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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아네가와 강姉川 전투 (2)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아네가와 강 전투姉川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쿄토京都에서 기후岐阜로 돌아와 태세를 정비한 (오다織田) 노부나가信長는 6월 19일, 2만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기후를 출발하여, 21일날 이미 아자이浅井의 본성本城인 오다니小谷로 쳐들어가 저잣거리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아자이가 싸우러 나오지 않았기에, 일단 물러나 아네가와 강姉川을 건넌 후, 그 좌측 강변에 있는 요코야마 성横山城을 공격했다. 그리고 요코야마 성 북쪽에 있는 타츠가바나竜ヶ鼻에 진을 치고, (토쿠가와徳川) 이에야스家康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6월 27일, 약 5천여 기를 인솔한 이에야스가 원군으로 도착했다.

  (이에야스 입장에서도 중요한 전투였다. 노부나가로부터 가세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에야스는 제장들과 상담하였는데,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本多平八郎忠勝가 이에야스를 보며 말하길 "노부나가 공을 안심할 수 있는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나,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순 없습니다. 여차하면 주군殿을 불리한 싸움판에 내던져, 전사하게 내버려 둘 수도 있습니다. 이번의 출진은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이에야스는 이 충언에 기뻐하며, 일부러 많은 군대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출장지에서 패하더라도, 영지의 방어가 허술해지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었다.)

  (아자이) 나가마사도, 에치젠越前에 사신을 보내어 아사쿠라朝倉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그런데 (아사쿠라) 요시카게義景 자신은 출진하지 않고, 일가인 마고사부로 카게타케孫三郎景健에게 약 1만 명의 병사를 주어 파견시켰다.

  나가마사는 아사쿠라에 대한 의리 떄문에... 호의 때문에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었건만, 정작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이 중요한 일전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옆집이 불타고 있을 때는 '아직은 뭐..' 하는 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뭐, 그렇게 어리석고 우둔暗愚한 요시카게를 의지했던 것은 나가마사 본인의 실책이기도 하지만.....

  나가마사는 아사쿠라의 지원군과 함께 요코야마 성을 구원하기 위해 25일 오다니 성을 출발, 성 동쪽에 있는 오오요세 산大寄山에 진을 쳤다. 그리고 28일에는 30정 가량 전진하여 아자이 군은 노무라野村에, 아사쿠라 군은 미타무라三田村에 포진했다.

  이렇게 하여, 오다 / 토쿠가와 군은 아네가와 강을 사이에 두고 아자이 / 아사쿠라 군과 대치했다. 
  이제 남군南軍인 오다 / 토쿠가와 측의 진용을 보자면, 


오다 노부나가(37세)

~ 약 240만 석. 병력 6만. 아네가와 강에 와 있던 건 그 중 절반 ~

제 1진 사카이 마사히사阪井政尙 병사 3천
제 2진 이케다 노부테루(池田信輝, 츠네오키恒興) 병사 3천
제 3진 키노시타 히데요시木下秀吉 병사 3천
제 4진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병사 3천
제 5진 모리 요시나리森可成 병사 3천
제 6진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병사 3천
본진 노부나가 병사 5천


    요코야마 성 견제 병력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병사 3천
우지이에 나오모토(氏家直元, 보쿠젠卜全) 병사 1천
안도 노리토시(安藤範俊, 모리나리守就) 병사 1천.


토쿠가와 이에야스(29세)

~ 약 60만 석. 병력 약 1만 5천. 아네가와 강에 온 것은 약 5천 명 ~

제 1진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 병사 1천여 명
제 2진 오가사와라 나가타다小笠原長忠 병사 1천여 명
제 3진 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数正 병사 1천여 명
본진 이에야스 병사 2천여 명


그 외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가세시킨 자로

이나바 미치토모(稲葉通朝, 잇테츠一徹) 병사 1천여 명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장들 중에서 사카이 / 이시카와는 후다이(譜代, 해당 가문을 대대로 섬긴 집안 출신 신하)였으나, 오가사와라 요하치로 나가타다小笠原与八郎長忠는 그렇지 않았다. 오가사와라는 이전에 이마가와 가문의 대장으로 무공을 세워 온 용장이었다. 이에야스를 따르고 있긴 했으나, 혹시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에게 가세하기 위해 카미가타(上方, 쿄토 근변 지방)로 원정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빈 집이 된 엔슈(遠州, 토오토우미 지방)을 가로챌 꿍꿍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야스도 그러한 내심을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기에, 영지에 놔두지 않고 같이 데리고 온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에게 사슬을 채워 끌고 온 후, 전쟁에서 써먹으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오가사와라였던 만큼 (부하들 중에는) 무공武功으로 유명한 무사가 많았고, 아네가와 강에서의 활약도 마찬가지로 각별했다.

