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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카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合戦 (完)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카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 (타케다武田) 신겐信玄의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우에스기上杉) 켄신謙信은, 호위 기마무사馬廻り들로 구성된 강병剛兵 12기를 거느리고 (타케다) 요시노부義信 부대를 돌파한 후, 신겐을 향해 쇄도해 갔다. 그의 선정(禅定, 역주 : 불교용어, 몸과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경지)이 불러온 것이었을까, 그 철저하고 맹렬한 돌격은 정말로 귀신 같았다. 이를 본 신겐의 측근 무사近侍들 20명이 야리부스마(槍衾, 역주 :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어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창을 내질러 공격하는 전법)를 만들어 돌격대를 저지했으나, 그 사이를 비집고 나와 '아뿔싸' 하고 외칠 틈도 주지 않은 채로 신겐에게 다가간 켄신은 나가미츠長光 타치太刀를 한 번 휘둘러, 신겐을 향해 내리쳤다.(켄신의 그 때 나이는 32세) 비파 노래의 가사처럼, 신겐은 칼을 뽑을 여유가 없었기에 지휘용 쇠부채를 들어 탁, 하고 막아냈으나, 이에 이어 두 번째로 휘두른 칼날은 신겐의 팔을 베었고, 전광석화와 같이 휘두른 세 번째 칼날이 그 어깨를 상처입혔다.

  이 때 황망히 달려온 하라 오오스미노카미 토라요시原大隅守虎義는 그 옆에 있던 자개로 세공한 신겐의 장창을 집어들어, 상대 기마무사를 향해 내질렀으나 빗나가, 그 빗나간 창날이 (기마무사가 탄) 말의 삼두(三頭, 등골 뒷부분)를 세게 찔렀기에, 말은 깜짝 놀라 (기마무사를 태운 채로) 뛰쳐나가면서 신겐은 위기를 모면했다. 앞에서 인용한《고센키五戦記》는 그 기마무사에 대해【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에치고越後의 아라카와 이즈노카미荒川伊豆守일 것이다 】라고 적어 놓았으나, 이를【 마사토라(政虎, 켄신)가 듣고서,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고 모두에게 이야기하셨다. 】고 되어 있다. 센고쿠戦囯 시대에 수많은 격전이 있었지만 그래도 주장들이 무기를 잡고서 1:1 대결一騎討을 벌인 사례는 그다지 없는 듯하다. 신겐은 이 일을 겪은 직후에도 태연자약하게 손자孫子 깃발과 스와 법성法性 깃발을 세워놓은 채로 지휘용 걸상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휘채를 휘두르며 지휘를 계속했다고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다.(후에 지휘용 부채를 살펴본 결과 여덟 군데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고 하니, 제법 많이 무언가를 받아낸 셈이다) 하라 오오스미노카미는 수훈을 거둔 창을 높이 치켜들며, "지금 사이죠 산妻女山에서 아군의 선봉대가 달려오고 있다.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다!!" 라고 외치고 다녔다. 신겐의 침착한 모습과, 이 시의적절한 처치는, 무너져가고 있던 아군을 그야말로 용기백배하게 했다. 

  이 때의 모습을《코요군칸甲陽軍鑑》은【 적 / 아군 3천 7백명의 병력이 혼잡하게 뒤엉켜 찌르고 찔리며, 베고 베이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갑옷의 양어깨 부분을 마주잡고 뒤엉켜 바닥을 구르면서 (한 쪽이) 적의 수급을 취하면, "그 목은 내 주인의 것이다!" 라고 이름을 댄 후 창으로 찌르려는 것을 보고, 또 그 자를 베어 눕히면 다음에는 18~19세쯤 된 조리토리(草履取り, 역주 : 주인의 짚신을 들고 다니는 하인)까지 나타나, 손을 맞잡고 서로를 찔렀다. 】고 적어 놓았다. 양 가문 친위대의 격전양상을 기록한 것이며, 다른 부대들도 모두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코甲 / 에츠越 양 군의 정예병들이 필사적으로 싸운 것이므로, 맹렬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훗날, 오사카 전투大阪陣 당시 발군의 공적을 세워 감사장感状을 받은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 스기하라 치카노리(杉原親憲, 역주 : 스기하라杉原가 아니라 스이바라水原가 옳다)는, "이번의 전투 같은 건, 켄신 공 시대의 전투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사이죠 산으로 향한 코슈 군甲軍은 오전 7시, 사이죠 산에 도착하여 아시가루들을 보내 적을 상대하게 했으나 산 위는 적막하여 소리조차 없었고, 적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종이로 만든 수상쩍은 가짜 깃발들만이 억새풀 사이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침안개가 걷힌 카와나카지마 저편에서 소라고둥을 울리는 소리, 조총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이를 갈면서, 10명의 무장들은 카와나카지마로 향하기 위해 산을 달려 내려왔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도섭장渡涉場이 위치한 쥬니가 여울十二ヶ瀬을 건너가려고 서두르자, 에치고의 후미부대를 맡은 아마카스 오미노카미甘粕近江守가 아시마葦間에서 일제히 조총을 소나기처럼 쏘아댔기에, 코슈 군은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저마다 아메노미야 나루터라든가, 네코가 여울 등을 통해 강을 건너, 북진하였다.

