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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시소] 오페르트 도굴원정대 (2)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쇼와 시대 초중기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 계열 (강좌파) 역사학자로 활약하신 故 핫토리 시소(服部之総, 1901~1956) 교수님이 1933년 9월에 집필하셨던,〈발릉원정대撥陵遠征隊〉라는 기고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이 쓰여진 지 85년, 저자분이 돌아가신지 62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보기엔 이러저러한 면에서 낡았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점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총영사【 슈어드 】는 어쩔 수 없이【 젠킨스 】를 잡아들였다. 구인拘引의 이유는【 합중국과 조약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의 땅에 불법적으로 파렴치한 원정을 벌이고 폭행을 저지른 죄목 】에 의한 것이었다. 어째서 프랑스 / 독일보다 미국 쪽이 문제시되었는가 싶지만, 어쨌든 프랑스 / 독일 양국은 영사재판 결과를 지켜본 후 처치를 내리게 되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젠킨스에 대한 공판은 센세이셔널해지게 되었다.

  "해부를 위해서라든가, 과학상의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돈을 노리고 몸값을 챙기려 저지른 짓이니.."
  "그렇소. (거기에다) 선박에는 북 독일연방의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전당포 입구에 매달려 있는, 예의 그 돈 모양으로 생긴 옥인玉印 세 개를 당당히 걸고 가시지 그랬소!"

  둘 다 밥줄에 곤궁한 식민지하 인텔리 동지들의 대화였던 걸로 보이나, "삼국 삼교(三國三敎, 유대교, 예수회, 프로테스탄트) 모두가 이 유해 겁략劫掠 원정대를 대표하였다고 한다면, 정말로 국제적인 사건이라 해야할 것" 이라고 떠들고 있던 시기를 전후하여 삽입된, 어느 저자의 비평문에서 나온 문장이다.     

  당시 상하이 조계의『여론』은 대충 이러했다고 보면 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세 사람을 향해 마음껏 침을 뱉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만『삼국 삼교(역주: 독일(유대교) / 프랑스(예수회) / 미국(프로테스탄트). 저자의 각주 : 단지 유태인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의 명예와 권위를 구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동시에, 세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시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젠킨스와 슈어드의 관계는 앞에서 우리가 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현지의 영사재판장(슈어드)은 극히 최근에도 피고(젠킨스)의 보고에 기반하여 미국의 대 조선 책략을 (본국에) 진언하였고, 그 계획은 실현단계에 있었다.

【 페론 신부 】와 프랑스 관헌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말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오페르트 】는 이 사건의『주모자』였기 때문에, 여론은 앞에서와 같은 분위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유태인 행상인" "싸구려 함부르크 무역상" 같은 식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그는 2년 전, 돛대 2개가 달린 외륜증기선【 엠퍼러 】호의 주인으로서 조선에 건너가, 한강 하류 일대에서 측량을 한 바 있다. 측량이 목적이었는지 무엇이 목적이었는지는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하지 않으나, 어찌됐든 이 때 목숨만 겨우 건져 잠복해 있던 페론 신부의 밀서를 전달받아, 중국에 있던 프랑스 관헌에게 넘겨준 인연이 있었다. 그와 페론 신부의 관계는 그 이후로 계속되었다.

  이런 식으로 세 나라, 세 종교에 속한 지도자급 세 사람은, 모두가 중국에 있던 당국자들과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이전부터의 관계를 지닌 자들밖에 없었다. 스페인 영사에게서 들어온 간섭과, 이에 기반한『여론』이 없었다면, 아무 일 없이 묻혀버렸을 상대들이었던 것이다.     

  이 때 젠킨스의 영사재판에서『참심(어소시에이트)』중 한 사람으로 열석하였던 상하이 거주 미국인들의 유력자,【 A.A. 헤이즈 】라는 자가 훗날 기회를 얻어 미국 신문에 기고한 글이 있는데, 사건으로부터 거의 12년이 지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

  "... 왕릉을 침략한 전대미문의 사건은, 조선인의 공격을 받아 마닐라의 병사가 죽기만 했을 뿐, 실패로 끝났다. 영민이 살해당했다고 하여 스페인 영사가 사건을 슈어드 씨 - 당시의 상하이 미국 총영사 - 에게 조회시켰다. 슈어드 씨는 즉각 젠킨스를 포박했다. 네 명의『참심』중 하나로 이 때의 영사재판에 열석한 나는, 사건이 얼마나 익살극 같았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예심에서 어쩌니저쩌니 떠들어대던 중국인이 공판정에서는 두꺼비처럼 침묵으로 일관했기에, 참심회의를 열었음에도 판결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건을 알고 있는 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해적과 같은 원정대의 포악한 행동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능묘를 석탄 삽으로 부수려고 시도하는 바보짓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명백했다..."

  "중국인" 이란, 원정대에 용병으로서 가담한 자 중 하나일 것이다. 예심에서 남김없이 자백했음에도 정작 공판장에서 증언할 단계가 되자 두꺼비같이 입을 닫아버렸기에, 참심 일동이【 포악한 행동 】에 대해 주지하고 있었음에도 판결을 내릴 방도가 없었다는 말이다. 형식상으로는 "그런 거야?" 하고 퉁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보자면 납득이 가지 않는 무언가가 남겨졌다.

