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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아네가와 강姉川 전투 (1)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아네가와 강 전투姉川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8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원인

  겐키 원년(1570) 6월 28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조력을 받아, 북부 오우미江北의 아네가와 강姉川에서 에치젠越前 지방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 / 북부 오우미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 연합군을 격파했다. 이것이 아네가와 강 전투이다.

  이 전투를, 아자이와 오다 측에서는【 노무라 전투野村合戦 】라고 불렀다. 아사쿠라 쪽은【 미타무라 전투三田村合戦 】라고 하였다. 토쿠가와는【 아네가와 강 전투 】라고 불렀다. 훗날 토쿠가와가 천하를 잡게 되었기에 결국 그 명칭도 아네가와 강 전투로 굳혀졌다고 한다.

  원래 오다 가문과 아사쿠라 가문은 사이가 나빴다. 두 가문 모두 시바 가문欺波家의 가로家老였다. 오닌의 난応仁の乱 당시 시바 가문이 양쪽으로 갈라졌을 때, 아사쿠라는 종가宗家 시바 요시카도義廉에게 반기를 든 지로다이후治郎大輔 시바 요시토시義敏에게 붙었다. 그리고 계략을 꾸며 요시토시로부터 에치젠 지방의 슈고 지위守護職를 넘겨받아, 에치젠의 영주国主가 되었다. 오다 가문은 종가인 요시카도를 섬기면서, 노부나가의 시대가 될 때까지 어찌됐든 형식적으로는 시바 가문의 가신이었다. 그렇기에 오다 측에서 보자면 아사쿠라 가문은 역신逆臣의 가문이었고, 아사쿠라 측에서는 오다 가문을 "바이신(陪臣, 독립된 영주가 아닌, 특정 영주를 섬기며 그 밑에 있던 신하의 가문)" 이라고 멸시했다. 

  하지만 두 가문 사이에 미노美濃 지방의 사이토斎藤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한결 나았다. 그러나 사이토 가문이 사라진 지금에 와서는, 조만간에 충돌해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오우미 북부 39만 석의 영주 아자이 나가마사는 이 당시 고작 25세의 젊은이었으나, 그 군대兵馬는 강하고 용감하였기에, 이쪽을 적으로 돌린다면 노부나가가 쿄토에 손을 뻗기가 불편해진다. 노부나가는 여동생 오이치おいち를 수양딸로 삼아 나가마사와 결혼시켜, 부자親子 간의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나가마사는 노부나가와 일가가 되는 데 조건을 걸었다. 그것은 아자이와 에치젠 지방의 아사쿠라가 대대로 절친한 관계였던 만큼, 앞으로 아사쿠라와 적대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이 조건을 수락하고, 에치젠과 적대하지 않겠다는 서약서誓紙를 나가마사에게 주었다.

  에이쇼(永正, 역주 : 에이로쿠永禄의 오류) 11년(1568) 7월 28일, 노부나가는 사와 산佐和山에서 나가마사와 대면했다. 사와 산은 당시 아자이 측의 용장, 이소노 탄바노카미(磯野丹波守, 카즈마사員昌)의 본거지居城였다. 노부나가가 가지고 온 수많은 선물에 화답하여 나가마사는, 대대로 물려진 가보로 "바위도 자르는 칼" 이라 불리던 비젠 카네미츠備前兼光의 타치太刀를 주었다. 이 아자이 가문의 유서 깊은 타치를 보낸 것이, 아자이 가문 멸망의 전조가 되었다는 말이 후세에도 전해 내려져 온다.

  그런데 힘은 없지만 음모陰謀를 좋아하던 쇼군將軍 요시아키義昭는, 킨키近畿 지방을 둘러싼 제후들을 규합하여 노부나가를 배격하려고 했다. 그 주력은, 에치젠의 아사쿠라였다.

  노부나가는 아사쿠라를 퇴치하기 위해 겐키 원년(1570) 4월, 호쿠리쿠의 눈이 녹기를 기다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함께 츠루가 방면敦賀表으로 출진했다. 그리고, 몇년 전 나가마사에게 서약서를 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마사에게 한 마디 통고도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나가마사에게 통고하지 않은 것은, '통고해 봤자 나가마사의 입장만 곤란해질 것이다' 는 데 대한 배려였으리라, 고 일컬어지고 있다. 

