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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나가시노長篠 전투 (4)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나가시노 전투長篠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지금 통설로 자리잡은 나가시노 전투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출처 : 아오조라 문고


  중앙에 위치한 나이토 슈리(内藤修理, 마사토요昌豊 내지는 마사히데昌秀) 군의 활약도 화려한 것이었으나, 결국은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의 군과 같은 운명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타키가와 사콘쇼겐(滝川左近将監, 카즈마스一益) 4천여 명을 이끌고 사쿠마(佐久間, 노부모리信盛) 부대의 오른쪽, 야나기다柳田에 진을 치고 있는 걸 슈리가 1천 5백 명을 이끌고 들이쳐, 순식간에 첫 번째 울타리를 박살냈다.

  사쿠마 / 타키가와 양군이 혼란해하는 모습을 본 (토쿠가와徳川) 이에야스家康는 사자使를 보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고집 세고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진 사쿠마는 화를 내며, "싸워보지도 않고 무너지는 걸 타케다 가문에서는 미쿠즈레見崩라고 부르며 크게 비웃는다고 하더라." 고 말하며 용을 써댔다. 이에야스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고 말하며, 스스로 말을 몰아서 노부나가를 찾아가 일이 되어가는 형편을 이야기했다. 노부나가는 즉각 사자를 보내 경고하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양군은 한창 패퇴하고 있었다.

  슈리는 하라 하야토노스케(原隼人佐, 마사타네昌胤) / 안나카 사콘(安中左近, 마사시게昌繁) / 타케다 소요켄(武田逍遙軒, 노부카도信廉) 등과 함께 첫 번째 울타리를 말발굽으로 짓밟았으나, 노부나가 군은 두 번째 울타리로 들어가서는 조총만을 쏘아댔다. 슈리는 큰 소리로 "카미가타(上方, 쿄토 / 오사카 일대 지역) 군은 조총 없이는 싸움도 못 하느냐. 울타리에서 나와 타케다의 창끝을 받아낼 용기가 없는 것이냐. 더럽구나." 라며 호통쳤다. '더럽다' 는 건 무사의 불명예라고 하여, 타키가와 카즈마스 /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부대가 울타리 밖으로 나간 것까진 좋았으나, 손쉽게 격파당하였다. 그들은 논두렁을 지나 수렁논을 건너 세 번째 울타리로 도망쳐 들어갔다. 세 개의 경단을 금색으로 그린 카즈마스의 우마지루시馬印를 하마터면 빼앗길 뻔 했다고 했을 정도로 혼란한 상태였다. 그러나 슈리 / 하야토노스케 / 사콘 등도 하마하여 분전하고 있는 동안에 탄환을 맞고 쓰러졌다. 슈리의 목은 토쿠가와 밑의 무사 아사히나 야타로朝日奈弥太郎가 그 지휘채와 함께 취하였다.

  노부나가의 전략은 들어맞아, 바바馬場 / 나이토의 부대 모두가 도미노 쓰러지듯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어떠한 용장들과 맹렬한 무사들도 조총 앞에는 대적하지 못한 것이다. "조총 따위 비겁하다!" 고 이유를 늘어놓아 보아도, 상대가 조총 쏘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도리가 없다.

  타케다 군의 좌익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마사카게山県三郎兵衛昌景는 1천 5백 기를 인솔, 일단 토요카와 강豊川을 건너 울타리가 설치되지 않은 남쪽에서 공격해들어가려 했는데, 강은 깊고 강변도 험준하여,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었다. 토쿠가와 휘하의 무사 오쿠보 시치로에몬(大久保七郎右衛門, 타다요忠世) / 그 동생 지에몬(次右衛門, 타다스케忠佐)가 6천 명(역주 : 6백 명이 아닐지)의 병력을 데리고 타케히로竹広에 있는 울타리 앞 1정一町 거리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마사카게는 일거에 토쿠가와 군의 한복판으로 돌입하여, 적아군의 진형이 뒤바뀌었다. 대단한 중앙돌파인 셈이다.

  마사카게는 즉각 부대를 둘로 나누어, 오쿠보 군이 울타리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것을 저지했다. 야마가타의 무사 히로세 고자에몬広瀬郷左衛門이 흰 휘장이 그려진 사시모노를, 오스가 고로베에小菅五郎兵衛가 빨간 색 휘장 사시모노를 꽂고서 호랑나비 사시모노를 꽂고 있던 오쿠보 시치로에몬 / 금색 조경釣鏡 사시모노를 꽂고 있던 그 동생 지에몬과, 각자 타케히로 방면 울타리 안팎을 급히 달리면서 싸움을 벌였는데, 그야말로 화려한 광경이었다. 야마가타 부대, 오쿠보 부대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격전을 벌인 끝에, 탄환을 맞고 죽음을 당한 자가 6백 명에 달했다. 마사카게는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울타리를 부숴라." 고 명령한 후 계속 싸웠으나, 순식간에 또 2백여 명이 쓰러지고 부상당한 자도 3백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부상당한 자들도 신체에 3군데 이상의 부상을 입지 않는 한 물러나지 않았다. 마사카게 자신조차 투구의 후키카에시가 부서지고, 갑옷의 가슴 부분胸板 / 츠루바시리(弓弦, 역주 : 갑옷 앞 부분을 구성하는 부위 중 하나)를 비롯하여 탄환에 의한 상처가 모두 17개에 달했다고 하므로, 그 분전이 얼마만한 것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

