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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다이몬] 쿠로다 칸베에, 전설의 진상 역사



  이 글은 2014년 1월 출간되었던 일본잡지《歷史發見 Vol. 1(창간호)P. 100 ~ 101페이지에 수록된, 와타나베 다이몬渡邊大門 씨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2014년 NHK 대하드라마《군사 칸베에》방영과 궤를 같이 한 물건이기에 물론 지금의 유행에선 비켜났지만, 칸베에나 쿠로다 가문에 관심이 있으신 분께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화의 근거

  쿠로다 칸베에黑田官兵衛와 관련된 전설 / 일화의 수는 많으나, 기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칸베에의 모습은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것이다. 그러한 전설과 일화는 어떤 이유나 경위를 통해 만들어진 것일까?

  유아사 죠잔湯浅常山의《죠잔키단常山紀談》이라는 책에 의하면 칸베에는 히데요시의 오토기슈(御伽衆, 말벗) 야마나 젠코(山名禅高, 토요쿠니豊囯)에게, 세키가하라 전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에야스를 쓰러뜨리는 건 손쉬운 일이다. 큐슈 평정 후 시마즈島津를 아군으로 삼고, 만약 시마즈가 저항하면 공격하면 된다. 2만의 대군을 이끌고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와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를 거느리며 도중에 로닌들을 긁어모으면 10만의 군세가 되리라. 키요마사는 맹장이므로 나의 친위대旗本가 되어 공략해 나가면 이에야스를 멸망시키는 건 간단한 것이다."

  같은《죠잔키단常山紀談》에 의하면 칸베에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칸베에는 (쿠로다) 나가마사長政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는 대단히 도박을 잘 하는 사람이다. 세키가하라에서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조금만 더 버텨줬더라면 큐슈에서부터 공격해올라가 일본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럴 때는 아들인 너를 버리더라도 큰 도박을 해 보리라 생각했다."

  물론 칸베에의 일화는 이것뿐만이 아니며, 다음의 에피소드도 대단히 유명하다.

【 세키가하라 전투 종료 후 나가마사는 나카즈中津에 돌아와 칸베에에게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손을 내밀며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고 이야기를 했다. 칸베에는 "이에야스가 내민 것이 오른손이냐, 왼손이냐?" 고 나가마사에게 물었다. 나가마사가 오른손이라고 답하자, 칸베에는 "네 왼손은 뭐하고 있었느냐?"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다면 천하는 쿠로다 가문의 것이 되었을 텐데, 라는 말이 된다. 기실 이들 일화는 완전한 사실무근이 아니라 그럴 듯한 근거가 있다. 그것이 쿠로다 나가마사의 유언장(《쿠로다 가문 문서黑田家文書》)이다.

 
  나가마사의 유언장

  겐나 9년(1623) 8월 4일 나가마사는 세상을 떴는데, 그 유언장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나가마사의 유언장은 가신인 쿠리야마 다이젠 토시아키栗山大膳利章와 오고 쿠라노죠 마사나오小河內藏允正直에게 보낸 것으로 두 사람의 계인割印이 찍혀 있다. 아마도 공공연히 내비칠 것을 전제로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참고로, 그 외에도 나가마사가 남겼다고 전해지는《고유이카이御遺誡》/《고죠소쿠御定則》는 근년의 연구로 위서임이 판명되었다.

  왜 나가마사는 유언을 남기려고 한 것일까?

  그 목적은, 만약 쿠로다 가문의 자손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 막부권력(쇼군)의 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사태에 빠졌을 때, 쿠로다 가문의 중신들이 막부의 로쥬老中들 중에 연줄이 닿는 자에게 고해 바치기 위한 내용을 써서 남긴 것이었다. 그 이야기의 골자란【 이에야스가 천하를 잡고, 에도 막부가 존재하는 것은 쿠로다 가문의 덕 】이라는 것 뿐이다. 나가마사는 장래의 쿠로다 번이 카이에키(改易, 영지 몰수)의 위기에 기울었을 때 쿠로다 가문의 무공에 기대어 가문 단절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가마사는 쿠로다 가문의 공적을 과시하기 위하여 수많은 "가공의 이야기" 를 사례로 들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나가마사는【 만약 자신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붙었다면 동군은 패배했음이 분명하다 】고 서술하였다. 나가마사는 유언 속에서 서군 승리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던 것이다.
 
  나가마사는 아버지 칸베에에 대해서도 놀랄만한 가정을 기록해 놓았다. 그것은 칸베에가 카토 키요마사 등 큐슈의 무장들과 손을 잡고 동군을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쓴《죠잔키단》의 일화 - 칸베에가 나가마사를 버리면서까지 천하를 노리려 했다 - 는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즉《죠잔키단》의 일화에는 원소재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가마사는 이에야스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 이에야스의 천하는 나를 비롯한, 무용으로 이름 높은 여러 명의 영주가 아군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칸베에와 나 두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세키가하라에서 승리를 얻자 이에야스가 내 손을 잡고 "이번의 승리는 전적으로 나가마사의 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 근거이다. 】  

  이 이야기도 앞에서 쓴《죠잔키단》의 일화 - 이에야스가 나가마사에게 손을 내밀며 감사를 표했다 - 는 부분과 꼭 닮았다. 이것도 나가마사의 유언장에 훗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그 유언장의 효과인지, 칸에이 9년(1632)에 일어난 집안분쟁인【 쿠로다 소동黑田騷動 】에서 쿠로다 가문은 카이에키를 면하였다. 


  쿠로다 가문의 존속을 위해 만들어진 전설

  나가마사는 유언 중에 계속해서 쿠로다 가문이 명문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천하를 잡는 것도 가능했다고 호언하는 한편, 막부의 체제가 이미 반석에 올랐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교만하지 말고 쇼군(=막부 권력)에 대해 충실하게 봉공할 것을 설파하며 쿠로다 가문의 영속을 강하게 요망했다. 한편으로 칸베에와 나가마사를 반쯤 "신격화" 시킴으로써 가신들에게 쿠로다 가문에 충성할 것을 설파하는 일면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이 이윽고 칸베에를【 명군 】으로 만드는 전설 구축으로 이어진다.
 
  번의 시조라고 해야 할 칸베에를 명군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나가마사와 후쿠오카 번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여러 책들을 통해서 반쯤 '신이 들린 듯한' 칸베에의 에피소드를 반복하여 재생산하게 되었다 생각된다.

  그리고 이 편찬물들은, 칸베에가 등장하는 현대의 TV나 소설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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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6/01/03 13:1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03 20:32 #

    자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괜찮은 글 발견하면 포스팅하겠습니다. (__)

    (원래는 비공개로 달아야 할 글이지만, 이글루스 특성상 로그인(=회원가입)하지 않으신 분께서 비밀댓글을 다시면 제가 비밀답글 달아드려도 댓글 다신 분이 답글을 읽을 수 없게 되어 있기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 후지하라 2016/01/04 11:02 # 답글

    공개답글 감사합니다.
    비공개로 적으면서도 비공개 대댓글일꺼라 생각이 들어 피드백은 포기하고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배려해주신 씀씀이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그덕분에 휴면계정까지 되살려서 로그인했네요 ㅎㅎ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1/04 20:25 #

    계정까지 부활시켜 댓글 달아주시는 데 저도 감명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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