  결코 아자이 나가마사를 바보취급한 것은 아니며, 노부나가는 나가마사를 이 때까지 상당히 후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에치젠 출진을 듣고 가장 화를 냈던 건, 나가마사의 아버지 히사마사久政였다. 원래 히사마사는 나가마사가 16세였을 때 가로家老들에게 은거를 요구당하여, 나가마사에게 가문을 물려주었을 정도의 사내밖에 되지 않는지라, 그다지 영리한 맛도 없고, 고루하고 완고한 자였음이 틀림없으리라. 노부나가의 약속 어김에 화를 내며, "이와 같이 약속을 뒤집는 노부나가이니, 에치젠에서 돌아오는 귀로에 반드시 이 오다니 성小谷城으로 쳐들어올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위험한 노부나가에게 의지하지 말고, 이 쪽에서 먼저 관계를 끊고서 아사쿠라와 협력하는 것이 낫다." 고 주장했다.

  나가마사의 충신 엔도 키에몬(遠藤喜右衛門, 나오츠네直経) / 아카오 미마사카(赤尾美作, 키요츠나清綱) 등은, "노부나가도 옛날의 노부나가와는 다릅니다. 지금에 와서는 키나이의 다섯 지방畿内五州과, 미노美濃 / 오와리尾張 / 미카와三河 / 이세伊勢 등 12개 지방을 거느린 영주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노부나가처럼 그런 신의 없는 짓을 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이 아사쿠라와 합체해 봤자 고작 1개 반 지역에 지나지 않아, 도저히 노부나가에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소노 탄바노카미의 지휘하에 1 ~ 2천 병사를 내어, 형식적으로나마 노부나가에게 가세하여 에치젠으로 보낸 후, 열심히 노부나가에게 의지하는 쪽이 가문의 장구長久를 위한 방책입니다." 라고 했으나, 히사마사는 듣지 않았으며 다른 가신들 중에서도 히사마사에게 동의하는 자가 많았기에, 나가마사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스르기 어려워 결국은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후, 앞뒤에서 노부나가를 협공하기로 하였다.

  에치젠에 있던 노부나가는, 나가마사가 배반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가붙이인데다, 북부 오우미 일대를 주었으니,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인데." 라고 하며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알고는 당황하여, 허둥지둥 샛길을 따라 쿄토로 철수했다. 이 때, 키노시타 토키치로(木下藤吉郎, 역주 :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옛 이름)가 나서 후미부대를 맡았다. "카네가사키 후미군金ヶ崎殿軍" 이라는 타이코太閣 출세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야기이다.(역주 :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사실 이 전투에서 후미부대를 맡은 자로는 토키치로 외에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셋츠 지방의 이케다 카츠마사池田勝正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주력군을 형성한 것은 그 병력이 가장 많았던 이케다 카츠마사의 부대였다, 는 것이 현재는 정설이 되어 있다.) 

  노부나가는 이윽고 기후岐阜로 철수한 후, 아자이 정벌의 대군을 일으켜 6월 29일에 출진, 아자이의 본거지 오다니로 향했다. 이것이 아네가와 강 전투의 발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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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인칭관찰자 : 2016년 내 이글루 결산 2017-03-23 19:5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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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조훈 2016/01/06 22:11 # 답글

    아, 제목보고 터졌네.
  • 3인칭관찰자 2016/01/06 22:21 #

    제목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강이나 산, 섬 같은 경우 저렇게 표기하는 게 표준어라길래 일단 따라했습니다만..
  • 조훈 2016/01/06 22:22 #

    아내가
  • 3인칭관찰자 2016/01/06 22:23 #

    아..... ㅋㅋ
  • 태봉이 2016/01/07 12:33 # 삭제 답글

    오, 후위군의 주력이 이케다였군요.
    그런것이 지금은 히데요시가 주력인것처럼 전해졌네요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할것 같아요ㅎㅎ
  • 3인칭관찰자 2016/01/07 14:43 #

