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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아네가와 강姉川 전투 (3)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아네가와 강 전투姉川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자이浅井 / 아사쿠라朝倉의 진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자이 군 아자이 나가마사(26세)

~ 39만 석, 병력 약 1만 ~

제 1진 이소노 카즈마사磯野員昌(병사 1천 5백)
제 2진 아자이 마사즈미浅井政澄(병사 1천)
제 3진 아칸 사다히데阿閑貞秀(병사 1천)
(역주 : 요즘은 아츠지阿閉라 불린다.)
제 4진 신죠 나오요리新庄直頼(병사 1천)
본진 나가마사(병사 3천 5백)


아사쿠라 군(아사쿠라 요시카게)

~ 87만 석, 병력 2만. 아네가와 강에 투입된 건 1만 ~

제 1진 아사쿠라 카게노리朝倉景紀(병사 3천)
제 2진 마에바 신파치로前波新八郎(병사 3천)
본진 아사쿠라 카게타케朝倉景健(병사 4천)



《신쇼타이코키真書太閣記》에 의하면, 아자이 / 아사쿠라 측이 전투 전에 군사회의를 열었을 때의 양상은 아래와 같다. 

  7일(역주 : 27일의 오타) 야심한 시각에 나가마사는 아사쿠라 마고사부로 카게타케와 면회하여 전투의 방편을 담합하여 말하기를, "에치젠 부대越前衆가 진을 친 오오요세 산大寄山에서 노부나가의 본진이 있는 타츠가바나龍ヶ鼻까지는 50정 거리입니다. 즉각 쳐들어가서는 인마 모두가 피로해져서 기세가 약해질 것이니, 내일 새벽에 노무라野村 / 미타무라三田村로 진채를 옮겨 한 숨 돌린 후, 28일 새벽에 노부나가의 본진을 불의에 공격하여 급히 들이치면, 적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할 것이라 아군은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아자이 한스케浅井半助라는 자, 뭇 사람들에게 무용武勇을 인정받던 자인데도 몇 년 전, (아자이) 히사마사久政의 비위를 거슬러 오다니小谷에서 쫓겨나, 노슈(濃州, 역주 : 미노 지방美濃囯)로 건너가 이나바 이요노카미(稲葉伊予守, 잇테츠一徹)와의 연고에 기대여 한동안 그 곳에 기거하며 숨어 있었기에 노부나가의 군대에 대하여 잘 알게 되었으나, 이번에 오다 / 토쿠가와와 전쟁을 벌인다는 말을 듣고 '아자이를 못 본 척 하면 더욱 더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고 생각하여, 이나바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몰래 오다니로 돌아가, 아카오 미마사카노카미(赤尾美作守, 키요츠나清綱)와 나카지마 휴우가노카미中島日向守를 통해 이전에 의절勘当 당한 것을 용서해 달라勘当免許고 부탁했으나 히사마사는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나바 가문 밑에서 은신하여 있었다면, 더욱 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 하여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두 사람(역주 : 아카오 / 나카지마)은 온갖 증거를 제시하며 사과를 대신해 주었기에 히사마사도 묵살하기가 어려워, "그렇다면 일단 용서는 해 주고 잠시 놓아두어 보자." 고 말하였는데, 그 동안 노부나가가 진채를 옮길 때 쵸노 와카사노카미丁野若狭守와 함께 치고 나가 전투를 벌여 수많은 오다 군의 목을 베었음에도, 쵸노도 한스케도 히사마사의 노여움을 산 터라 엔도 키에몬(遠藤喜右衛門, 나오츠네直経)이 적절히 중재를 해 주었기에, 히사마사도 드디어 마음을 돌려 이후로는 (영주의) 곁에까지 다가가 근무하게 되었고, 오늘의 회의석상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가마사의 작전견해를 듣고서는, "아시다시피 저는 3년간 노슈濃州에 있으면서 노부나가의 처치를 지켜보았습니다만, 두뇌의 민첩함은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렇기에 미타무라三田村까지 진채를 옮긴다면 반드시 대비를 해 놓을 것입니다. 만약 총공격을 벌여 전투를 벌인다면 아군에게 이롭지 못할 것 같으니, 지금은 잠시나마 적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고 하자,

  나가마사가 말씀하시길 "요코야마 성横山城의 군대가 위급하여, 이대로 대치하기가 어렵다. 적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좀처럼 전쟁을 벌일 수 없으며, 그리고 느긋하게 있다가는 요코야마가 결국 함락되고 말 것이다. 그 밖에 요코야마를 구원할 방법이 있는가. 지금은 전투를 벌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엔도 키에몬의 뇌리에서 자연히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요코야마 성에 농성한 자들이 원군이 오지 않는 걸 원망하여 적에게 가담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으며, 노부나가가 이 곳으로 쳐들어온 이래, 마음껏 설치고 다니게 한 것은 정말로 무기력했다. 조속히 진채를 옮겨야 한다. 주군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옮겨간 후, 29일날 죽을 힘을 다하여 적진에 쳐들어가면 아군의 승리 의심할 바 없으며, 만일 적 측이 우리의 기색을 눈치채고 저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전투를 벌이자.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키에몬은 '반드시 노부나가 본인을 공격해 죽이거나, 아니면 내가 죽거나' 하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로 걸어갈 작정이었기에 이른 시기부터 출진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히사마사조차 그 동안 엔도의 주장을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쾌히 허락한 바가 없었으나, 이번에만은 "키에몬노죠가 주장하는 바에 동의한다" 고 하며,

