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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나가시노長篠 전투 (完)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나가시노 전투長篠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지금 통설로 자리잡은 나가시노 전투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출처 : 아오조라 문고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패주하는 (타케다) 군을 쫓아 강변에 이르렀을 때, 뿔이 달린 투구를 끈으로 묶고 최상급 갑옷을 걸친 말 탄 무사 1명이, 기다란 털을 늘어뜨린 커다란 말을 몰고 물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후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무사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보통 놈이 아니다' 고 생각한 토시이에가 등자를 박차 추격하자, 그 무사도 말머리를 돌렸다.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맞붙어 불꽃을 튀기는 싸움을 벌인 끝에, 토시이에는 허벅지를 베여 말에서 낙마했다. '퇴군하는 지금, 목 한 두개 더 건져도 별 것 없다' 고 생각했는지 그 무사는 토시이에를 내려다보면서 다시 물러나려고 했는데, 바로 그 때 토시이에의 가로家老 무라이 마타베에 나가요리村井又兵衛長頼가 말을 몰고 달려왔다. 주군이 상처입고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부축하려고 했는데, 토시이에는 "적을 놓치지 마라" 고 명령했다.

  마타베에는 명령을 따라 그와 맞섰으나, 보기에도 대단히 강하게 느껴지던 그 무사는 즉각 마타베에가 쓴 투구의 머리 부분을 두 토막으로 쪼개버렸다. 그렇게 하여 마타베에도 주군 토시이에와 마찬가지로 시선이 하늘을 향한 채로 말에서 떨어졌으나, 낙마할 때 상대의 쿠사즈리草摺를 꽉 붙잡고서 함께 강물 속에 빠졌다. 상대 쪽이 위에 올라타고 있었으나 마타베에는 신속히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반격하며 그를 두 번 찔렀기에, 그 강력한 무사도 결국 숨을 거두었다. 타케다 가문의 궁수대장인 유게 아무개弓削某라는 자였다고 한다.       

  오다 / 토쿠가와 군의 추격이 맹렬하였던 데다 카츠요리 주종의 퇴각도 타키가와 강滝川에 다리가 얼마 없었기에 대단히 위태로웠다. 너무나 당황해 있었기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깃발도 내버리고 갔다.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의 부하 무사인 하라다 야노스케原田矢之助가 그 깃발을 주웠는데, 호리 킨피라 카츠타다堀金平勝忠가 타케다 군을 추격하면서 "군기를 버리고 도망치다니, 그러고도 코슈의 무사인가!" 라며 비웃자, 타케다의 군기담당 행정관이 뒤를 돌아보며 "아니, 그 깃발은 오래 된 것이라 버린 것 뿐이다! 대체할 것은 여기에 갖고 있지." 라고 응수하며 새로이 십자모양의 깃발을 펼친 후 다시 도망갔다. 호리는 "그거 그럴듯하군! 바바馬場, 야마가타山県, 나이토内藤 같은 노장들도 헌 물건이라서 죽게 내버려뒀구나!" 라고 외쳤다. 패전을 겪는 건 비참한 것으로, 이런 소리를 듣더라도 방도가 없었다. 