  마사카게 휘하의 무사 시무라 마타에몬志村又右衛門가 마사카게가 탄 말의 입 부분을 잡고서, 퇴각하여 사기를 새로이 하자고 권했다. 그리하여 말머리를 돌리려 하자 이 때는 이미 적에게 두텁게 둘러쌓인 상태로, 붉은 색 투구 장식물을 보고 "저 자가 소문의 야마가타이다. 놓치지 않겠다!" 는 듯이 밀고 들어왔다. 히로세 고자에몬, 시무라 마타에몬 등이 이들을 막아 싸우는 동안에 마사카게는 물러나려 하다가, 문득 울타리를 바라보니  이 난군 속에서 유유히 부서진 울타리를 수리하는 남자가 보였다. "울타리의 말뚝은 이렇게 박고, 엮을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고 말하며 서서 일하는 것을 본 마사카게는, "저놈은 평범한 무사가 아니다. 저지시켜라." 고 말하며 말 위에서 우뚝 올라섰을 때, 한 발의 탄환이 말 안장 앞쪽에서 그대로 (마사카게의 몸을) 관통했다. 지휘채를 입으로 물고, 양손으로 말안장끈을 붙들려했으나,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낙마했다. 토쿠가와의 병사들이 달려가 그 수급을 취하여 울타리 내로 도망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시무라가 쫓아가 찔러 눕히고 결국 수급을 찾아올 수 있었다.

  마사카게는 처음엔 오부 겐시로飯富源四郎란 이름을 썼으나, 신겐이 그 무공을 칭찬하여 타케다 가문에서 유서 깊은 야마가타山県란 성을 하사하였다. 언제나 무장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할 때, "두 세번의 좋은 결과에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칼조차 녹슬기 마련인데 하물며 방심하는 마음은 그야말로 큰 적이다.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고 가신의 충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이다." 고 하였으나, 그의 그런 좌우명을 (타케다武田) 카츠요리勝頼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뻔한 일이었다. 마사카게가 전사하기 전에 주목했던 무사는 하시바 히데요시였다고 전해진다.

  타케다 사마노스케(武田左馬助, 노부토요信豊) / 오야마다 효에노죠(小山田兵衛尉, 노부시게信茂) / 아토베 오오이노스케(跡部大炊助, 카츠스케勝資) 등도 별군을 이끌고 탄죠다이弾正台에 있는 이에야스를 노렸으나 대세는 이미 결정났다. 모치즈키 진파치로望月甚八郎, 야마가타가 전사한 곳으로 달려와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철수하려고 했으나, 한 번에 아홉 발이나 날아온 탄환이, 다리와 갑옷에 명중하여 전사했다.

  이에 이르자 카이의 무장들과 용맹한 병사들 대부분이 탄환에 희생되어 죽으면서, 타케다 군은 완전히 무너지는 종국終局으로 이어졌다. 적이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고 오다 / 토쿠가와 양군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 추격전을 벌였다. 노부나가의 사자가 토쿠가와의 진으로 찾아가, "선진을 맡으라." 는 명령을 전하자, 오쿠보 형제의 부대에 속하여 금으로 된 지휘용 부채를 들고, 칠요七曜의 사시모노를 꽂고 있던 나이토 시로에몬 노부나리内藤四郎右衛門信成가, "우리 주군은 남의 명령을 받는 분이 아니다. 나이토가 삼가 듣고 대답하였다고 전하여라." 고 말했다. 의기양양하여 콧대가 높아진 것이다. 토쿠가와 본진의 좌 / 우부대인 혼다 헤이하치로(本多平八郎, 타다카츠忠勝) / 사카키바라 코헤이타(榊原小平太, 야스마사康政), 즉각 카츠요리의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카츠요리는 흔들리지 않고 앞서 달려 응전하려고 했던 것을 츠치야 소조土屋惣蔵가 말고삐를 붙잡고 말리며, 오야마다 쥬로베에小山田十郎兵衛 이하 친위대 4백여 기가 모두 전사하면서까지 시간을 버는 동안에 도망쳤다. 큰 힘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효장들이 모두 전사하여 지휘를 받들지 못하게 된 데다, 총대장이 퇴진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그 타케다 군도 이제는 난군이 되었다. 카츠요리의 후위부대 타케다 노부토모武田信友 / 타케다 노부미츠武田信光와, 아나야마 바이세츠穴山梅雪 같은 자들은 카츠요리보다 먼저 도망쳐버렸을 정도이다. 타키가와 강滝川을 건너, 서쪽 / 북쪽을 향해 뺑소니쳤다.        


          

덧글

  • 2016/03/05 17: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05 20: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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