    정말 성공하고 볼 일입니다. ㅋㅋ

    서민들의 우상이었던 히데요시를 띄우고 싶어서 후세 사람이 아예 미츠히데와 이케다의 출연을 없애버린 것 같은데, 둘 다 사실상 가문의 대가 끊어져서 이런 역사왜곡에 클레임을 걸고 항의할 만한 지위를 가진 후손이 없었죠. 그걸 이용한 것 같아 좀 얍삽하다 싶기도 하네요
  • 히알포스 2016/01/07 18:27 # 답글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한다니요 ㅋ

    음. 히데요시가 다스렸던 오사카 주변에서는 아직까지도 히데요시를 좋은 인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일본 전체적으로 히데요시를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고 석하는 시각이 대세라지요.

    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 나무위키 들어가서 문서 보고 처음 알았어요. (윽. 전국시대 지식은 한참 부족하다는 게 또 걸리는군요.)

    물론 일본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뭐 단적으로 시바 료타로 선생만 해도 "풍신가 사람들" 에서 "이 가문은 벼락치기로 존귀해졌기 대문에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렇게 날뛰다가 사라졌다 라고 결론지였죠.

    참고 : http://valhae.kr/category/%EC%9D%BC%EB%B3%B8%EC%84%9C%EC%A0%81%20%EB%B2%88%EC%97%AD/%E8%B1%8A%E8%87%A3%E5%AE%B6%EC%9D%98%20%EC%82%AC%EB%9E%8C%EB%93%A4
  • 3인칭관찰자 2016/01/07 19:57 #

    히데요시는 에도 시대에는 토쿠가와 막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우상' 이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밑바닥에서 올라온 입신출세자의 대표' 였으며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위엄을 아시아에 떨친 영웅(...)' 이었던 데다, 1945년 이전에는 이 때 마침 요시카와 에이지 씨의《신사태합기》(최근 우리 나라에 정발된 소설《전국지》가 이《신사태합기》 번역본입니다.)가 연재(1939~1945) 된 것도 한 몫하여 언터처블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 히데요시의 인기는 단물이 많이 빠진 상황이죠. 히데요시의 흑역사들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고, 그가 저지른 병크를 한몸에 덤터기쓰고 욕먹은 인물(특히 이시다 미츠나리)들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게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의 일이니.
  • 히알포스 2016/01/07 23:02 #

    그렇군요. 생각해보면 저도 시바 료타로 센세를 읽을 때 이 분이 소설을 쓰면서 이시다 미츠나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일본에서의 이시다 미츠나리에 대한 평가는 "바카" 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토쿠가와 막부의 규제라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정치적인 이유로 그런 인식을 했던 것이 내려왔던 것일지도요. 에도 막부라는 정권의 창건자를 마지막으로 막아섰던 인물이라는 포지션이 되니까요. 히데요시는 그런 정치적인 이유를 다 뚫고 인기를 꾸준히 누렸던 것이구요.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위엄을.....이라는 평가였다라. 뭐 당연하지요.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상황에서는 없는 인물이라도 발굴해서 "봐라! 우리 역사에 예전에...." 이래야 할 판인데 대대적으로 대륙을 군사적으로 침공한 히데요시란 인물이 떡하니 있었으니까요. ---->>>> 여담이지만 [인간의 조건] 이라는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다니는 철강회사의 주임이 대미개전과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하면서 옛날 몽골을 막았던 가마쿠라 막부와 싯켄 호죠씨를 찬양하는 장면이 나오죠. 한국인인 저는 이 대목에서 "이게 뭔 개솔이야 ㅋㅋ" 이랬습니다만. (※주의 - 소설 자체는 절대 그런 우익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 저 대목도 아마 당시의 일본을 까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 히알포스 2016/01/07 23:16 #

    요시카와 에이지의 [신사태합기] 라는 물건이 정발된 것이 최근인가요?? 한국에서 센고쿠가 대중에게도 인기를 얻은 게 꽤 최근이라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 에이지가 제가 아는 그 에이지가 맞다면 꽤 오래전물건이 국내에 정발된걸수도.