  공판장에서 젠킨스는, "원정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조약체결』을 할 계기를 만들어 조국에 이익을 가져오려고 하는 염려 외에 다른 의도가 없었다" 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정사실에 관해서 비교적 이 재판사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그리피스 】著《선일국민(仙逸國民, 허미트 네이션)이 기록하는 바에 따르면,

【 (범행에) 사용한 선박은 외륜증기선【 차이나 호 】680톤. 그 외 60톤짜리 소형 증기선【 크레타 호 】를 준비하여, 황해를 건널 때에는【 차이나 호 】가 예항하게 했다. 】

【 국기는 북 독일 연방기를 게양했다. 】   

【 원정에 나서는 승무대원은 유럽 / 미국인 8명, 마닐라인 20명, 중국인 1백 명. 말레이인과 중국인은 상하이에서 쿠리(하층 노동자)와 선원들을 모집한 것으로, 일행의 호위병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

【 함대는 1868년 4월 30일, 상하이를 출항하여 우선 나가사키長崎로 향했다. 2일 간에 걸쳐 나가사키에서 기항하던 중에는 석탄과 물과 더불어【 소총 10상자 】를 적하했다. 물론 '호위병' 들이 쓰기 위한 무기였다. 】

【 프린스 제롬 만(=아산만)에 도달한 것은 5월 8일(양력) 금요일. 다음날 한강을 거슬러올라가기에 앞서, 무기를 일동에게 나눠주며 사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

  이에 대한 주변사정은 대단히 상세하면서도, 중요한 그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어있지 않다. 그건 그렇고 젠킨스는 중요한 도굴사건 그 자체를 어디까지 인정한 것일까. 만약 이를 인정했다고 한다면 그는 이 수단과 조약체결이란 목적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변명했을까. 모든 것은 불명확한 채로 끝이 났다. 그리고 고작,【 그 후, 조선인들과 충돌하여 사망자 2명과 부상자 1명을 낸 것, 결국 전후 10일간 조선에 있었다가 (출항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상하이로 돌아왔음. 이 공판에서의 젠킨스의 진술에 대해서는『안전판에서 분출되는 증기만큼도 진실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결국 젠킨스는【 증거불충분 】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결국, 정말로 불쾌한 이야기였다.. 는 논조를 숨기지 않는다. 

  젠킨스가 석방되었기에, 프랑스 측은 건성으로 진행하던 영사재판을 개최할 노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어서 문제의 아베 페론 신부를 본국으로 송환시켰으나, 그는 이윽고【 퐁디셰리(인도 남동부에 있는 주) 】에 있는 포교단체에 파견되어, 예수회의 일원으로서 옛날보다 두 배로 전투적이 되어서는 "하느님과 조국을 위하여" 극동에서의 경험을 살려나가게 되었다.

  

덧글

  • 레이오트 2015/07/02 17:19 # 답글

    1. 재판이고 뭐고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 치열한 법적 공방이 있었군요.
    2. 보안에서는 무식하게 단순하고 튼튼한게 좋은 법이지요. 쓸데없이 트랩 깔고 미로 만들면 뭐합니까? 인디아나 존스나 라라 크로포드 앞에서는 그저 좋은 트로피 공급원일 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호위병 128명에게 지급할 무장으로 소총 10상자라면 상자 하나당 못해도 소총 15정 내외로 들어있었단 말이로군요. 그나저나 그들에게 준 소총은 어떤 모델이었을까요?
  • 3인칭관찰자 2015/07/02 21:00 #

    1. 그래도 남의 나라 국왕 할애비 무덤 파헤친 사건이잖아요. 은폐하는데 성공했다면 모를까 걸린 이상은 최소한 형식적인 재판이라도 해야겠죠.

    3. 그건 잘 모르겠네요. 지금 저로서는 추측밖에 못할 듯 합니다.
  • 레이오트 2015/07/02 21:05 #

    그런데 대한민국 내에서는 재판이고 뭐고 그런거 없었다, 식으로 인식되는 상황이죠. 사실 이런게 알려져도 결국 열강의 침략임은 변함이 없으니 별 큰 상관 없겠지만요. 에휴~!
  • 3인칭관찰자 2015/07/02 21:15 #

    국사교과서에서 자세하게 다루는 내용도 아니니 아마 이 사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굴꾼이 쳐들어와서 분탕질한 사건 정도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군요(...)
  • 비도승우 2015/07/04 16:45 # 삭제 답글

    월북했던 젠킨스 하사가 떠오르는군요. 여기도 젠킨스!
    젠킨스들이 문제군요 ㅋ ㅋ


  • 3인칭관찰자 2015/07/04 20:42 #

    정말 그러고 보니 ㅋㅋㅋㅋ
  • 히알포스 2015/07/11 21:47 # 답글

    게임계의 유명한 리로이 젠킨스 (설명 : http://nodap123.tistory.com/20) 도 있습니다.

    젠킨스라는 사람이 전쟁명분이 된 전쟁도 있지요 (젠킨스의 귀 전쟁( https://ko.wikipedia.org/wiki/%EC%A0%B1%ED%82%A8%EC%8A%A4%EC%9D%98_%EA%B7%80_%EC%A0%84%EC%9F%81))
  • 3인칭관찰자 2015/07/11 22:10 #

    와우에 저런 일도 있었군요 ㅋㅋㅋㅋ 유쾌하네요 리로이 젠킨스 성님. 리로이와 저 에피소드를 띄워준 블리자드도 역시 쌈박하다고 해야 할지..
  • 히알포스 2015/07/12 23:38 #

    양키센스, 블리자드 센스지요!

    저런 것이 저렇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가 되는 걸 보면, 저런 대인배스러운 양키센스는 확실히 부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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