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키쿠치 칸] 오케하자마 전투桶狹間合戦 (4)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오케하자마 전투桶狹間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67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3대 전투(오케하자마 / 아네가와 / 나가시노 전투)의 경우 최근의 학설에 의해 전투의 양상과 전개 자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뒤집어져서, 이《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수록된 이야기는 상당히 낡은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지금 통설로 자리잡은 오케하자마 전투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 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마루네丸根가 함락된 후 와시즈鷲津도 마찬가지로 악전고투했다. 이마가와 군今川勢은 마루네에서 했던 것처럼 불을 지르며 공격해왔기에, (오다織田) 노부히라信平를 위시한 자들이 방어전을 벌인 보람도 없이 전사하고, 남은 병사들은 모두 키요스清須를 향하여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가 오전 10시 경.

  나루미鳴海 방면을 향하여 주둔하고 있던 삿사 마사츠구佐佐政次 / 센쥬 스에타다千秋季忠 /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 이와무로 시게요시岩室重休 등은 노부나가가 탄게丹下에서 센죠지善照寺를 향하여 진군하는 것을 보고, 3백여 명을 인솔하여 나루미 방면의 이마가와 군을 향해 돌격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사츠구 / 시게요시 / 스에타다 이하 50여 명이 전사했다. 스에타다는 이 때 27세였는데, 노부나가는 그를 불쌍히 여겨 그 자손을 아츠다 신궁의 다이구시大宮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이 전투 이전, 노부나가의 노여움을 산 적이 있기에 그 속죄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라 생각하고, 즉각 적의 목을 하나 베어 배알을 허락받았으나 노부나가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수급을 연못에 던져버리고 다시 또 수급 하나를 베어서는 손에 들고 왔으나 마찬가지로 용서받지 못했다. 훗날 모리베 전투森部の戦い에서 이치반노리(一番乗り, 역주 : 적진에 가장 먼저 돌격함)를 하여 비로소 용서받았다고 전해진다.

  카사데라의 유아사 진스케 나오무네湯浅甚助直宗라는 14세의 젊은 무사는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노부나가가 갈아탄 말을 잠시 실례하여 이를 몰고 적 측의 무사 한 명을 쓰러트리고 목을 베었기에, 크게 기뻐하며 노부나가에게 보여주러 돌아왔으나, 함부로 맡은 부서를 떴다고 하여 꾸짖음을 받았다.

  코레즈미(惟住, 니와丹羽) 고로자에몬五郎左衛門의 휘하 무사 야스이 신자에몬 이에모토安井新左衛門家元는 나루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적 17기騎를 화살로 쏘아 쓰러트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노부나가의 장병들은 선전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이마가와 군은 대군이다보니 정공법의 싸움에서 상황은 이미 노부나가에게 불리하였다.     

  마사츠구 / 시게요시 / 스에타다 세 무사의 목이 이마가와 본영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센죠사에서 전해들은 노부나가가 이를 갈며 당장에라도 본군을 이끌고 이마가와 군을 향해 돌격하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야시 미치카츠林通勝 / 이케다 노부테루(池田信輝, 츠네오키恒興) /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등이 초조해하는 말의 입 부분을 잡고서 "적의 수는 많고 아군의 수는 적은 데다가, 길이 협소하여 일거에 다수의 병사를 진격시키는 게 불가한 곳인데, 어찌하여 정면에서 싸움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라고 간언했는데, 출진할 당시의 여유를 상당 부분 상실한 노부나가는 이를 듣지 않고 나카지마中島로 건너가려고 했다. 이 때 만약 노부나가가 나카지마로 건너가 정면에서 전투를 벌였다면, 아마 우다이진右大臣 노부나가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지지 못한 채로 끝이 나버렸을 것이다. 마침 바로 이 때, 야나다 마사츠나梁田政綱가 보낸 척후병이 쿠츠카게沓掛 방면에서 돌아와 "요시모토는 지금 오타카로 이동하기 위해 오케하자마로 향했습니다." 는 소식을 보고했다. 얼마 후 또 다른 척후 한 사람이 "요시모토는 텐가쿠하자마田樂狹間에 주둔해 있습니다." 는 소식을 보고했다. 마사츠나는 노부나가에게 권유하기를, 요시모토는 지금까지의 승리에 교만해져 아마 방심하고 있을 테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샛길을 통해 불의에 들이치면 요시모토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한동안 어거지를 부리고 있던 노부나가는 역시 명장답게 곧장 마사츠나의 말을 따라 센죠지에 약간의 병사들을 남겨놓고 깃발을 많이 세워 병력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 후, 자신은 샛길을 통해 텐가쿠하자마를 향해 진군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더운 날씨였으나 낮시간이 되면서 번개가 치고, 그와 동시에 거친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하여, 바람도 산들에 심어진 나무들을 뒤흔들었다. 그 덕분에 군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이마가와 군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기에, 이는 아츠다 신의 도움이라며 용약하여 산길을 나누어 진군했다.


