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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발견》진설真說 나가시노 전투 (上) 역사




  이 글은 오다 노부나가 오케하자마 정면공격설 / 나가시노 전투 3단 사격 부정설 등으로 이름을 떨치신 후지모토 마사유키藤本正行 씨가 집필하신 기사《진설 나가시노 전투真說ㆍ長篠の戰い》(2014년 4월 출간되었던 일본잡지《歷史發見 Vol. 2P. 48 ~ 53페이지에 수록) 를 번역한 것입니다. 8~90년대부터 새로운 학설들을 내놓으며 지금 일본에서 통설로 자리잡아가는 노부나가의 전투 관련 논의에 불을 당기신 당사자가 비교적 시간적으로 가까운 2014년에 정리하신 글이라는 점에서 번역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역사발견》이란 잡지(2014년 10월에 나온 4호를 끝으로 사실상 휴간)가 일러스트 / 도표 / 사진 등이 망라된 풀컬러잡지인데도 그것을 번역글에서 살릴 수 없게 된 건 아쉽게 생각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조총과 기병의 전투" 라는 허구

  텐쇼 3년(1575) 5월 21일, 미카와 나가시노 성(長篠城, 현 아이치 현 신시로 시新城市) 성 밖에서 오다ㆍ토쿠가와 연합군이 타케다 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흔히 말하는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戰い이다. 이 전투는 "조총과 기병이 대결한 것" 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대단히 도식적이며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TV나 영화에선 오다의 총병들이 타케다의 기마무사들을 쏘아 쓰러뜨리는 장면이 익숙하게 등장한다. 이 전투에서 노부나가는 화승총 장전에 의해 생기는 빈틈을 메우기 위해 3천 명의 조총부대를 1천 정씩 3열로 배치하여 일제사격을 반복하는 "새로운 전술新戰術" 을 사용, 기마돌격이라는 옛 전술에 고집한 타케다 군을 격파했다고 여겨져 왔다. 

  나는 약 40년 전부터, 이러한 통설이 화승총의 성능 / 당시 군대의 구성 / 전장의 지형 등을 비롯한 여러 점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며, 통설은 사료적인 근거가 없는데다《신쵸코우키信長公記》를 위시한 양질의 사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점을 근거삼아, 이것은 허구라고 지적해 왔다. 근년에 들어 드디어 "새로운 전술" 은 부정되었으나, 중요한 문제인 전투의 경과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여기선,《신쵸코우키》를 중심으로 그 전투경과를 재현해보려고 한다.


  나가시노 성 공방전과 아루미하라あるみ原에서의 대치

  텐쇼 원년(1573), 대 토쿠가와 작전을 벌이던 진중에서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병으로 죽었다. 타케다 가문이 세습되는 혼잡한 상태에서 이에야스는, 타케다 측에 붙어 있었던 오쿠미카와(奧三河, 역주 : 산악지대가 많은 미카와 북부)의 토호 오쿠다이라 사다요시奧平貞能ㆍ사다마사(定昌, 훗날의 노부마사信昌) 부자에게 공작을 하여 배반시켰다. 그리고 나가시노 성을 탈취했다. 그런 한편, 신겐의 뒤를 이은 카츠요리는 토쿠가와 씨를 향한 공세를 재개, 텐쇼 2년(1574)에는 미노美濃 지방의 아케치 성(明智城, 현 기후 현 에나 시惠那市)과 토오토우미遠江 지방의 타카텐진 성(高天神城, 현 시즈오카 현 카케가와 시掛川市)을 공략했다. 이와 같은 성공들이 카츠요리에게 자신감을 주어, 훗날 나가시노 전투에서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텐쇼 3년(1575) 5월 11일, 카츠요리는 나가시노 성을 포위했다. 성주로 임명되어 있었던 오쿠다이라 사다마사는 완강히 저항하였고, 나가시노 성의 고즈메(後詰, 원군)를 위해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군대가 구원하러 달려가게 된다.

  기후 성에서 동진한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와 합류하여, 5월 18일 나가시노 성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진군을 정지하고 진지 구축을 시작했다.《신쵸코우키》를 의역해 보자.  

