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패배자들의 전국사》세키가하라 전투 (3) 역사



  본 글은 2007년, 일본 출판사 헤이본샤平凡社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씨의 저서《패배자들의 전국사負け組みの戦囯史제 3장 <승리자들 속에서 나온 패배자들> 중 4편인【 세키가하라의 결산関ヶ原の結算 】부분(p. 109 ~ 130)을 번역한 것입니다. 위 책은 현재에도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이며, 국내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도 구하실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편 외에 다른 부분까지 번역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불참자ㆍ중립을 지킨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군과 서군의 대결에 끼어들지 않았던 가문도 여럿 존재했다. 가모(蒲生, 마사오眞紗雄) 씨의 통계에 따르면 11개 가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다. 그러나, 이들 가문이 진심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중립 내지는 불참을 선언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가문이 무사했던 것은 아니며, 카이에키(改易, 역주 : 영지 몰수) 당하거나 감봉(減封, 역주 : 영지가 깎여나감) 당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행동하지 않은 그 자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 측면도 존재했을 것이다. 

  북쪽에서 내려오자면, 에조치(蝦夷地, 역주 : 지금의 홋카이도北海道)의 마츠마에 요시히로松前慶広부터이다. 그는 원래부터 (토쿠가와徳川) 이에야스家康와 친했던 걸로 보이나, 세키가하라 당시에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한 사정이 참작되었던지, 가문은 무사했다.

  도호쿠 지방東北地方의 불참자는, 무츠陸奥 지방의 소마 요시타네相馬義胤 / 이와키 사다타카岩城貞隆, 데와出羽 지방의 아키타 사네스에秋田実季들이다. 소마 요시타네는 히타치常陸 지방의 사타케 요시노부佐竹義宣 산하의 다이묘与力大名라는 입장에 있었고, 이와키 사다타카는 요시노부의 (친)동생이었다. 그렇기에 요시노부와 발맞추어 '서군 쪽에 기운 중립' 을 지킨다는 선택을 한 것인지 모른다. 그 결과, 소마 가문은 한 번 영지를 빼앗긴 후, 얼마 안 가 다시 부활하였다. 이와키 가문도 12만 석의 영지를 몰수당했으나, 훗날 1만 석의 소다이묘로 다시 부활했다.

  아키타 가문의 경우는,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의 발단이 된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토벌에 나섰을 때, 당주 자신은 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장병들만 출진시켰다. 그러나 그들도 "서군이 거병했다" 는 소식을 듣자 도망쳐 돌아갔다고 하니, 서군 편에 선 것으로 간주되었던 모양이다. 결국 영지 삭감ㆍ이전 처분을 받았다.

  칸토의 불참자로는 히타치 지방의 사타케 요시노부가 있었다. 가모 씨의 통계에서는 서군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토벌군을 일으켰을 때 장병들을 출진시켰으나, 배후에서 이에야스 군을 위협하는 것처럼 간주될 수도 있는 포진을 취했다. [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미리 짜고 이에야스를 협공하려고 계획했으나, 카미가타(上方, 쿄토 근변 지방)에서 서군이 거병한 것을 전해들은 이에야스가, 우에스기와 충돌하기 전에 회군하여 서쪽으로 향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 고 일컬어진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한간후藩翰譜》같은 저서에서도 이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에야스가 사타케 가문의 움직임에 신경쓰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에야스가 서쪽으로 향한西上 후에 동군에게 적대하지는 않았기에, 일단은 무사했다. 그러나 전역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후, 대폭적으로 영지를 삭감당하고 아키타秋田로 옮겨졌다. 요시노부의 동생인 아시나 모리시게蘆名盛重는 독립된 영주였으나, 형과 마찬가지로 행동했던 듯하다. 그도 훗날 카이에키당하여, 아키타로 가서 사타케 가문의 가신이 되었다.

  카미가타 지방에서는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이 불참 가문이 되었다. 형식상으로는 이에야스도 미츠나리도 모두 토요토미의 신하이므로, 주군 가문이라는 입장상 참가할 것도 / 불참할 것도 없다. 고 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서군의 편에 서서 출병하였다. 예를 들자면 토요토미 가문 직속 궁수 / 조총부대는, 서전이었던 야마시로山城 지방 후시미 성伏見城 공성전에 가담한 바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투는 치르지 않았으나, 세키가하라 (본) 전투에까지 출동했다. 그리고 나나테구미七手組라 불리던 하타모토 친위대旗本親衛隊도 오우미近江 지방 오즈 성大津城 공격에 참가한 바 있다.     