  네코가 여울을 건넌 오야마다 부대小山田隊가 가장 먼저 카와나카지마에 도달하여, 에치고 군의 최우익에 위치한 시바타 부대新発田隊를 향하여 맹렬히 돌격했다. 이 소모되지 않은 부대를 대적하기 버거웠던 시바타 부대는 퇴각을 시작하였고, 이누가 여울狗ヶ瀬을 건넌 코슈 군도 켄신 친위대의 배후를 향해 전진했다. 형세는 일변, 이제 에치고 군은 총퇴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주장인 켄신은 히로세 여울広瀬 방면에서 적을 압박하고 있던 제장들에게 "신속히 병사들을 추스려 사이가와 강 방면으로 퇴각하라." 고 명령했고, 자기 자신도 카키자키 등과 함께 배후에 있는 사이죠 산을 우회해 오는 코슈 군에 응전하면서 물러났다. 타로 요시노부는 군을 정비하여 켄신의 친위대를 추격했다. 켄신은 여러 부대의 퇴각을 지켜본 후 마지막으로 물러났으나, 코슈 군의 추격이 거셌기에 사이가와 강으로 퇴각하는 것이 곤란해져, 동쪽으로 혈로를 열어 미마키바타케 여울三牧畠の瀬을 건너 퇴각했다고 한다. 에치고 군의 대부분은 진바가하라陣馬ヶ原에서 반격한 후, 탄바지마丹波島에서 사이가와 강을 건너 젠코사善光寺 방면으로 총퇴각했다. 이 사이가와 강을 건널 때, 소모되지 않은 코슈 군 부대의 추격을 받아 전사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속출하였다. 사이가와 강은 수량水量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에치고 군의 후미부대殿軍를 맡은 아마카스 오우미노카미 카게모치甘粕近江守景持는 부하들을 집결시켜 마지막으로 퇴각을 시도했다. 코슈 군은 이들이 에치고의 친위부대라 보았던 듯하다. 그리고 타마키田牧 북방 부근에 이르렀을 때 코사카 탄죠(高坂弾正, 마사노부昌信 내지는 토라츠나虎綱)의 급습을 받고 이에 응전해 싸웠다. 코사카는 자신의 성인 카이즈 성海津城이 신경쓰여 사이죠 산에서 그 쪽으로 먼저 향한 뒤 후에 하치만바라八幡原로 나왔는데, 이 때는 이미 적을 사이가와 강 방면으로 몰아내고 있을 때였기에, 아마카스 부대를 보자 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르르 돌격했다. 아마카스 부대는 여러 번 역습을 가하면서 사이가와 강을 건너, 유유히 좌측 강변에 위치한 이치무라 마을市村에 진을 치고 대선상지에 등대풀을 매달아서는 (이를 보고 찾아온) 아군 패잔병들을 수용했다. 이 아마카스 부대의 후미부대로서의 활약은 카와나카지마 전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오래도록 감탄하여야 할 바이다.


  이렇게,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끝이 났다.

  큰 싸움이었음에도 정치적으로는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에스기 / 타케다 양 가문이 딱히 어떻게 된 것도 아니며, 카와나카지마도 그대로 남겨졌다.(역주 : 실제로는 이 전투 이후 카와나카지마는 타케다의 영지로 편입되었다)