  카츠요리는 사루바시猿橋 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건 하지카노 덴에몬(初鹿野伝右衛門, 마사츠구昌次, 32세)과 츠치야 우에몬노죠土屋右衛門尉의 동생인 소조(惣蔵, 마사츠네昌恒. 20세)였다. 소조는 용모가 아름다운 데다 성격까지 굳세었기에 카츠요리의 총애가 대단했다. 소조가 형 우에몬노죠의 신변을 걱정하여 두 번 말머리를 돌리자, 그 때 카츠요리도 말머리를 돌릴 정도였다. 카츠요리의 뒤에서 3~4정 정도 떨어진 곳에 타케다 사마노스케 노부토요武田左馬之助信豊가 3~40기를 이끌고 후미부대를 맡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고개를 돌린 후 노부토요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덴에몬을 쳐다보며 말하길, "나는 신겐信玄 시대에 앞을 다투어 달리면서 가문의 존귀한 콘지테이紺地泥 화살막이母衣에다 시로 카츠요리四郎勝頼라고 적은 것을 꽂고 다녔었다. 당주가 된 뒤에는 그것을 사마노스케에게 넘겨 주었는데, 지금 지켜보니 꽂고 있지 않구나. 만약 그것이 적의 손에 들어갔다면 카츠요리의 자손 말대에 이르기까지 치욕이 될 것이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이를 버리고는 물러날 수 없다." 고 말하였기에, 덴에몬은 사마노스케가 있는 곳에 말을 몰고 달려가서 이를 물어보자 "전투가 너무나 격심하였기에 꼬챙이는 버렸고, 화살막이는 가로인 아오키 오와리노카미青木尾張守에게 주어 갖고 가게 했다." 고 답하여 아오키가 목에 감고 있었던 호로를 풀어서는 넘겨주었다. 카츠요리는 이를 갑옷 하단에 묶은 후,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으나 말이 피로에 지쳐 움직이질 못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카사이 히고노카미笠井肥後守가 달려와 말에서 내린 후, "이 말로 갈아타십시오." 라고 권했다. 카츠요리가 "말에서 내리면 자네는 분명히 전사할 것인데.." 라고 이야기하자, "은의恩義를 위해서라면 목숨은 가벼운 것, 제 아들을 부디 부탁드립니다." 라고 답하며, 카츠요리가 타고 있던 말의 말고삐를 잡고서는 전장에 머물러 전사하였다.

  이 때에는 이미 적의 추격이 급박해져 있었기에 토쿠가와의 병사 2~3명은 즉각 그 뒤를 바짝 쫓아왔다. 덴에몬 / 소조, 그들과 맞붙어 각자 1기씩을 베어 쓰러트렸으며, 소조 쪽은 특히 한 기마무사와 맞붙었다 깔아눕혀져, 그 목이 베이려 한 차에 때마침 오야마다 카몬小山田掃部 / 그 동생 야스케弥介가 달려들어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야스케는 덴에몬이 분전할 때, 그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카츠요리의 스와 법성諏訪法性 투구가 논에 떨어진 것을 주워 챙겼다. 카츠요리는 소조에게 부채를 부쳐주며 그 노고를 칭찬하고, 덴에몬이 입은 가벼운 상처를 보고 스스로 약을 발라주었다. 쿠로세 여울黒瀬에서 코마츠가 여울小松ヶ瀬을 건너, 스가누마 교부 사다요시의 부세츠 성武節城에 들어가 비로소 매실즙을 마시며 갈증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카츠요리의 장병 중 죽은 자가 1만 명, 오다 / 토쿠가와의 사상자는 6천 명을 밑돌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됐든 노부나가 측에선 3중으로 나무울타리를 치고서, 그 곳에 기대어 타케다의 맹장 / 용사들이 돌격하는 것을 저지하고 타케다 군이 헤매는 와중에 조총을 쏘아 쓰러트리려 한 것이다. 철조망을 쳐 놓고 이 곳으로 달려들기를 기다려 기관총을 소사하는 현대의 전술과 판박이었다. 이러한 전술에 걸려들어서는 아무리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라 해도 살아 있는 인간인 이상, 곧장 당하게 된다. 그것도 그들이 이 싸움을 원해서 진격한 게 아니라, 주군이 내린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진하여 죽은 것이므로 안타까운 것이다. 카츠요리가 텐모쿠 산에서 멸망한 것은 (7년 후인) 텐쇼 10년(1582)이나, 타케다는 이 일전으로 인해 패망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는 필사적인 기병奇兵으로 요시모토를 쓰러트린 노부나가는, 여기에 와서는 아군의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만전의 전술을 고안해낸 것이다. 정말로 방심할 수 없는 대장이었다. 카츠요리 따위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 고 말해도 도리가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총이 전래되었기 때문에 천하가 통일될 수 있었다." 고 역사가들은 말하는데, 조총의 위력이 극도로 발휘된 것은 이 나가시노 전투長篠合戦가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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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인칭관찰자 : 2016년 내 이글루 결산 2017-03-23 19:5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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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키키 2016/03/06 21:26 # 답글

