5/06 07:54 #

    원문 그대로 옮겼지만 좀 어색하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읽으니 의미가 통하는군요. 원문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고... ㅎㅎ 수정했습니다.
  • 남중생 2016/05/06 13:57 #

    일본어에서 ~の는 가끔 한국어의 ~가 의 의미를 가질 때가 있으니 가끔은 의역해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같은 식으로 말이죠. 제 제안을 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5/06 14:41 #

    저도 번역하면서 "노" 를 ~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위 문장은 그렇게 의역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하수가 암반을 깨부순다" 는 말이 무슨 말인지 선뜻 와닿지 않아서였는데 이거 참 제 무지를 드러낸 것 같아 면목이 없달까요(....)
  • 남중생 2016/05/06 15:13 #

    앗 아뇨. 저도 긴 글을 번역할 때는 직역에만 신경을 쓰다가 저런 실수를 무심코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절대로 3인칭관찰자 님께 무안을 드리려고 한 말은 아닙니다. ㅠㅜ 비공개 덧글로 올리는게 나았을 뻔 했군요;;
  • 2016/05/06 16: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과객 2017/04/30 21:46 # 삭제 답글

    마치, 특정한 공식을 간결한 글로 옮긴 듯, 한편으론 칼 포퍼 라는 이의 귀구가 떠오르는 글입니다. 하지만 그 독일의 두 사람이, 시간을 관통해 젊은 가슴들을 지필 사조를 제안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아닐까, 하는 사색입니다.
    평소에 좋은 글들, 좋은 정성으로 다시금 빚어주셔서 감사한 마음 이루 말 할 수 없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지시는 글들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 3인칭관찰자 2017/05/01 12:00 #

    공산주의 정치체제 자체에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저이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독주를 견제하는 자극제, 청량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근현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든) 이상과 영감을 주기도 했고요.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도 좋은 글들로 만나뵙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응원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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