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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3) 아오조라문고



  이번 번역글은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계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소설《달려라 메로스》입니다. 다자이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단편 중 하나로, (당연히)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죠. 설익은 번역이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유히 2리를 걷고, 3리를 걸어, 슬슬 목적지에 절반 즈음에 도달했을 때, 뜻밖의 재난이 일어났다. 메로스의 다리가 뚝 멈추었다. 보라. 눈 앞의 강물을. 어제 내린 호우로 산의 수원지가 범람하여, 탁류는 도도히 하류로 모여들어 맹렬한 기세로 일거에 다리를 무너트리고, 세찬 울림을 머금은 격류는 산산조각이 난 교형橋桁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는 망연히, 그 자리에 멈춰섰다. 사방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질러 봐도 계류되어 있는 배는 남김없이 격랑에 쓸려가 흔적도 없었고, 뱃사공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물결은 더욱 더 거세져, 바다처럼 변하였다. 메로스는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엉엉 울면서 손을 들고 제우스 신에게 애원했다. "아아, 가라앉혀 주십시오. 미쳐 날뛰는 격류를!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해도 이미 한낮이 되었습니다. 태양이 지기 전에 왕성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좋은 친구가 저 때문에 죽게 됩니다."

  탁류는 메로스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더욱 더 격렬히 춤추며 날뛰었다. 파도는 파도를 삼키고, 휘감고, 거세게 몰아치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간다. 이제 메로스는 각오했다. 헤엄쳐 건너는 수밖에 없다. '아아, 신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탁류에도 지지 않는 사랑과 진실의 위대한 힘을, 지금에야말로 발휘해 보이리라.'

  메로스는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강으로 뛰어들어, 백 마리의 구렁이처럼 거칠게 미쳐 날뛰는 파도를 상대로 필사적인 투쟁을 개시했다. 전신의 힘을 팔에 모아서는, 밀어닥치는 소용돌이를 몰고 오는 격류를, "쳇, 이까짓 것!" 이라며 밀어젖히고 밀어젖히는 필사적인 모습에 신께서도 가련함을 느끼셨는지, 결국 연민을 내려주셨다. 강물에 휩쓸리면서도 훌륭히, 맞은 편 강가에 있는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메로스는 말이 그러듯 물에 젖은 몸을 거칠게 한 번 털어내고서는, 곧장 또 앞길을 서둘렀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헛되이 쓸 순 없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급하고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고개를 올라가고, 다시 또 올라서 한 숨을 쉬었을 때, 돌연히 눈 앞에 한 무리의 산적들이 나타났다.  

  "기다려라."

  "무슨 짓이냐.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왕성으로 가야만 한다. 놔라."

  "어딜, 놓아줄 수 없다. 가진 것을 다 내놓고 가라."

  "내게는 목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하나 남은 목숨도, 이제부터 왕에게 줄 것이다."

  "그 목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왕의 명령을 받고 여기서 매복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산적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제히 곤봉을 치켜들었다. 메로스는 훌쩍 몸을 구부려, 날랜 새처럼 근처에 있는 한 산적에게 달려들어 그 곤봉을 탈취한 후, "안됐지만 정의를 위해서다!" 고 외치고선 맹렬히 일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3명의 산적을 쓰러뜨리고는, 다른 자들이 움찔하는 틈을 노려 재빨리 고개를 뛰어내려갔다. 일거에 고개를 내려가긴 했으나, 그렇다고는 해도 피로해진 데다 때마침 오후 시간의 작열하는 태양이 정면에서 그를 내려쬐고 있었기에, 메로스는 몇 번이나 현기증을 느껴, '이래서는 안 된다' 고 마음을 다잡았음에도 비틀비틀 두 세 걸음 걷다가, 드디어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늘을 우러르며, 분을 이기지 못하여 울기 시작했다. '아아, 아, 탁류를 헤엄쳐 건너고, 산적을 세 명이나 때려눕힌 후, 질풍처럼 달려 여기까지 돌파해 온 메로스여. 진정한 용자 메로스여. 지금 여기서 피로에 지쳐 움직일 수 없게 되다니 한심하구나. 사랑하는 친구는 너를 믿었다는 것 때문에 이윽고 죽어야만 하는데. 너는 희대의 못 믿을 인간. 이래서는 그야말로 왕이 바라던 대로다.' 고 자신을 질타해 보았으나, 온 몸의 힘이 빠져 이제는 나방이 기어가는 만큼도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길가의 초원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드러누웠다. 신체가 피로할 때는, 정신도 함께 피곤해진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는 식의, 용자에게는 걸맞지 않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근성이 마음 한 구석에서 또아리를 틀었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다. 약속을 깰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신께서도 아시겠지만, 나는 최대한 노력했다.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달려왔다. 나는 못 믿을 놈이 아니다. 아아, 가능하다면 내 가슴을 쪼개어, 진홍빛 심장을 보여주고 싶구나. 사랑과 신실의 혈액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심장을 보여주고 싶구나.

  그러나 나는, 이 중요한 시기에 기력이 다하고 말았다. 나는 정말로 불행한 남자다. 나는 분명 비웃음의 대상이 되리라. 우리 일가도 웃음거리가 되리라. 나는 친구를 기만했다. 중도에 쓰러지는 건, 애초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아, 이제는 어떻게 되도 좋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세리눈티우스여. 용서해 주게. 너는 항상 나를 믿었었지. 나도 너를 속인 게 아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들이었다. 한 번이라도 검은 의혹의 구름을 각자의 가슴에 품은 적이 없었다. 지금도 너는, 나를 의심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아, 기다리고 있겠지. 고맙다. 세리눈티우스. 그렇게 나를 믿어 주었다. 그걸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친구와 친구 간의 신실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보물이기 때문이지.

  세리눈티우스, 나는 달려왔다. 너를 속일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믿어주게! 나는 서두르고 서둘러서 여기까지 왔다. 탁류를 돌파하고, 산적에게 둘러쌓였음에도 쑥 빠져나와 일거에 언덕을 달려 내려올 수 있었다. 나 메로스이기에 가능헀던 일이다. 아아, 이 이상 나에게 바라지 말게. 이대로 내버려 줘. 어찌되든 좋다. 나는 패배했다. 칠칠맞은 나를 비웃게나.

  왕은 내게, '조금 늦게 와도 된다' 고 속삭였다. "늦게 도착하면 인질을 죽이고, 너를 살려주겠다." 고 약속했다. 나는 왕의 비열함을 증오했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왕이 말하던 대로 되어 있다. 나는 늦을 것이다. 왕은 지레짐작하여 나를 비웃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방면해 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죽는 것보다 괴로워진다. 나는 영원한 배신자가 된다. 지상에서 가장 불명예스런 인종이다. 세리눈티우스여. 나도 죽겠다. 자네와 함께 죽을 수 있게 해 주게. 너만은 나를 믿어줄 것임이 틀림없겠지.

  아니, 그것도 나의 독선일 뿐인가?

  아아, 그냥 악덕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을까? 마을에는 내 집이 있다. 양떼도 있다. 여동생 부부도 설마 나를 마을에서 내쫓진 않을 것이다. 정의니, 신실함이니, 사랑이니, 생각해보면 하잘 것 없는 것. 남을 죽이고 내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 세상의 법칙이 아니었던가? 아아,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 나는 더러운 배신자다. 될 대로 되라지. 이제 끝장이다.'

  사지를 내던진 채,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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