    그리고 요시카와 에이지 말입니다. 이 요시카와 에이지가 그 요시카와 에이지가 맞나요....?? 삼국지를 쓴 그분이요. 국내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사람의 삼국지를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08 18:26 #

    에도 막부가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히데요시의 인기는 대단했기에, 히데요시 대신 덤터기를 쓸 주변인들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이시다 미츠나리나 오노 하루나가, 요도기미,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츠구 같은 사람들이 에도 시대 내내 까인 면이 있습니다.

    특히 미츠나리의 경우 20세기 초 토쿠토미 소호의 말을 빌리자면 "3백 년 동안 온갖 증오 / 모멸 / 비난 / 공격의 표적이 되어 왔다" 고 할 정도이니... 미츠나리 재평가를 처음 시작한 게 시바 료타로 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바 씨의 견해가 미츠나리 재평가에 꽤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인 듯 합니다.

    고미카와 준페이 씨의《인간의 조건》.... 한글판 새로 나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읽어볼까 싶으면서도 아직 손을 안 댄 소설입니다. 여러 분들로부터 일독을 추천받기도 했기에, 한 번 사 읽기는 읽어야 되는데...
  • 3인칭관찰자 2016/01/08 18:47 #

    문예춘추사의《전국지》가《신사태합기》를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아닙니다. 동서문화사에서 출판한 36권자리《대망》책 중에서 13~22 내지 23권까지가 요시카와 에이지 씨의 소설들이며《다이코》《무사시》《나루토비첩》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 중에서《다이코》가 바로《신서태합기》번역한 거라서, 시기적으로 동서문화사 번역이 먼저입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동서문화사가 처음《대망》을 번역한 때는 군사정부 시기라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오래된 번역이겠죠.)

    제가 알기로 동서문화사 쪽은 저작권 동의 없이 번역했던 책이고, 문예춘추사의 것은 요시카와 에이지 씨 책의 저작권이 끝난 2013년 이후 번역되어 작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를 쓴 그 요시카와 에이지 씨랑 동일인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문예춘추사의 경우《전국지》세트로 내기 전에《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전 10권)》, 그리고 역시 요시카와 씨 작품인《미야모토 무사시(전 10권)》도 출간했었죠. 모두 퍼블릭 도메인화된 이후에 나온 책들이라 저작권 문제같은 건 없을 겁니다.
  • 히알포스 2016/01/08 19:59 #

    1. 요시카와 에이지에 대해서 : 아......제가 말한 그 요시카와 에이지가 맞았군요. 이것도 어째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저 자신이 저번에 언급했었지만 센고쿠와 더불어 중국의 전국시대, 초한지도 군기물(軍記)로서 인기있는 소재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시카와 에이지라는 작가도 그 "전통" 의 연장선상에서 대하소설 삼국지에 손댈걸지됴요.

    하지만 이러면 궁금한점이 하나 더 생깁니다. 요시카와 에이지라는 작가는 이미 전쟁이 한창 달아오르던 1939년에 한창 작품활동을 했다는건데, 네, 제게 배신감과 생각할거리를 던져줬던 그 제국해군 출신 작가, [대망] 의 야마오카 소하치 처럼.......우익인건가요?? 현대일본에서의 평가는 어떤가요?? 모르시면 뭐 스스로 찿아봐야겠지만.
  • 히알포스 2016/01/08 20:25 #

    2. 소설 [인간의 조건] 에 대해서 : 작가의 성인 "고미카와" 가 일본인들 중에서 좀 흔치 않은 성이라는데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책을 다 볼때까지 고"미"카와가 아니라 고"마"카와인줄 알았다는. 헉.

    세계대전기의 일본 사회(정확히는 만주국의 일본인 사회)와 일선 제국육군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알게 된 계기가 연극대본을 읽다가 알게되었는데,

    왜냐면 수능 치고 몰아서 했던 일 중의 몇가지가 영화 보기, 연극 공부였죠. 연극에는 전부터 약간의 관심이 있어서.....그런 수순으로 한국의 유명 연극인들에 대해 조사하다가 최불암씨가 원래 연극배우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뜻밖이더라구요. 그 전까지만 해도 원로 방송인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이 분이 자기 인생의 책으로 [인간의 조건] 을 꼽더라구요. 이유가 "젊어 군생활을 하면서 이 책의 주인공처럼 처신하려 노력했고 배우로서 힘들었을 때에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라구요.