  "그렇다면 아사쿠라 님께서는 오다와 엔슈 군(遠州勢, 역주 : 토쿠가와 군) 두 부대 중 어느 쪽과 상대하실 겁니까?" 하고 묻자, 마고사부로는 "어느 쪽이 되든 상대할 수 있소." 라고 답하였는데,

  나가마사는 "아니, 저의 당면한 적은 노부나가입니다. 따라서 제가 노부나가와 대치하겠습니다. 아사쿠라 님께는 엔슈 군을 막아 주십시오." 라고 결정한 후, 진지 이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엔도 키에몬은 이전부터, 전투가 벌어지면 적진으로 섞여 들어가, 기회를 노려 노부나가를 죽일 생각을 했는데, 친근한 용사들과 이야기하면서 들은 바에 따르면, 모두가 "내일 전투에서 적아군 사이에 섞여 들어가려 하지 말고, 오로지 적진에 숨어들 생각을 해야 될 것이다. 혹 적진에 성공적으로 숨어들어 신불의 은혜를 받아 노부나가를 찔러 죽이게 되더라도, 그 적진에서 살아서 나오기는 지난하리라." 고 하자, "그럼 자네를 보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겠군. 이제는 이 세상의 추억으로 삼도록 하세" 라며 술판을 벌였는데, 여러 무사들은 그저 '늙은 무사(=키에몬)가 젊은이들을 격려한답시고 푸념이나 늘어 놓으려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키에몬의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우리들도 내일 전투에서 전사하여, 영예로운 이름栄名을 후세에 전하리라." 라고 답하는 것을 보고, 키에몬노죠도 기뻐하며 "그것이야말로 충신의 길이지. 이제 새벽이 가까워오니, 모두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며, 모두는 제각각 작별을 고했다.

  이와 같이 죽음을 각오한 엔도의 모습은 대단히 비장했는데, 그는 나가마사가 처음으로 사와 산佐和山에서 노부나가와 대면했을 때, '노부나가는 도저히 의지하기 힘든 인물이다' 는 것을 간파하고 "지금 즉시 습격해 죽여버립시다" 고 제의했으나, 나가마사가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노부나가와 인연을 끊게 될 때는, '도저히 노부나가에게 대적할 수 없다' 는 걸 알고서 극력 간언해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사이가 틀어진 지금, '홀로 적진에 잠입하여 노부나가를 죽여야겠다' 고 결심했다. 그야말로 아자이 가문에 둘도 없는 충신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번의 전투에서, 아자이 가문에서는 필사적인 전투가 되리라, 며 결사적인 각오를 한 자들이 그 외에도 제법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련한 것이 아자이 우타노스케浅井雅楽助이다. 우타노스케의 동생은 이츠키노스케斎宮助라고 했다. 몇년 전 세라다 전투世良田合戦 / 고에이지 전투御影寺合戦(에이로쿠 3년=1560년 발발)가 끝난 직후, 아자이 가문의 가신들이 모여서는 여러 무사들의 훈공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때 이츠키노스케가 "내 조부 야마토노카미大和守 / 그 분의 형 겐바玄蕃의 활약에 비길 자, 우리 가문에는 없지." 라고 자랑했다. 형 우타노스케는 이를 듣고 크게 화가 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서,  "그렇게 큰 소리 치다니, 무슨 짓이냐" 고 나무랐다. 형의 입장으로선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츠키노스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 질책을 받은 걸 괘씸하게 생각하여, 이후 형제는 오랫동안 불화하게 되었는데, 아네가와 강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인 27일 밤 해시(亥刻, 지금의 자정) 무렵, 형인 우타노스케는 동생 이츠키노스케의 진채로 찾아가, "내일 전사할 몸으로 어찌하여 불화함을 남기겠는가. 이제는 원한을 버리고 추억으로 남길 술잔을 나누자. 아버님의 존안을 뵈러 가기 전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괜찮겠지." 라 하면서, 얼굴을 마주보았다가, 이윽고 술을 권하며 홀짝이고는, 후다이譜代 부하들을 불러 사별과 생이별을 앞두고서 모두 함께 작별의 잔을 나누어 마셨다.

  아자이 측의 비장한 결심을 추량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아사쿠라 측은, 대장 자신이 출진하지 않은 데다, 그 대장 요시카게의 무사안일因循姑息한 기개가 자연히 장사将士들의 마음가짐에도 전염되었을 것이므로, 아자이 가문의 장사들처럼 진지하진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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