가이시 씨外史氏 산요(山陽, 라이 산요頼山陽)가 후에 노래하기를,


장수들에게는 하무를 물리고 말의 혀도 묶었다네
将士銜枚馬結舌

오케하자마, 번개가 나무통을 찢어발기듯
桶狭如桶雷擘裂

날랜 용은 목을 잃고 비늘과 껍질이 튀었네 
驕竜喪元敗鱗飛
  
얼굴을 때리는 피비린내는 비인가, 피인가
撲面腥風雨耶血

이 일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니
一戦始開撥乱機

토카이도의 전쟁내음은 만고에 사라졌다네
万古海道戦氛滅

그저 핏자국같이 붉은 홀치기 염색물을 바라볼 뿐
唯見血痕紅紋纈 

 
카사데라의 산길을 뒤흔드는 소나기
비 내리는 와중에 돌격했을 것인가

이는 막부 말기 이노우에 후미오井上文雄의 노래이다.


  노부나가들이 예상한 대로 요시모토는, 거듭되는 승전보에 기뻐하며, 마침 부근의 신관祠官들과 승려들이 이를 경축하는 술과 안주를 가져왔기에 기분이 좋아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의 요시모토가 입은 군장은, 붉은 색 바탕의 비단으로 지은 히타타레 / 가슴 부분이 하얀색인 갑옷 / 여덟 용의 모습을 그려넣은 고마이 투구, 그리고 마츠쿠라고松倉鄕와 다이사몬지大左文字의 타치太刀와 와키자시脇差를 차고 있었다. 이 다이사몬지는 이윽고 노부나가에게 노획되어, 그 검 표면에【 에이로쿠 3년(1560) 5월 19일 요시모토의 목을 베었을 때 그가 소지하고 있던 검. 】이라고 새겨지고, 뒷면에는【 오다 오와리노카미 노부나가 】라고 새겨지게 되었다.

  요시모토의 술판이 절정에 달했을 때 노부나가의 장병들은 텐가쿠하자마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는 타이시가네太子ヶ根 언덕에 있었다. 텐가쿠하자마는 오케하자마로 이어지는 외길 외에는 쌍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요시모토는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만다. 언덕 위에서 노부나가는 "말에서 내려 돌격하는 게 어떨까." 를 놓고 논의하자 모리 요시나리森可成는 "말을 탄 채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 답했으나, 마침 낮이 되면서 폭풍우가 어느 정도 잦아드는 것을 보고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쳐들어가게 되었다. 요시모토의 본영에서는 설마 노부나가가 이런 식으로 불시에 쳐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아군끼리의 다툼이 일어난 거겠지' 하는 식으로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소란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요시모토는 병사들을 제어하기 위해 장막을 걷게 하고 있던 도중 앞에서 언급한 쿠와바라 진나이桑原甚內가 이를 발견하고 달려들었으나, 측근 무사들에게 가로막혀 참살당했다. 진나이를 따라다니면서 여기까지 온 핫토리 코헤이타服部小平太가 이러한 한복판에 섞여 들어왔던 것을, 요시모토는 그를 아군이라 착각하고 "말을 끌어오라." 고 명령하였기에, '이 놈이 대장이구나.' 는 걸 간파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요시모토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자개로 세공한 (코헤이타의) 창의 자루를 잘라버림과 동시에 코헤이타의 무릎을 베어버려 (코헤이타의 무릎이 꺾여 앞으로) 고꾸라지게 했다. 그와 함께 요시모토의 목을 노리고 있던 모리 신스케毛利新助가 이름을 대고 요시모토를 깔아눕힌 후 그 목을 베려고 했다. (요시모토의)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서두르던 신스케는 왼손 집게손가락을 요시모토의 입에 쑤셔박았다가 그대로 깨물렸으나, 결국 그 목을 베었다. 불시에 습격당한데다가 대장이 전사해버렸으니 이제 병력수는 문제되지 않았다. 이마가와 군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버렸다.
 
  이마가와의 부장, 마츠이 무네노부松井宗信 / 이이 나오모리井伊直盛 등은 본영에서 전방 10정町 정도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급보를 듣고 달려왔다가 그 모두가 전사해버렸다.

  일설에 따르면, 본영이 박살났을 때 이오하라 사콘庵原左近 / 이오하라 쇼지로庵原庄次郞 등이 달려와, 사태가 시급하니 요시모토에게 오타카로 입성할 것을 권하며, 12~13기를 거느리고 이동하던 도중 습격받은 것이라고도 한다.

  일거에 승리를 쟁취한 노부나가는, 굳이 이마가와 군을 깊이 추격하지 않고, 곧바로 병사들을 마고미 산間米山에 집결시켜 요시모토의 잘린 목을 자신의 말 왼쪽 겨드랑이에 매단 후, 일몰 시각까지 키요스로 철수했다. 그야말로 신속한 행동이었다. 아츠다 신궁에서는 감사를 올리며 말馬을 헌상한 후, 신사를 수리하겠다고 맹세를 올렸다.

  개선한 다음 날, 노획한 수급을 검사해보자 2천 5백여 개가 되었다. 시모가타 쿠로자에몬下方九郞左衛門이 생포한 콘아미權阿彌란 자를 시켜 수급들의 이름을 구별하도록 했다.

  키요스에서 20정 정도 남쪽에 위치한 스카須賀, 아츠다로 향하는 가도에 요시모토의 묘를 세우고 솔도파를 세운 후, 천부경을 낭독하게 했다고 한다.

  요시모토의 야심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한편, 노부나가는 지방의 호족에서 일약 천하에 그 이름을 드높였다. 요시모토가 날려버린 천하평정의 기회는, 뜻밖에도 노부나가의 손으로 굴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3958
460
346291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