【 18일날 적에게 육박한 노부나가는 시다라 마을志多羅の鄕에 있는 고쿠라쿠지 산極樂寺山에 본진을 쳤다. 칸쿠로(菅九郞,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信忠)는 니이미도우 산新御堂山에 본진을 두었다. 시다라 마을은 움푹 패인 지형이었다. 이곳에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계속하여 3만여 명의 군대를 포진시켰다. 선봉은 그 지방 사람이 맡는다는 관례에 따라, 이에야스가 코로미츠자카 위에 있는 타카마츠 산高松山에 포진하였다.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 /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아루미하라로 올라가, 카츠요리를 바라보게 되는 동쪽을 향하여 포진했다. 그리고 이에야스와 타키가와의 진지 앞에는, 말馬을 방어하기 위한 울타리를 설치하게 했다. 】

  이에야스가 포진한 곳은 전선 중 남쪽이었다. 그곳은 남북으로 뻗은 타카마츠 산(탄죠 산彈正山)의 구릉이 평지로 내려가는 장소로, 나가시노 성으로 향하는 길도 뚫려있다. "선봉은 쿠니슈(囯衆, 그 지방의 부대)가 맡는다." 는 당시의 관례가 있었던데다, 노부나가에게 구원을 청한 입장상, 토쿠가와 군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이곳에 포전하였던 것이리라.

  다음으로 오다 군의 주력인 타키가와 / 하시바 / 니와 각 부대에 대해《신쵸코우키》의 판본 중 하나인 이케다 가문 문고본(오카야마 대학 부속도서관 소장)에 따르면 이에야스의 좌측에 포진한 것이라 한다. 오다 군 주력이 이에야스의 좌측, 즉 전선 북쪽에 포진하였다는 건《나가시노 전투도 병풍》이하의 사료들과도 일치한다. 전선 북쪽은 산지와 맞닿은 장소로 토쿠가와 군이 포진한 남쪽만큼 평탄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안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신쵸코우키》에는 오다 군이 동쪽을 향하여 포진했다 하는 한편으로, 토라우(寅卯, 동북동)를 향하며 싸움을 벌였다, 고도 적혀있다. 이러한 모순은, 아네가와 강 전투에 대한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규이치가 전군이 포진한 방향과, 오다 군 주력이 싸운 방향을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지도를 보면, 오다 군 주력이 배치된 북쪽 전선에는 훗날 오다ㆍ토쿠가와 연합군과 타케다 양군이 대치하게 되는 렌고 강(連吾川, 連子라고도)과 거기에 평행하여 늘어선 타카마츠 산의 구릉이 북북동 -> 남남서로 뻗어 있다. 즉 여기에 포진한 군대는 동북동을 향하여 싸우게 되기 때문에, 오다 군 주력이 여기에 포진하였던 건 확실하다. 그들 중 전위부대는 진지 앞에 울타리를 설치하였다는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부대였으리라.

  그런데《신쵸코우키》에는 타케다 군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움푹 패인 진형인 "시다라 마을" 에 3만 명이 포진하고, 그 후 이에야스와 노부나가 군의 주력이 "아루미하라" 로 전진하였다고 적혀 있다. 나중에 후술하겠지만, 카츠요리는 나가시노 성의 포위를 느슨하게 한 후, 주력군을 이끌고 "아루미하라" 로 전진하여, 양군이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한다. 참고로 타케다 군과 결전을 벌인 이 근처는 지금 시타라가하라設樂原라 불리나, 당시에도 그렇게 불렸다는 걸 입증해 줄 사료는 없다. "아루미하라" 에 대해선《신쵸코우키》의 원문을 인용하겠다.

【 그 아루미하라는 좌측으로 호우라이지 산鳳來寺山에서 서쪽에 있는 타이잔 산太山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토비노스 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깊은 산지로, 강변에는 노리토 강(乘本川, 지금의 오노 강大野川)이 산을 따라 흐르고 있다. 두 산 남북의 간격은 고작 30정(3k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

  《신쵸코우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오다 군의 좌측(북쪽)으로는 산이 이어져 있고, 우측(남쪽)에도 산과 강이 위치하였으며, 두 산의 간격은 3km 정도였다고 한다. 타케다 군이 좌우로 우회할 수 없으며 전선을 3km 정도로 한정당하는 이 장소를 전장으로 선택한 점이, 노부나가가 승리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자군의 전방에 울타리를 설치시켰다.

  한편, 전진해 온 타케다 군은 "타키자와 강(滝沢川, 칸사 강寒狹川)" 을 건너 그곳을 배후로 삼는 형태로 포진하였기에, 한번 전투가 불리하게 전개되면 독 안에 든 쥐가 된다.《신쵸코우키》는【 칸사 강을 넘어 전진해오지만 않았으면 타케다 군도 무사했을 것 】이라 적고 있다.   
   
   

덧글

  • 레이오트 2016/03/13 11:21 # 답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오다 군의 고전적이면서 정석적인 對 기병 전략을 사용했다는 뜻이군요.
  • 시무언 2016/03/13 13:10 # 삭제 답글

    일단 오다 노부나가가 지리를 잘 이용했고, 다케다 군이 배수진을 치게 된 형세가 큰 재앙을 불렀다는 것이군요.
  • 3인칭관찰자 2016/03/13 18:47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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