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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신센구미新撰組와 이케다야 습격 (2) 아오조라문고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대중유신사독본大衆維新史読本》7장을 번역한 글입니다.   



  이케다야池田屋로 쳐들어가다

  신센구미가 결성된 바로 다음 해, 겐지 원년(1864) 6월 5일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다름 아니라 "이 사건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 1년 늦춰졌다" 고도 일컬어지는, 유명한 산죠오하시三條小橋에 있는 이케다야 소베에池田屋惣兵衛의 점포로 쳐들어간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시죠오하시四條小橋에 마스야 기에몬升屋喜右衛門이라는, 중고 도구를 취급하는 점포古道具屋가 있었다. 그 주인은 38 ~ 39세의 나이로 고용인을 2 ~ 3명 부리며, 꽤나 유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로시浪士 풍 사람들의 출입이 잦았기에 신센구미에서는 이전부터 그런 모습을 수상쩍게 생각하여, 6월 5일날 작정하고 예고없이 쳐들어가 갑옷 10벌 / 조총 2 ~ 3정, 그리고 초슈 사람들과 주고받은 왕복문서를 여러 통 발견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이라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구절이 있었다.

  부랴부랴 무기류를 그 창고에 넣어놓고 봉인한 후, 가게 주인 기에몬을 미부壬生의 주둔소로 끌고 가 고문한 끝에, 놀라운 음모가 발각되었다. 

  기에몬이라는 이름은 가명으로, 그 정체는 고슈(江州, 오우미近江 지방)의 로닌 코다카 슌타로(古高俊太郞, 역주 : 요즘은 코다카가 아니라, 후루타카 슌타로라고 읽는 게 일반적이다) 라고 하며, (작년) 8월 18일의 정변 때문에 나카가와노미야中川宮와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서, 열풍이 부는 날을 기다려 궁궐 위쪽에 불을 지르고 텐노의 무사를 확인하기 위해 입조하는 나카가와노미야를 우선 납치하고, 슈고쇼쿠 마츠다이라 히고노카미(=카타모리)를 도중에 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거기에다 후루타카는, 산죠 거리 인근의 투숙객은 이러저러한 번의 이름을 대고는 있지만 기실 대부분 초슈 사람이라는 것까지 자백했다.

  아연해 있는 신센구미들에게, 잇달아 제 2 / 제 3의 경보가 마치야쿠닌町役人들의 손을 거쳐 날아들어왔다. 

  "마스야의 창고 봉인을 뜯고서, 무기를 빼앗아 가는 자가 있다!"
  "산죠오하시의 여관 이케다야 소베에 점포와, 산죠나와테의 여관 시코쿠야 쥬베에四国屋重兵衛의 점포에 초슈 사람들과 여러 지방의 로시들이 집합하여 뭔가 불온한 짓을 꾸미는 듯하다."

  쿄토의 시중을 순찰하는 역할을 맡아, 치안의 책임을 일부분 떠맡고 있었던 신센구미는 우선, 쿠로다니黑谷에 있는 쿄토 슈고쇼쿠 마츠다이라 히고노카미의 저택에 응급처치를 요구하기 위한 속보를 보냈다. 슈고쇼쿠는 쿄토 쇼시다이所司代 마츠다이라 엣츄노카미(松平越中守, 사다아키定敬)와 협력하여, 나중에는 아이즈 / 쿠와나桑名 / 히토츠바시一橋 / 히코네彦根 / 카가加賀 병사들을 위시하여, 마치부교町奉行 / 동서의 요리키与力 / 도신同心들을 동원하여 기온祇園 / 키야쵸木屋町 / 산죠 거리 / 그 외의 중요한 곳들을 경계하게 하여, 그 동원인원은 무려 3천여 명이었다 한다. 유례없는 경계망이었다. 

  이리하여, 아이즈 번과 신센구미는 오후 8시를 기해 기온의 약속한 장소에 모이기로 되어 있었으나, 아이즈 측이 병력을 내는 데 시간이 걸려 오후 10시가 가까워졌는데도 약속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혈기에 찬 콘도 이사미는,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신센구미들을 이끌고 독자적인 힘으로 검거에 나서게 되었다. 대원 30명을 2분하여, 콘도 이사미 자신이 한 부대를 이끌고 이케다야로 향했으며, 다른 한 부대는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가 통솔하여, 시코쿠야로 향했다.

  마침 그 날은 기온 축제祇園祭り가 열리기 바로 전날 밤으로, 바람은 불었으나 왠지 모르게 무더운 밤이었다.

  그 때, 이케다야에서는 쵸슈의 요시다 토시마로吉田稔麿 / 히고肥後의 미야베 테이조宮部鼎蔵 등 총원 20여 명이 집합하여, 

  "오늘 밤 미부로 쳐들어가, 코다카 슌타로를 구출하자." 고 말하며 술을 들이키면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서서히 그 신상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지 못한 채, 아직도 세 책략을 평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세 책략이란 바로 다음의 세 가지이다.