  그들 가운데 실전에 참가한 자는 처분당했다고 하나,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었다. 키슈(紀州, 키이紀伊 지방) 사이가雜賀 출신으로 조총부대 지휘관鉄砲頭이었던 스즈키 마고사부로鈴木孫三郞는 후시미 성 전투에서 혼마루로 돌입, 성장城將 토리이 모토타다鳥居元忠의 목을 베었기에 카후(家譜, 역주 : 가문 내력을 적은 족보)에 따르면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顂로부터 감사장感狀이 발급되는 등 크게 칭찬을 받았는데, 전후 카이에키당한 후 추방되었다. 그러나, 오즈 성 공격에 가담하였던 나나테구미의 인물들 같은 경우, 처분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토요토미 가문의 가로家老 급이었던 카타기리 카츠모토片桐且元도 오즈 성 공격에 가신들을 참가시켰으나, 전후 처분당하기는 커녕, 1만 석에서 2만 8천 석으로 오히려 영지가 불어났다. 카츠모토 자신도 그 나름대로 옳게 처신했을지 모르나, 아무래도 이에야스의 타산에 의한 면이 더욱 컸을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카츠모토는 아직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카츠모토의 동생ㆍ사다타카貞隆도 오즈 성 공격에 참가했음에도, 영지가 이전되는 것만으로 무마되었다.

  그런가 싶은 반면으론, 마나베 사다나리真鍋貞成 같은 경우도 있다. 마나베는 이즈미和泉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는 노부나가信長 / 히데요시 밑에 있었으나, 그러는 동안 바이신(陪臣, 역주 : 일반 다이묘의 가신)이 되어 여러 가문을 전전한 후, 토다 카츠타카戸田勝隆를 섬겼다. 그러나 그 토다 가문이 후사 없이 단절되자, 히데요시도 측은하다 싶었던지 사다나리를 위시한 9명의 중신들을 거두어 자신의 직속신하로 삼고, 그들에게 영지를 하사했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들은 히데요리의 호위 기마무사가 되어 있었던 듯 한데, 세키가하라 당시에는 다섯 부교五奉行의 명령에 따라 오사카 성에 잔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무래도 동군이 유리한 듯 싶어서, 그 쪽에 가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고 한다면, 결과론에 기반한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이들에게는) 서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의 손에 의해 9명 모두가 영지를 몰수당한 후, 추방되었다.

  히데요시의 정실ㆍ키타노만도코로(北政所, 역주 : 오네おね 내지는 네네ねね라고도 불린다)의 오빠인 키노시타 이에사다木下家定와 그 아들 카츠토시勝俊도 불참자였다. 이에사다의 경우, 세키가하라 본 전투가 끝난 후, 타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로부터 "함께 오사카에 농성하여 싸웁시다." 는 제안을 받았으나, "나는 어찌됐든 키타노만도코로를 지켜야 한다." 고 말하며 거부한 바 있었다. 카츠토시는 개전 이전 후시미 성에 있었으나, 성에서 빠져나와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이에야스가 보기엔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친 것으로 간주되어, 전후 카이에키당했다.

  빗츄備中 지방에서 1만 3백 석을 받고 있던 이토 나가츠구伊東長次도 불참자로 간주되나, 이시다 미츠나리의 거병을 사전에 이에야스에게 밀고하였을 정도이니, 불참자라고 해도 중립을 지킨 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오사카 전투大坂の陳 때도 히데요리를 섬기면서 (오사카 성이) 함락된 이후는 고야 산高野山으로 도망쳤는데, 이에야스도 세키가하라 당시의【 옛 공적 】을 감안했는지 추적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훗날 토쿠가와 밑의 다이묘 중 하나가 되었다.