손실을 비교해 보면,

우에스기 측 전사자 3천 4백,
타케다 측 전사자 4천 5백


  이렇게 보면, 타케다 쪽의 피해가 더욱 심하다. 거기에다 동생인 (타케다) 노부시게信繁가 전사했고, 신겐 자신과 아들 요시노부도 부상당했다. 반면 우에스기 측에서는 이름 있는 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작전 쪽으로 보면, 타케다 측은 교묘히 허점을 찔린 바 있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에서 전쟁의 승패란, "무대에 머무른 자가 이긴다." 는 식이었다. 무대라는 건, 아마 전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전장에 끝까지 붙어있던 쪽이 이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케다 측이 이긴 게 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카와나카지마 전투를 비평하며, "묘시에서 진시까지(오전 5시 ~ 9시)는 우에스기의 승리. 진시에서 미시까지(오전 9시 ~ 오후 3시)는 타케다의 승리." 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정당한 비평인지도 모른다. 그 후, 에이로쿠 7년(1564)의 전투에서, 코甲 / 에츠越 양군의 오랜 승부를 스모로 결정하기로 하고, 코슈 군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야스마 히코로쿠安間彦六 / 에치고 군에서는 작은 체구의 하세가와 요고자에몬을 내어 씨름하게 한 끝에 요고자에몬이 승리, 카와나카지마 4군이 에치고(우에스기)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나, 이것은 거짓말인 듯하다.

  카와나카지마 전투 당시 신겐은 41세 / 켄신은 32세였다. 히데요시의 말을 빌리면 "바보도 하지 않을 전쟁을" 했던 데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나, 신겐은 깊은 지모와 정예함을 / 켄신은 첨예함과 과단성을 지녔기에 실로 훌륭한 싸움이 되어, 권투로 말하자면 "체급 차이도 없고, 쌍방 모두 단련된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무승부로 끝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첨언

  (1) 우에스기 켄신이 득도하여 켄신이라 불린 건, 20세 무렵부터다.(역주 : 실제로 후시키안 켄신不識庵謙信이라 불린 건, 테루토라로 이름을 고친 이후로, 최소 30대 중후반 이후에야 '켄신' 이라 불렸을 것이다)  

  (2) 오타 스케마사太田資正는 (오타) 도칸道灌의 손자로 산라쿠三楽라는 호를 썼다. 지모가 있어, 히데요시가 감탄하며 이에야스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 곳에 두 가지 신기한 것이 있는데, 자네는 아는가?" 하고 묻자, 이에야스는 "하나는 산라쿠겠지요. 두 번째는 모르겠습니다." 고 답하였다. 그러자 히데요시는, "내가 필부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의 주인이 된 것이 첫 번째고, 산라쿠가 저런 지모를 가지고도 한 지방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두 번째 신기한 일이지." 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히데요시가 산라쿠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지智 / 인仁 / 용勇의 세 덕을 갖춘 양장良將이다. 그런데도 녹봉이 작은데, 나는 한 가지 덕도 갖추지 못하였는데도 천하를 잡는 데는 명수이지." 라고 했다. 크고 작은 싸움 도합 79번에 나가, 이치반야리一番槍 23회를 기록하였으며, 그 지혜는 천하를 울릴 정도의 명장이었으나, 출세운이 따라주지 않은 남자였다.

  (3) 켄신이 여러 번 칼을 휘둘렀음에도 신겐을 놓쳐버린 건 깔끔하지 못한 일이지만, 말 위에서 칼을 휘둘러서는 사거리가 멀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듯하다. 훗날 켄신은 "그 때 창을 갖고 있었다면 결코 놓치지 않았을 것을..." 이라며 탄식했는데, 창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성流星이 번쩍인 곳에서 큰 뱀을 놓치고 만 】것이다.     
   

                  

덧글

  • 재팔 2015/12/16 20:25 # 답글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다바루자카 전투를 하실 예정이신지 궁금하네요^^
    드라마들에선 여기서 우에스기 군이 장군급이ㅜ잘 안 죽은 게 아쉬웠던지 몇 명을 죽이더군요. 케이블 tv에서 대망이라는 괴이름으로 방영한 다케다 신겐 사극에선 오니코지마 야타로가 신가리 하다가 죽지 않나, NHK 사극 하늘과 땅과에선 겐신의 유모 여자호걸이야 가상의 인물이라 죽어도 그러려니 했는데, 무려 나가오 마사카케도 중상을 입고 쓰러져 죽어버리더군요ㅠㅋㅋㅋ 무려 눈도 잃어서 자기 마누라와 가게카쓰를 그리워하며 죽더라는..
  • 3인칭관찰자 2015/12/16 20:52 #

    감사합니다. 단축키 잘못 눌렀다 1/3 정도 분량이 날아가는 바람에 한때는 엄청 허탈하더군요. ㅋㅋ

    타바루자카 전투는 시대순으론 이 책에 나온 전투 중에 가장 마지막이라 맨 마지막 번역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필요하시면 타바루자카를 우선하겠습니다.(그러고 보니.. 네이버에서 타바루자카 전투라고 치면 재팔님 블로그가 가장 먼저 뜨던데... 제가 가져가서 번역해도 괜찮겠습니까?)