    잘봤습니다 ㅎ
  • 3인칭관찰자 2016/03/07 08:48 #

    감사합니다. ^^
  • 금린어 2016/03/07 14:18 # 답글

    나가시노 전투는 영화나 소설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던 이미지와 나중에 관련 서적을 통해서 접한 실제 전투 진행 과정이 너무나도 괴리가 커서 큰 충격을 받았던 전투네요. 잘 봤습니다 ㅎㅎ
  • 3인칭관찰자 2016/03/07 18:27 #

    감사합니다. ^^

    저도 어릴 적에 본 영화《카게무샤》의 나가시노 전투 이미지가 대단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열도에선, 이전까지 이 전투 떡밥의 근간을 이루던 "기마대 vs 조총부대" 라는 도식을 깨는 학설들이 나와 학자들 간에 갑론을박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고 하니(...)
  • 시무언 2016/03/08 14:43 # 삭제 답글

    나가시노 전투하면 조총 대 기마대 이미지가 강한데, 새로 나온 학설들은 어떤 의견을 얘기하는지 궁금하네요.
  • 3인칭관찰자 2016/03/08 22:35 #

    줄여서 말하면 "조총" 과 "기마대" 를 전투에서 걷어내버리는 식이랄까요... 주말이나 그 전부터 관련 포스트(=번역글)를 차츰차츰 올릴 생각입니다.
  • 재팔 2016/03/09 14:31 # 답글

    고생하셨습니다.^^
    도망치는 다케다 무사가 "낡은 거라서 버린 거다" 드립친 것은 나중에 야마오카 소하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잘 써먹었죠 ㅋㅋㅋ
  • 3인칭관찰자 2016/03/09 20:33 #

    감사합니다. ^^

    《토쿠가와 이에야스》에도 저 드립이 나왔었군요. 읽었는데도 기억이(...) 이자와 모토히코의《야망패자》에서 저 대사를 처음 봐서 그런지, 저는 저 드립 나오면《야망패자》쪽이 먼저 생각납니다.
  • 히알포스 2016/03/12 20:57 # 답글

    http://www.thisisgame.com/webzine/gallery/tboard/?n=113233&board=33

    떨어뜨려놓고....."그거 원래 필요없는거!" 드립치는거 보니가 이거 생각나네요.

    고전 개그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 의 한 장면입니다....ㅋ
  • 3인칭관찰자 2016/03/12 20:58 #

    왠지는 몰라도 유쾌하네요 ㅋㅋㅋ
  • 히알포스 2016/03/12 21:20 #

    지금까지 이 작품 안보셨다면 주말에 시청 권유드립니다. 71년도 물건인데 지금의 개그 센스와도 거의 100% 맞는다는 것이 포인트. (중간에 막 오x섹x 같은 이야기도 나옵니다. -_-;;) 역시 영국인들이란.
  • 3인칭관찰자 2016/03/12 23:56 #

    만렙토끼가 여기서 나온 거였군요. ㅎㅎㅎㅎ 재미있네요.
    나머지 댓글은 피곤해서... 내일중으로 달도록 하겠습니다.
  • 히알포스 2016/03/13 09:00 #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질문 하는건 순전히 제 얄팍한 호기심인데, 이런 것 때문에 부담이 되시는것같으니 말입니다.

    음....초라한 이런 질문은 그냥 보고 넘기셔도 됩니다....(저도 그런 걸 보고...아니 며칠 후에 이걸 다시 보는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그리고 저도 이런 질문은, 깊이 생각하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 그냥 별 생각 없이 떠올려서 던지는 식입니다.

    편하게 그냥 생각나는 거 말하시면 됩니다....(랄까 저도 그러지는 못한거같지만요;;)
  • 히알포스 2016/03/12 21:10 # 답글

    아, 관찰자님의 답변을 보니 불편하시지겠만 하나 묻고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도 언급하신 [카케무샤]는 인기를 끌었지요.