  큐슈九州의 고토 하루마사五島玄雅는 조선 전역(朝鮮役, 역주 : 임진왜란 / 정유재란) 당시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지휘를 받았던 관계상, 코니시의 재촉을 받아 도중까지 함께 했으나, 결국 돌아가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전후에 영지를 보전하였으니 이에야스에게 문책받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와 같이, 한 마디로 "중립" 이니 "불참" 이니 해도, 그들이 도달한 운명은 제각각 달랐다. 그렇다 쳐도 목숨을 잃은 자는 없지만, 가문이 몰락하고 / 사회적인 생명을 상실한 자도 적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 근세 다이묘로서 무사히 메이지 유신을 맞은 쪽도 몇 가문이 된다.           


덧글

  • 금린어 2016/01/19 08:34 # 답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역사의 전환점을 살았던 인간군상은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네요.
  • 3인칭관찰자 2016/01/19 14:58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립을 지킨 다이묘' 로 뭉뚱그려 분류되었지만, 그 행적이라든가, 입장&뒷사정에 따라 결말이 제각각이었다는 점이 번역하면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네요.

    (다음 글 - 양다리를 걸친 가문들 - 도 오늘 밤에 이어서 올릴 예정입니다)
  • 함부르거 2016/01/19 11:58 # 답글

    중립이라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중립을 지켰던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군요. 하긴 중립도 실력이 있어야 지키는 거니까 말이죠.
  • 3인칭관찰자 2016/01/19 15:01 #

    맞습니다. 전국적으로 싸움판이 벌어지는데 초연하게 기계적 중립을 고수할 순 없었겠죠. 깜이 안 되는 소규모 영주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고...
  • 시무언 2016/01/20 13:33 # 삭제 답글

    이전 글에서도 나왔듯이 지금이야 이에야스가 이긴걸 알고 있으니 중립이나 서군측을 어리석다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정말 고민 많이 했을듯 하네요. 규모나 표면상의 명분으로만 보면 미츠나리나 이에야스나 비슷비슷하니 어디에 붙어야 할지 정말 힘든 문제였던듯 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20 18:02 #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와 킷카와 히로이에가 미리 배신을 약속했다거나, 마시타 나가모리와 마에다 겐이가 양다리를 걸치며 서군의 정보를 이에야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거나, 모리 테루모토가 의심암귀에 걸려서 오사카에서 계속 밍기적거리며 끝내 세키가하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들도 당대에는 절대 알려지지 않거나 예측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런 내부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병력차이나 명분의 그럴듯함을 1순위로 보고 움직였겠죠(,,,)
  • 히알포스 2016/01/21 00:40 # 답글

    윗분들 말씀대로 봉건제라는 게 그렇죠. 뭐 개별적인 영주들 이야기 같은건 약간의 배경지식과 흥미가 있다면 재미있게 읽힙니다.....만 다 콩가루 얘기고 하나하나 보다보면 분량이 팍팍 늘어난다는게;


    그러고 보니 이거에 대해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우에스기 가문은 어느 진영에 가담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 3인칭관찰자 2016/01/21 08:03 #

    우에스기 가문은 서군에 가담했고, 미츠나리가 거병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군과의 싸움을 피하고 서쪽으로 떠난 후엔 카게카츠의 최측근이었던 나오에 카네츠구 등이 군대를 이끌고 동군의 모가미最上 가문의 영지로 쳐들어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미츠나리가 지면서 영지로 철수한 후 항복했고, 120만 석의 영지가 1/4 토막나서 30만 석이 되었죠. 그 30만 석 영지도 에도 시대에 우에스기 본가의 직계 후손이 끊어지면서 다시 1/2 토막났다가 최종적으론 18만 석 영주로 메이지 유신까지 존속했습니다.
  • 히알포스 2016/01/21 15:57 #

    살아남아서 있기는 했군요.

    그리고 댓글란 이용해서 이미지를 올리는 방법이 이글루스에서는 없나요...?? (혹시 있을 건 희박하지만)
  • 3인칭관찰자 2016/01/21 18:28 #

    같이 엮이는 경우가 많은 타케다 가문의 말로보단 훨씬 낫지요.

    그리고 댓글란에다 이미지 올리는 건 아직 이글루스가 지원하지 않을 겁니다.
  • 히알포스 2016/01/22 14:00 #

    확실히 이글루스는 댓글란 이미지 지원하지 않습니다.

    정 하고싶으면 다른 페이지에 이미지 올리고 링크를 걸던지 해야 해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2467
551
34861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