  (《부코자츠키武功雑記》에서 말하길,【 이번에 곤겐 님(権現様, 이에야스) 오가사와라 요하치로를 선봉으로 삼으셨다. 요하치로는 내심 꿍꿍이를 품고 있기는 하였으나 (선봉을) 사퇴하지 않고, 아네가와 강에서 선봉을 맡아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 요하치로의 부하 와타나베 킨다유渡辺金太夫 / 다테 요헤에伊達与兵衛 / 나카야마 제히노스케中山是非介의 활약은 특히 두드러져, 세 사람이 함께 곤겐 님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와타나베 킨다유에게는 감사장과 함께 요시미츠吉光가 만든 코시모노腰物가 하사되었다. 】고 한다. 이 오가사와라는 오다와라 전투 시기小田原の時에 죽었다. 아마도 현재의 오가사와라 나가요시小笠原長幹 백작은, 그 일가일 것이리라.)

  이에야스가 도착했을 때, 노부나가는 먼 곳에서 원군으로 찾아온 것을 감사해하면서, "내일은 꼭 약해진 부대를 도와 주시오." 라고 말했다. 즉 '예비대가 되어 달라.' 고 한 것이다.

  이에야스는 싫어하면서, "혼전을 벌이며(打ち込み, 저자 주 : 다른 부대와 뒤엉켜 싸우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싸우지 않는 건 지휘관으로서 오점이 될 것이니, 적은 병력이긴 하지만 독립된 1군을 맡고 싶습니다" 고 주장했다. "만약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영지로 돌아가 버리겠다." 고까지 말했다. 

  노부나가는 "정 그러시다면.. 아사쿠라 군을 맡아 주셨으면 하오. 그렇다고 해도 홋고쿠北国의 대적大敵과 맞서기에는 지금의 병력으로는 너무나 병력이 적소. 노부나가의 군대 중에서 누군가 한 명을 선택해 빌려 가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에야스는, "저는 작은 지방에서 적은 병력을 부리는 데 익숙해져 있으므로 많은 병력은 다룰 수도 없고, 호흡이 맞지 않은 자들을 호령하는 것도 수고스러우니 자신의 부대만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부나가는 거듭, "아사쿠라라는 홋고쿠의 대군을 이에야스에게만 맡겨두게 되면, 노부나가가 천하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니, 의리상으로라도 누군가를 부려 보시오." 라고 열심히 권유했기에, 이제는 어쩔 수 없어 "이나바 이요노카미 사다미치(稲葉伊予守貞通, 미치토모通朝 / 요시미치良通 등으로 불린다)를 빌려 주십시오." 라고 답했다.

  "토카이도 제일海道一의 지휘관" 인 이에야스가 오다 군 중에서 고른, 이나바 이요노카미의 체면이 세워졌으리란 건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나바 이요노카미는, 이나바 잇테츠稲葉一徹라 불리는 미노 3인중美濃三人衆의 한 사람으로, 사이토 가문을 섬긴 이래 명예로운 이름을 쌓은 무사였다. 다실에서 노부나가에게 살해당할 뻔 했던 것을, 도코노마에 걸려 있던 한퇴지韓退之의 시 "운횡진령雲橫秦嶺" 을 읊어서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문무를 겸비한 호걸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노부나가는 이나바의 공적을 칭찬하며, 자신의 이름의 한 글자를 주어 "나가미치長通란 이름을 써라." 고 했다. 그러나 이나바는 기뻐하지 않고 노부나가를 보며 말하길, "주군께서는 소경 대장이시며, 사람의 강함과 약함을 구별하지 못하십니다. 저도 카미가타 사람들 중에서는 한가닥하는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토쿠가와 님 부대 속에 들어간 이후에는 발목이나 잡는 약한 부대가 되어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훈공을 칭찬하시는 건 미비이키(身びいき, 역주 : 가까운 사람을 더욱 편드는 것)라 할 수 있으며, 미카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만 떠올려도 부끄러운 바입니다." 고 말했다. 자신의 훈공에 대해 겸양하며, 이에야스 군을 칭찬하는 등, 외교로서의 수단에 능숙한 여간내기가 아닌 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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