    다 읽고 나니 과연, 그럴 만 하더라구요. 그리고 또 이 책이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또 이게 60년대 일본영화의 대표명작 중의 하나....(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를 몰라요) 지요.감독도 유명한 코바야시 마사키더라구요......더더욱 놀라운 것은, 현대일본에서는 잘 먹히지도 않을 주제고 잘못 걸리면 우익에게 욕먹을 주제를 여럿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과 영화가 나오던 60년 초 일본/대한민국에선 엄청 인기었다고 하더라구요.
  • 3인칭관찰자 2016/01/08 21:33 #

    1. 뭐《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뿌리가 된 건 에도 시대 이래 삼국지연의가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 게 기반이겠죠.《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원소스가 된 것도 중국의 완역본이 아니라 일본인 승려에 의해 다시 다듬어진《통속 삼국지》였으니까요.

    예전에 읽은 어떤 대담집에서 요시카와 에이지에 대해 언급한 책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확실히 기억하는 건, 요시카와가 초등학교 중퇴자였기에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컸다는 점 정도? 그 외에는《참모 츠지 마사노부》번역할 때 알게 된, 패전 후 도망다니던 츠지 마사노부에게 요시카와가 도피자금을 대준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 밖에 생각나지 않는군요.
  • 3인칭관찰자 2016/01/08 21:42 #

    2. 최불암 씨가 연극배우 출신이었군요... 단지 최불암 씨가《인간의 조건》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언급하셨다는 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블로그 할 때였던 것 같은데)

    저도 아직《인간의 조건》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P2P 사이트에서 나온다고도 하긴 하덥디다만...

    소설판의 경우 아마 지금과 같은 시기에 처음 출간되어 나왔다면 일각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나, 잘 팔리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헤이트스피치가 유행하는 요즘 일본 분위기에는 과분한 책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요.
  • 히알포스 2016/01/10 03:14 #

    2. 소설 [인간의 조건] 에 대해서 : 아이고, 어제 이걸 쓰고 바로 월드 오브 워쉽 하느라고 글이 잘라진걸 몰랐네요.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 물건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짐작이 가는데, 그 때는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아직 크게 벌어져 있던 시기였고 60년대 한국문화라면 소위 문청이라고 불리는 문학청년을 자처하는….요즘식대로 표현하자면 그건 “진지병” 이 되겠군요. 일본에는 아직 전쟁 불장난의 뜨거운 맛을 기억하는 최소한의 개념탑재 사람들이 대세였을 것이니까 당연하지요. 말씀하신대로 요즘의 풍토에서는 한일 양국에서 똑같이 인정은 받을 수 있겠지만 인기는 얻기 힘든 그런 작품이지요.

    후일담이 있습니다. 작가인 준페이는 이 소설의 성공을 보고 3년후 후속작인 [전쟁과 인간] 을 출간하고 이 작품 역시 인기였다고. 그리고 또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은 이걸 영화화 [전쟁과 인간] 을 찍고 또 인기를 얻고 돈도 벌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전쟁과 인간] 역시 한국에 출간되었다는데, 제가 읽어볼려고 찿아보니까 없어요. 대학 도서관들에서는 대개 수장고에 들어가 있고, 심지어 국회도서관에는 아예 책이 없습니다. (검색만 해봤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60년대 정발되어 지금까지 재판이 없던 책이니까 찿아봤자 60년대식의 국한문 혼용체에 세로쓰기의 가독성 0점일 책일것이니 읽기 힘들겁니다.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조건] 은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때도 인기였고 지금도 저와 마찬가지로 재밌게 읽은 사람들이 많나봅니다. 재판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런데, 왜 후속작은 재판이 안되는겁니까……
  • 히알포스 2016/01/09 17:48 #

