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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2) 아오조라문고



  이번 번역글은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계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소설《달려라 메로스》입니다. 다자이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단편 중 하나로, (당연히)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죠. 설익은 번역이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로스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않고 10리(약 40km) 길을 서둘러서 돌아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 날 오전이었다. 태양은 이미 높이 떠올라, 마을 사람들은 들판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메로스의 16세 되는 여동생도, 오늘은 오빠 대신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는 오빠의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보고 놀라서는, 열심히 오빠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아무 것도 아냐." 메로스는 억지로 웃어보이려 했다. "도시에 용건을 남기고 왔어. 다시 또 도시로 돌아가야만 해. 내일 네 결혼식을 올리자. 빠른 편이 좋곘지."

  여동생은 볼을 붉혔다.

  "기쁘냐. 아름다운 의상도 사 왔어. 자, 지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와라. 결혼식은 내일이라고."

  메로스는 다시 비틀비틀 걷기 시작하여, 집에 돌아가 신들이 모셔진 제단을 장식하고, 축하연의 자리를 준비한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숨도 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이 뜨인 것은 밤이 된 후였다. 메로스는 일어나자마자, 신랑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약간의 사정이 있으므로 결혼식을 내일로 앞당겨달라" 고 부탁했다. 신랑이 될 목동은 놀라며, "그럴 순 없다. 이쪽은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포도 수확철까지 기다려 달라." 고 답했다.

  메로스는, "기다릴 수 없다. 부디 내일 결혼식을 올려 달라" 고 무리하여 부탁했다. 신랑이 될 목동도 완강하여, 쉽게 승낙하진 않았다. 새벽이 될 때까지 토론을 계속한 끝에, 드디어 어떻게든 신랑을 달래고 얼러서 설복시켰다.

  결혼식은 대낮에 거행되었다. 신랑신부가 신들에 대한 선서를 끝마쳤을 무렵,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는 뚝뚝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억수같은 장대비가 되었다. 축하연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불길함을 느꼈으나, 그럼에도 제각기 기분을 북돋아서는, 좁은 집 안의 푹푹 찌는 더위를 견뎌내며, 명랑하게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쳤다. 메로스도 만면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은 왕과 맺은 약속조차 잊고 있었다. 축하연은 밤이 되자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달해, 사람들은 밖에서 쏟아지는 호우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메로스는, '평생 이렇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 고 생각했다. '이 좋은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고 바랬으나, 이제 와서는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메로스는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여, 드디어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내일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 잠시 한숨 잔 후, 그 후에 곧바로 출발하자' 고 마음을 먹었다. 그 동안 비도 잦아들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 집에서 꾸물거리며 있고 싶었다. 메로스 정도 되는 남자도, 역시 미련의 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오늘 밤 망연히, 환희에 취해 있는 신부에게 다가가서는,       

  "축하한다. 나는 피곤하니 잠시 실례하여 잠을 자려고 한다. 잠에서 깨면 바로 도시로 나갈 거야. 중요한 용건이 있기 때문이지. 내가 없어도, 이제 너에게는 믿음직한 남편이 있으니 결코 외로운 일은 없을 거다. 너의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건, 사람을 의심하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너도 그건 잘 알고 있겠지. 남편과의 사이에서 어떤 비밀도 만들면 안 된다.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뿐이야. 네 오빠는 아마 괜찮은 남자이니, 너도 그런 긍지를 가져라."

  신부는 꿈을 꾸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로스는 이번에는 신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준비가 안 된 건 이쪽도 마찬가질세. 우리 집의 보물이라고 하면, 여동생과 양떼밖에 없네. 다른 건 아무 것도 없어. 모두 주겠네. 그리고 또 하나, 메로스의 동생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주게."

  신랑은 두 손을 비비면서 부끄러워했다. 메로스는 웃으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한 후, 축하연 자리에서 물러가, 양떼 우리로 들어가서는 죽은 듯이 깊게 잠들었다.

  눈을 뜬 것은 다음 날의 새벽 무렵이었다. 메로스는 벌떡 일어나, '아뿔싸. 너무 자 버렸나. 아니 아직은 괜찮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약속 기한까지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반드시 그 왕에게, 인간의 신실함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자. 그리고 웃으면서 십자가로 올라가겠다.' 메로스는 유유히 채비를 차리기 시작했다. 비도 상당히 잦아든 상태였다. 채비가 끝났다. 그리고 메로스는, 힘차게 양 팔을 크게 휘두르며, 화살처럼 빗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저녁, 살해당한다. 살해당하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다. 인질로 잡힌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달리는 것이다. 왕의 간악하고 사악한 지혜를 짓부수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달려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살해당하겠지. 젊은 시절부터 명예를 지켜라. 안녕. 내 고향.

  젊은 메로스는 괴로웠다. 몇 번이나 멈춰설 뻔 했으나, 에이, 에이 하면서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달렸다. 마을을 나와 들판을 가로지르고, 숲을 헤쳐나와 이웃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도 멎었고, 태양은 높이 떠올라 슬슬 날이 더워졌다. 메로스는 이마의 땀을 주먹으로 훔치고는,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다. 이제 고향에 대한 미련은 없다. 여동생들은, 반드시 좋은 부부가 되리라. 내게는 지금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다. 곧바로 왕성에 도착한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다. 천천히 걸어가자.' 고 특유의 느긋함을 되찾아, 좋아하는 노래를 멋진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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