    (1) 근데 [카케무샤] 가 일본 본토에서도 인기 있었나요?? 왜냐면 카케무샤란 영화가 물론 영화 자체도 훌륭한 거장의 훌륭한 영화이지만, 이게 한국에서는 그 당시 해금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상징적인 콘텐츠...가 되어서 인기를 끈 면도 있거든요. (김훈 작가님의 수필집에서도 그런 의미로 봤다고 나와있죠)

    (2) 인기를 끌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이 영화가 계기가 되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게 나가시노 철포 신화의 그걸 무너뜨리는 데 기여가 있을거라는 점. 이렇게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 한국에서도 몇몇 사극이나 역사 배경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 그 시대에 대해 조명한 기사가 뜨고 우리 밀덕이나 역덕들도 "빼애액" 외치면서 고증이나 사건에 대해서 계속 말이 나오거든요. - 한국 사극도 이렇게 개선된 측면이 분명히 있고.
  • 3인칭관찰자 2016/03/13 18:35 #

    1. 개봉당시(1980년) 꽤나 히트쳤다고 합니다.(당시 돈으로 27억엔 수입) 일본극장영화 최대수입을 경신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단지 제작비도 만만찮게 든(당시 돈으로 6백만 달러) 영화라..

    2. 아무래도 역사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그 역사와 관련된 소재가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사실이지요. 관련서적도 많이 나오고. 그렇기에 연구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겠네요.
  • 히알포스 2016/03/12 21:30 # 답글

    (3) 그 전에도 이미 그런 논쟁이 있었다 - 라고 하셨는데 지금 현재 시점에서 "타케다 3만 기마부대" 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철포의 비중이 큼!" 이런 것은 거의 허구....로 결론이 났죠.

    하지만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위의 이런 것들의 거의 통설이었다는 겁니다. - 이러면 하나 의문이 또 생깁니다. - 대체 일본인들은 왜 이런 것들을 통사라고 생각했었을까요.

    전 이렇게 생각이 드는군요. 1 - 우선 철포란 것이 어쨌든 당시에 흔히 접하기 힘든 것이었고 또 오다-도쿠가와 측이 당시에 그걸 대량으로 썼던 건 사실입니다. 승패를 떠나서 그런 무기란 것이 당사자들이나 옆에서 논 매고 있었던 농부에게나 똑같이 "임팩트" 있게 느껴졌을겁니다. 그런 무기가 군담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나가시노 전투는 크고 중요한 전투였고, 또 오다-도쿠가와 측이 승리자였고 철포질을 당해 패배한 쪽에게는 철포란 것이 편리한 패배에 대한 합리화였을겁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3/13 18:41 #

    지당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조총이 부각되는 건 신병기였기 때문에 임팩트가 컸을테고,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도 이 전투에 대해 말할 때 조총을 부각시키면 변명할 길이 생길테니.
  • 히알포스 2016/03/13 14:39 # 답글

    2 - 또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가 있겠는데, 이 "철포" 란 것이 당시 유럽의 30년 전쟁 같은 곳에서 흔히 쓰이던 물건이었고 "근대적" 이라는 인상을 주기 좋은 물건입니다. ...... 제가 전에 야마오카 소하치 관련 말을 하면서도 토로했던 건데,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은 뭔가 일본사 전체에 걸쳐서 "우리 일본은 과거부터 서구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근대화된 곳이었다." 라는 전제를 깔고 색안경을 쓰고 보기 좋아하는 친구들이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철포를 써서 전투에서 승리했다. 뭔가 막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마우리츠 선형진 전술 같은 냄새가 드는 문장입니다. 일본인들의 색안경이, 이런 식으로 통사가 되는 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 "타케다 3만 기마부대" 나 이 나가시노 전투 철포 역할 이야기나, 아케치님 블로그에 당시의 정확한 정황과 철저히 반박이 소개되어 있는데, 찿아서 주소 링크라도 하려니까 못찿겠네요....게다가 찿으려고 이 분 블로그를 뒤지다 보니까 또 오랜만에 간 만큼 재밌는 글들도 많아져서 찿기가 귀찮아집니다??? 테헤.....
  • 3인칭관찰자 2016/03/13 18:45 #