    1.요시카와 에이지에 대해서 : [참모 츠지 마사노부] 를 읽다가 그런 일화를 접하셨다구요?? 작년에 읽었을때는 본문에나 댓글에나 그런 언급은 없었던것같은데요.
    없었다면 없는대로, 관찰자님은 [참모 츠지 마사노부] 를 번역하기 위해서 잘 안보고 넘어가는 자료까지도 철저히 훑어가면서 번역했다는 것이니 다시 한 번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다라….?? 그러고보니 저도 좋아하는 [지의 정원] 에서 책을 읽고 싶어 돈을 벌어서 지역사회에 도서관을 기부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인용된 바가 있지요. 타카시 선생은 이걸 “젊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자” 라는 식으로 해석했습니다만.
    정말로 초등학교 중퇴하신 분이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찬사할만 하지요. 하지만 정말로 츠지에게 돈을 대줬다면 그건 까여야겠죠. 기분나쁘네요. 뭐 츠지는 그렇게 범죄자가 된 뒤에도 한동안 고향사람들에게는 사랑받았다고 하니까요…….그렇지만 작가로서는 더욱 용납이 안되는 일. 안그래도 이 사람의 삼국지는 따로 중국사와 정사 삼국지에 대한 지식이 보급된 오늘날의 삼덕;; 의 입장에서는 부실한 재미와 오류 투성이의 책인데, 츠지 마사노부를 도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안 좋게 보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09 18:48 #

    2.《인간의 조건》이 히트를 칠 무렵은 진지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꽂히는 시대였달까요. 요즘 사람들이라면 "씹선비" 같은 이야기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인데,《전쟁과 인간》이 나오려면 얼마 전 재판된《인간의 조건》이 많이, 아니 어느 정도 팔려줘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스24에서 세일즈포인트 확인해봤는데 판매량이 처참하더군요. ㅠㅠ
  • 3인칭관찰자 2016/01/09 18:59 #

    기실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전에도 츠지를 위해 돈을 낸 적이 있었다. 츠지는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과거 왕징웨이汪精衛로부터 기념으로 선물받은 명품 벼루를 들고 와서는 어디를 가든지 손에서 놓지 않았으나, 잠행생활로 궁핍한 나머지 이것을 처분하려고 했다. 그는 요시카와 에이지에게 벼루를 팔 생각을 하고, 타무라를 통해 요구를 신청했다. "쾌히 승낙한다." 는 답변이 왔기에, 어느 날 츠지는 그것을 가지고, 요시노 촌吉野村에 있는 요시카와의 집을 방문했다. 벼루 가격으로 지불된 돈은 10만 엔이었다. 물론 벼루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요시카와가 츠지의 잠행에 원조의 손길을 베푼다는 의미였다. 츠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헌책 600권의 교섭은 이러한 사정이 있었던 후의 일로, 말하자면 두 번째의 요청이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2번째의 요구를 거절한 진의는 알 수 없다. "한 번 동조해줬으니 이젠 됐다" 는 의미인지, 참모본부의 장서라는 데 의심을 품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고사본古寫本, 고판본古板本에 흥미가 없었던 것인지... 어쨌든 간에, 그 직후 타지마가 요시카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요시카와 에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츠지 씨와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렇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세상의 평판에 노출되는 것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 고." 라 말했다.

    번역해놓은《참모 츠지 마사노부》에서 인용했습니다. 두 번째로 들어온 원조요청은 거절했다고 하는군요. 도움이 되셨기를.

    사실《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도 나온지 70년이 넘어간 책이니, 정사 삼국지를 넘어서 배송지의 주해라든가 세설신어라든가 자치통감 같은 책들까지 펼치는 요즘의 삼국지덕들 수준에서 보면 함량미달로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죠.
  • 히알포스 2016/01/07 22:46 # 답글

    그리고 지지해줄 후손이 없어졌기 때문에 변호할수 없다라니,...... 이런거요!?!?

    http://nhistoria.egloos.com/2415967
  • 3인칭관찰자 2016/01/07 20:03 #

    시대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저 만화의 내용과 비슷합니다요.
  • 히알포스 2016/01/07 23:24 #

    그렇군요. 이 만화에서는 코에이와 코에이 게임과 코에이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제로 삼고 잇습니다.