    NHK 대하사극이 카와나카지마에서 나가오 마사카게를 죽이다니... 놀랍습니다. 호수에서 뱃놀이하다가 익사한 것보단 간지나는 최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 재팔 2015/12/16 20:54 #

    번역하셔도 괜찮으실 거 같아요 ㅋㅋㅋ 어차피 저도 그거 살짝만 하고 그냥 내팽겨쳤는데, 한 걸 다시 보니까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ㅋㅋㅋ
  • 3인칭관찰자 2015/12/16 20:59 #

    그렇군요. 그럼 나중에 제가 번역해 보겠습니다. 재팔님께서 하신 번역글도 잘 참고하겠습니다 ㅎㅎ
  • 조훈 2015/12/16 23:14 # 답글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키쿠치 칸 참 좋아하는 작가라서...
  • 3인칭관찰자 2015/12/17 08:08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정작 저는 키쿠치 칸의 소설보단, 글 맨 위에서 적은 것처럼 아쿠타가와 / 나오키 상의 창시자이자 문예춘추 출판사의 창립자... 라는 점 때문에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 히알포스 2015/12/18 19:39 # 답글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2)

    관찰자님은 그렇게 이 작가를 알게 되신 건가요. 확실히 지력은 있는 분인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글을 전에는 읽어본 적이 없고 여기서 처음 본 것이기 때문에 다 판단할수는 없겠습니다만. (음. 분게이쥰슈를 만든 사람이 이 사람인 건가요.)

    이 사람은 2차 세계대전 전부터 작품활동을 해오던 사람임을 감안할 때, 확실히 일본인들의 전국시대 애호 성향은 제 예상보다 훨씬 전에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당연합니다. 일본에도 에도 시대부터의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 문화, 강담사 문화가 있었고 그때부터 군기물(軍記物) 이 인기있다는 소재였다니까 말입니다. 번역하신[나의 쇼와사] 에도 그런 걸 읽고 컸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전 개인적으로, 물론 일본 전국시대, 중세사도 재미있고 흥미있지만(그때 후배분의 역할이 지대) 그것보다도 그 역사를 현대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어떻게 가공하나, 그걸 현대 일본인들(그리고 한국 포함한 해외의 이런 문화 즐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나에도 흥미가 갑니다. 이번 글도 그런 생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것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5/12/19 09:45 #

    감사합니다. ^^

    네. 이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위의 댓글에 적은 대로입니다. 분게이슌쥬 창립자이긴 한데... 그 후손들이 회사를 물려받은 건 아니라더군요.(패전 이후 사원들이 출판사를 재건했기 떄문이라고)

    에도 시대부터 전국시대는 좋은 떡밥이었죠. 물론 전국시대 뿐 아니라 겐페이전쟁 시기 / 일본 남북조 시대에다 중국의 삼국지 / 초한지 관련 컨텐츠들도 서민들 속으로 파고들었긴 하지만. 그리고 에도 시대에 유행한 군학(=병법)은 전국시대 유명무장들의 간판을 걸고 보급되었지요.《고요군칸》 같은.(타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켄신은 이로 인한 대표적인 수혜자들이기도 합니다)

    저도 [ 그 역사를 현대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어떻게 가공하나, 그걸 현대 일본인들(그리고 한국 포함한 해외의 이런 문화 즐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나 ] 에 대해 히알포스님과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도움이 되셨다면 기쁘게 생각합니다.
  • 히알포스 2015/12/18 19:38 # 답글

    음. 글이 중간중간에 날아가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에. 저는 긴 글을 쓸 때는 컴퓨터에도 워드프로세서를 하나 띄워놓고 거기 쓴 다음에 그냥 ctrl+c - ctrl+v......

    뭐 이런 짧은 덧글같은 건 그냥 쓰지만요
  • 3인칭관찰자 2015/12/19 09:40 #

    텍스트 파일 하나 열어놓고 거기에 내용 복사하면서 만약에 대비할까 합니다.
  • 권조 2016/06/12 10:28 # 삭제 답글

    글을 재미있게 잘 써주셔서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6/06/12 11:32 #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뿌듯하네요. 덧붙이자면 이 글의 원작자가 쇼와 시대 초기의 유명한 소설가였기 때문에, 원문 자체의 버프를 받은 점도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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