  ○ 미부 주둔소를 포위하고 불을 질러 신센구미를 도륙하고, 쿄토의 혼란을 틈타 쵸슈의 병사를 쿄토로 끌어들인다.
  ○ 성공할 경우, 정론을 내세우는 공경들로 하여금 궁중을 개혁하게 한다.
  ○ 교토의 정변에 성공하면, 나카가와노미야를 유폐하고 히토츠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 훗날의 토쿠가와 요시노부)를 오사카로 내려보낸 후, 아이즈 번의 관직을 삭탈하고 쵸슈를 쿄토의 슈고쇼쿠로 앉힌다.



  혈하血河의 난투

  콘도 이사미는 현관에서,

  "주인은 있는가. 공무를 집행하러 왔다." 고, 당당히 소리치고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즉각 2층을 향하여, "여러분, 손님이 조사하러 오셨답니다!" 라고 크게 소리쳤으나, 때는 늦었다.

  "무슨 일이야?" 동지가 온 건가, 하고 생각하고, 무심코 가장 앞으로 다가와 있던 키타조에 키츠마北副佶摩의 머리를, 이사미의 애검 코테츠虎徹가 그대로 쪼개버렸다. 

  불꽃이라도 튀길 듯한 난투가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이사미 자신이 근친近親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국중(局中, 신센구미)에 있는 병력밖에 없었고, (쵸슈) 도당들은 산죠오하시 / 산죠나와테 두 곳에 모여 있었기에 두 부대로 나뉘어 밤 4시 경(역주 : 현대시각으로 밤 10 ~ 11시 경)에 쳐들어갔는데, 한 곳(산죠나와테 시코쿠야)에는 아무도 없었고, 다른 곳(산죠오하시 이케다야)에는, 다수가 잠복해 있었던 데다 이미 각오를 한 도당들이었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전투는 약 1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국중局中이란 신센구미를 가리킨다. 약 1시간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단위론 약 2시간이었다. 2시간 동안 서로가 뒤엉켜 싸운 것이니, 그 격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숨통을 끊은 자 7명 / 부상입힌 자 4명 / 체포한 자 2명, 이상이 국중의 활약입니다. 겨우 사건이 정리된 때에 슈고쇼쿠님(카타모리, 아이즈 번) / 쇼시다이님(사다아키, 쿠와나 번)의 3천여 병력이 도착하여, 그 주둔지로 쳐들어갔습니다. 아이즈 제후의 병력이 4명을 체포하고 1명을 죽였으며, 쿠와나 측은 1명을 체포했습니다. 다음 날인 6일 9시(정오)에 병력들은 철수했습니다. 전대미문, 미증유의 대단히 진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상과 같이, 이케다야 습격은 그야말로 신센구미의 독무대였기에, 그들이 의기양양해있던 것도 당연하리라.
  콘도의 편지는, 아래에도 계속된다.

  "저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간 데다, 출입구를 지키는 데 인원을 배비했기에, 쳐들어간 자는 저를 포함해 오키타(소지総司) / 나가쿠라(신파치新八) / 토도(헤이스케平助) / (양) 아들 슈헤이周平. 이상 다섯 명이었습니다. 1시간에 걸쳐 전투를 벌이면서, 나가쿠라 신파치의 칼은 부러지고, 오키타 소지의 모자는 칼을 맞아 잘려나갔으며, 토도 헤이스케의 칼은 가늘게 쪼개졌습니다. 제 아들 슈헤이의 창도 베어져 날이 떨어져 나갔으나, 저의 칼만은 코테츠였기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신센구미에서 내노라하는 검객들이다. 고작 5명이서 쳐들어간 것을 봐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여 싸웠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산죠나와테에서 돌아온 히지카타 토시조의 부대가 가담하면서, 희대의 체포망이 전개되었다.

  "기실 지금까지 여러 번 싸워왔지만서도 2합 이상 겨룰 수 있었던 자는 드물었는데, 이번의 적은 다수이면서도 모두가 만부부당의 용사. 정말로 위태한 곳에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사미의 거짓없는 술회였다.

  신센구미도 잘 싸웠으나, 그런 동시에 근황의 유지有志들도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데 가장 풍부한 경험을 지닌 콘도 이사미로 하여금 이러한 탄성을 지르게 했으니, 순난(殉難, 난을 만나 죽음)의 지사들도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공정한 이야기는 언제나, 적 측에서 나오는 법이다.    
   
    

덧글

  • 레이오트 2015/10/03 19:05 # 답글

    콘도 이사미 국장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 의외네요. 제가 생각하는 콘도 이사미는 뒤에서 어떻게보면 정치깡패도로 보일수 있는 신선조의 규율을 잡는 모습이거든요.
  • BigTrain 2015/10/05 14:01 # 답글

    2009년에 잠깐 오사카 여행을 갔다 왔을 때가 '미부기시덴'(국내 발매명 '칼에 지다')를 읽었을 때라 잠시 짬내서 신센구미 관련 사적지를 구경했었습니다. 초기 주둔지랑 산죠 다리, 니죠 성을 방문했었죠. 저 이케다야도 가봤어야 됐는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서.. -0-
  • 3인칭관찰자 2015/10/05 21:11 #

    쿄토까지 올라가셨군요. 칼에 지다는 저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뭐 지금 그 자리엔 선술집이 들어서 있고 이케다야의 옛날 건물이 보존되어 있는 건 아니라고 하긴 하지만... 기실 저도 한 번쯤 이케다야에 가 보고 싶군요. 니죠 성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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