    2. 아마 그런 면이 분명히 존재할겁니다. 조총뿐만이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라는 개인이 인기를 끄는 데도 그가 토종 일본인답지 않은, 서구적 근대인의 풍격과 발상을 지녔다는 '이미지' 때문에 상당한 플러스 효과를 얻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 히알포스 2016/03/14 21:45 #

    뻘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은.....서구적 근대인의 풍모라기보다는, 뭐랄까, 풍운아, 뭔가 튀는 인물?? 그런 느낌입니다. 서구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더군요 제게는. 뭐 당시의 일본사의 흐름이 요구한 스타일의 그런 느낌?? 뭐 여러 가지로 튀는 인물이야 역사에는 왕왕 나오고.

    뭐 언제나 관찰자님에 비해서 보잘것없을 그런 전국시대, 일본사 내공을 갖고, 요즘은 일본 사극도 한동안 안 본 제 느낌이기 때문에....별로 납득할만하지는 않군요.

    만약 풍운아나 튀는 인물은 아니더라도 그 시기 일본사의 굵직한 흐름을 만들었고, 그의 후계자가 결국 일본을 통일했기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은 묵직하게 다뤄질 수밖에는 없었겠지요.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약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가 존재하지 않고 정사 삼국지만 있었어도 조조란 인물은 이 중국의 삼국시대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을 겁니다. 왜냐면 그가 남긴 것 자체가 엄청나니까요. 거기다가 조조란 인물은 재미나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은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되는거죠.
  • 히알포스 2016/03/14 21:45 #

    (그러고보니 요즘 코에이 게임에서는 조조와 오다 노부나가를 등치시키려고 하는 게 눈에 막 보이는군요...-_-;;)

    뭐, 아케치님 블로그라고 알 지 모르겟습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 된 분인데, 그 전에는 국내 코에이 게임판에서 유명하셨던 분 같더라구요.

    이 분 블로그에 이 나가시노 전투와 철포 이야기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링크를 못찿겠다고 했었죠. 그래서 오늘 저녁을 먹고 바로 찿았습니다. -->> 참고가 될 수 있을지도?? :

    http://blog.naver.com/halmi/50082803632
    http://blog.naver.com/halmi/50117639994
  • ㅇㅇ 2016/03/16 23:10 # 삭제 답글

    벽제관 전투 같은것 쓴 내용 같은것은 없을까요?
    명군하고 제대로 처절하게 정면 격돌한 전투로 알고있고 요즘 관심이 가는 무네시게의 활약상이 어떻 했는지도 궁금 하고요
    신장의 야망창조 회전투탑 혼다,타치바나 제대로된 전투 일화는 쫌처럼 찾기가 힘드네요...저정도 능력 준거면 이유가 있을것 같아서요
  • 3인칭관찰자 2016/03/17 14:28 #

    지금 번역하고 있는《일본합전담》(이 "나가시노 전투"도 그 중 일부입니다)에 "벽제관 전투"가 수록되어 있긴 한데 미리 읽어보니 일본인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거 외엔 그야말로 참신한 게 없다.. 정도가 아니라 까일 구석이 꽤 많아서 나중에라도 올릴지 말지 아직 고민중에 있습니다..
  • 낙은혜 2016/06/08 23:15 # 삭제 답글

    잘봤습니다. 철포vs기마부대의 학설이 깨진거라면
    요즘에 새롭게 거론되는 학설들은 서로 뒤엉켜서 싸웠던
    기존의 백병전이라는 양상과 다르지않게 전투가 벌어졌다는 내용들인가요?
  • 3인칭관찰자 2016/06/09 08:10 #

    3단철포vs기마돌격의 구도가 깨지는 학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신쵸코우키》만 봐도 오다 군이 타케다 군의 진격을 막는 데 조총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건 확실한 것 같고, 최소한 오다 진영에 한정하자면 백병전이 주가 된 전투는 아니라고(추격전 제외) 생각됩니다.

    (3단철포 vs 기마돌격설을 극딜하신 스즈키 마사야 씨도 "병력이 적은 타케다 군이 병력이 많은 오다 토쿠가와 군이 포진한 진지를 공격한 공성전 비슷한 것" 이라고 하셨던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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