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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60214 -《쓸모있는 바보들》中 독서



【 전쟁 비판론자들이 베트공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승리를 거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베트남은 자신들의 도구로, 앞장이로 이용했던 베트콩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호치민시로 개칭된 사이공 내의 주요 군사주둔지들을 배분하는 문제에 있어서 베트콩 지도자들의 의견과 입장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이들은 다른 불순분자들과 함께 일명 '재교육 수용소(reeducation camp)' 로 보내졌다.

  그렇게 수용소로 이송된 이들은 전체 인구 2,000만 명 가운데 대략 20만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일부는 수용된 지 며칠 만에 처형되었고 또 다른 이는 수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했다. 믿을 만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당시 처형된 사람이 약 6만 5000명이라고 한다. 그나마 이는 기나긴 강제수용소 생활 끝에 숨을 거둔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마지막 수감자가 풀려난 때는 사이공이 함락된 지 11년이나 지난 1986년이었다. 수용소의 환경은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돌 섞인 쌀로 만든 200그램의 식량으로 턱없이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수용 규모가 2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 70~80명을 밀어넣는 바람에 사람들은 조그만 통풍구를 통해 교대로 호흡을 해야 했다. 게다가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사방에서 악취가 코를 찔렀고 피부병이 번졌다. 식수 배급마저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렇게 '재교육 받는' 이들의 호소를 담은 탄원서가 비밀리에 호치민시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탄원서는 48명의 수감자들이 구두로 '서명' 하고 얘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이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 베트남 전역의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는 노동자, 농민, 프롤레타리아, 신앙인, 예술가, 작가, 애국적 지식인인 우리들은 무엇보다 먼저 전 세계의 진보적 운동가들 투쟁하는 노동자와 지식인들 그리고 지난 10년간 베트남의 인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지지하고, 억압과 착취 하에서 고통받는 베트남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을 지지한 모든 이들, 그들에게 진 빚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구체제 하에서 존재하던 감금 제도(국제 여론의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는 이제 훨씬 난폭하고 잔혹한, 교묘하게 계획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수감자들 간의 모든 접촉과 가족들과의 서신 왕래조차 금지되어 있다. 수감자의 가족들은 수용소 안에 갇힌 이의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더욱 큰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굴욕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수감자들은 그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그에 대한 처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족이나 친지가 처형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곳의 생활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사이공의 국영 감옥인 치호아 감옥에서 구체제 하의 인사 8,000명이 끔찍한 환경에서 고생할 때 세계 여론은 다양한 비난을 쏟아냈다. 지금도 그곳에는 4만 명 이상이 갇혀 있다. 수감자들은 굶주림으로, 공기 부족으로, 고문으로, 때로는 자살로 죽어가고 있다. (중략)

  베트남에는 두 종류의 감옥이 존재한다. 하나는 국영 감옥, 또 하나는 강제수용소다. 정글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은 평생 강제노역을 선고받는다. 재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법적 장치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중략)

  현재와 같은 인간성 말살이 공산주의의 확산 때문이라면, 그리고 미 제국주의 타파가 자신들의 무적을 입증하는 길이라는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진정한 인간성 구현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도적 기구인 국제적십자단과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 간청한다. 우리 스스로 이 고통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독약을 보내달라고!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하겠다! 가능한 한 빨리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그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1975년 8월 ~ 1977년 10월 베트남에서 】

 
  남베트남 정부가 아무리 부패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수십만의 국민들이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망망대해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산화된 베트남은 그들을 바다로 내몰았다. 1980년경까지, 소수민족이던 중국인들 상당수를 포함해 약 80만 명의 사람들이 배에 올라탔으며, 이들 보트피플은 미국ㆍ영국ㆍ오스트레일리아ㆍ이스라엘 등의 해군 함정이나 세계 각국의 어부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하지만 수천 명의 보트피플은 미처 구조되지 못하고 익사하고 말았다. 북베트남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1983년, 미국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국제사무소 소장인 폴 클리어리(Paul Cleary)는 의회에서 베트남의 재교육 수용소에 관해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그곳은 마치 자그마한 열대 휴양지 같았습니다. 재교육 과정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끔 격려하는 정부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베트남의 미래에 기여할 적극적인 참여자들로 소생시키려는 노력 말입니다."

  CBS와 ABC의 논평가인 린다 엘러비(Linda Ellerbee)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무렵 이렇게 조롱했다. "홍콩 정부 측에서는 '이들 보트피플이 미국으로 가길 원한다' 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군요.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봅시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들을 그들이 깡그리 잊고 미국으로 향한단 말입니까? 밀라이 학살사건, 네이팜탄, 보수주의의 상징인 실베스터 스탤론의 이미지를 잊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과거 미국에 자신들의 국토 상당 부분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들어오려 안간힘을 쓰는 멕시코인들만큼이나 아무 생각 없는 이들임이 분명하군요." 】


출처 : 모나 채런Mona Chren 著, 안진환 譯, 조선일보사 출간
《쓸모있는 바보들》P. 80 ~ 83 인용

(제 2장 1960년대, 미국 내에 반미주의가 만연하다 中) 

 

덧글

  • 2016/02/14 06: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14 09: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2/14 13: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2/14 13: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2/14 10: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14 12: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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