    코에이라고 했는데, 제가 저번에 역설사 게임들에 대해 말할때 (역설사=패러독스사)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정말 좋아하지만 만드는 곳은 적다 ->그러다가 코에이라는 곳에서 삼국지 시뮬레이션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됨 -> 재밌게 했지만 재미도 좀 떨어지고 다루는 시간도 짧다, 일본인들의 역사관만을 충실히 반영한 것 같아서 찝찝하다 -> 그러다 패러독스를 접하고 "이거야말로 내가 원했던 진짜 시뮬레이션을 찿았다" 라고 생각하고 ->코에이가 더 못나 보인다+코에이 프라이스 엿먹어

    라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습니다. 뭐 편견일수도 있겠는데, 저런 배경이 있다는 걸 보면 또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겠지요.

    아니예요, 아니예요, 개인 취향일지 몰라도, 코에이는 정말 패러독시에 비하면 아니예요. 더군다나 코에이 프라이스는 용서가 안됨...... 아, 일본게임 다루시다보면, 왜 코에이는 코에이 프라이스를 고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 3인칭관찰자 2016/01/08 18:46 #

    저도 코에이가 왜 고가정책을 고수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히알포스 2016/01/08 20:02 #

    좀 과격하게 말했는데 어디까지나 제 취향이고 제 생각이니까 이해해주시길.....

    코에이 프라이스를 까기는 했지만 이것도 좀 피상적인게 삼국지 시리즈 12 잠깐 해본게 마지막이고 2000년대 이전의 항유기나 조조전 같은 작품들, 태합입지전이나 신장의 야망 같은 시리즈는 손을 안댔거든요....아! 중요한 걸로 진삼국무쌍 시리즈가 있는데 (코에이 역사게임들 중에서 가장 매출액이 많다고. 특히 북미에서 삼국지 덕후 입문작으로 쓰이고있다고-_-:) 이것도 안해봤군요....

    이 작품들도 코에이 프라이스를 고집할지? 아니면 일본, 한국에서만 코에이 프라이스를 적용하는걸까요?

    아, 그리고 코에이도 더 이상 코에이가 아니라 그 수영복 게임 만드는 테크모라는 회사랑 합쳐서 "코에이테크모홀딩스" 라는 회사로 바뀌었다지요?? 코에이 프라이스는 경영적인 이유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08 21:56 #

    미국 아마존에서 잠시 검색해봤는데 미국에서는 그럭저럭 싸게 파는군요. 일본에서 만엔 넘어가는《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WITH PK》가 미국에서는 5만원 정도밖에 안 하네요.

    무쌍 시리즈는 익숙해져보려 노력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한글화 끊어진 후로 디지털터치란 유통사에서 일본판 그대로 정발시킨 게 원성을 사서 덤핑당한 제품이 많았기에 싸게 구할 수 있기는 하지만, 휴대용 게임기로 플레이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장쾌한 맛은 안 나더군요.
  • 히알포스 2016/01/10 03:13 # 답글

    이것도 별 상관없는 얘기일수도 있는데, 이 아네가와 강 전투는 토탈워 : 쇼군2 에서 역사적 전투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쇼군2의 역사적 전투 지상전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전투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오다(플레이어)진영으로 아사쿠라가 오오즈츠 로켓을 쏴댑니다;; 네. 이 게임에서는 오오즈츠가 로켓 발사기로 구현되어있어요....(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이 물건 조선의 주화에 영향받아 왜란 이후 생긴 물건이라고 태클 많이 들어왔었죠) 일개 다이묘인 아사쿠라가 저런 물건을 갖고 있을리는 없겠고 난이도 향상을 위한 장치라고 봐야죠.

    하지만 "적절" 한 컨트롤로 이기면 그만....나는 플레이어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뭐냐구요? 토탈워 : 쇼군2를 추천하기 위해서입니다. 토탈워 :쇼군2 사무라이의 몰락도 할만하구요. 근데 이제 스팀 세일이 다 끝났네요.....

    그래도 추천. 토탈워 하세요 두 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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