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1) 아오조라문고



  이번 번역글은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계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소설《달려라 메로스》입니다. 다자이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단편 중 하나로, (당연히)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죠. 우리 나라에도 많은 번역이 나왔기에 굳이 숟가락을 얹을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이 작품같은 경우는 제 손으로 한번 꼭 번역해보고 싶었던데다 라이트노벨《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10권에 마찬가지로 다자이 작품인《인간실격》과 함께 이 단편이 인용되어 있는 걸 본 김에 한 번 올려 보려고 합니다. 설익은 번역이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로스는 격노했다. 반드시 그 사악하고 포악한 왕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메로스는 정치를 모른다. 메로스는 마을의 목동이다. 피리를 불고, 양을 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사악함에 대해선, 남의 배로 민감했다.

  오늘 새벽 메로스는 마을을 출발하여 들을 넘고 산을 넘어, 10리(약 40km) 떨어진 이 시라쿠사 시에 도착했다. 메로스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아내도 없다. 16세의 내성적인 여동생과 둘이서 살고 있었다. 이 여동생은, 마을의 한 성실한 목동을 조만간 신랑으로 맞이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혼식은 얼마 남지 않았다. 메로스는 그 때문에 신부의 의상과, 축하연에서 대접할 음식들을 사기 위해 머나먼 시라쿠사 시를 찾은 것이다.

  우선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서는, 도시의 큰 길을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메로스에게는 세리눈티우스라는 이름의 죽마고우가 있었다. 지금은 이 시라쿠사 시에서 석공 일을 하고 있다. 그 친구를, 이제부터 찾아갈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방문하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걷고 있는 동안 메로스는, 거리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너무나 조용했다. 물론 이미 해도 졌기에, 거리가 어두운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밤이 된 것만을 탓하기에는, 도시 전체가 너무나 적막했다. 느긋한 성격의 메로스도, 점점 불안을 느꼈다. 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을 붙들고, "무슨 일이 있었나? 2년 전에 이 도시에 찾아왔을 때는, 밤이 되어도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 거리는 번화했었는데." 하고 질문했다. 젊은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 노인을 만나,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어조로 질문했다. 노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메로스는 양 손으로 노인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질문했다. 노인은 주위에 누가 있는지를 겁내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임금님이 사람을 죽입니다."

  "왜 죽이는 건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어서, 라고 하십니다만, 기실 누구도 그런 악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네. 처음에는 임금님의 매제분을, 다음에는 자신의 후계자를, 다음에는 여동생분을, 그 다음에는 여동생분의 자식들을, 다음에는 황후마마를, 그리고 현명한 신하이신 아레키스 님을."

  "놀랍군. 국왕은 미쳤는가?"

  "아닙니다. 미치신 건 아닙니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고 하십니다. 요즈음에 와서는 신하들의 마음도 의심하시어, 조금이라도 화려한 생활을 하는 자가 있으면, 인질로 한 사람을 바치라고 명령하시고, 명령을 거부하면 십자가에 매달려 살해당합니다. 오늘만 6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메로스는 격노했다. "어처구니 없는 왕이로군. 살려둘 수 없다."

  메로스는 단순한 남자이다. 구입한 물건들을 등에 짊어진 채로, 느릿느릿 왕성으로 들어갔다. 곧장 그는 순라를 돌던 경비들에게 체포되었다. 몸을 뒤진 끝에, 메로스의 품 속에서 단검이 튀어나왔기에, 소동이 커져버렸다. 메로스는, 왕 앞으로 끌려갔다.

  "이 단검으로 무엇을 할 작정이었는지, 말하라!"

  폭군 디오니스는 조용하게, 그러나 위엄을 갖춘 목소리로 캐물었다. 왕의 얼굴은 창백했고, 미간에 난 주름은, 칼로 새겨진 듯이 선명했다.

  "도시를 폭군의 손에서 구하기 위해서요." 라고, 메로스는 겁먹지 않고 대답했다.

  "네가 말이냐?" 왕은 딱하다는 듯 웃었다. "가망없는 놈이로군. 너 따위가 내 고독을 이해할 것 같은가?"

  "그만 하시오!" 라고 메로스는, 격앙하여 반박했다.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이오. 임금님께서는 백성의 충성심마저 의심하고 계시오."

  "의심하는 것이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내게 가르쳐준 건, 너희들이다.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다. 인간은 본래부터가 욕망의 덩어리들이다. 믿어서는 안 되지." 폭군은 조용히 중얼거리다,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나도 말이지... 평화를 바라고 있는데."

  "무엇을 위한 평화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이번에는 메로스가 조소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서, 뭐가 평화란 말이오?"

  "닥쳐라. 비천한 놈." 왕은 휙 얼굴을 들고 맞받아쳤다. "입으로는 온갖 고상한 말이라도 할 수 있지. 내게는 인간의 뱃속 깊은 곳이 들여다보여 좌시할 수가 없다. 너도 이제 책형에 처해지게 되면, 아무리 울면서 사죄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아, 왕은 영리하시군. 계속 그렇게 자부하고 있으시오. 나는 정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절대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오. 단지...." 라 말하더니, 메로스는 발 밑으로 시선을 떨어뜨려 잠시 망설이다가, "단지, 제게 인정을 베풀어주시려면, 처형 때까지 3일의 말미를 주시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에게 남편을 짝지어주고 싶소. 3일 내에 나는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한 후, 반드시 이 곳으로 돌아오겠소."

  "어리석은" 이라며 폭군은, 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웃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군. 놓아준 새가 돌아온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돌아옵니다." 메로스는 필사적으로 주장을 계속했다. "저는 약속을 지킵니다. 저에게 3일간만 말미를 주십시오. 여동생이,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를 못 믿으실 거라면, 좋소. 이 도시에 세리눈티우스라는 석공이 있습니다. 저의 둘도 없는 친구죠. 그를 인질로 여기에 두고 가겠소. 제가 도망을 쳐서 3일이 지난 날의 일몰까지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친구를 목졸라 죽이시오.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은, 잔혹한 기분이 되어, 슬며시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군.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게 뻔하지. 이 거짓말쟁이에게 속은 척 하면서 풀어주는 것도 재미있겠어. 그렇게 되어 인질로 잡힌 남자를 3일째가 되는 날 처형하는 것도 기분 좋겠군. 사람은 이러니까 믿을 수 없다며, 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 인질로 잡힌 자를 십자가에다 매달아버리는 거지. 세상 속의 정직한 자라는 놈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군.'

  "바램을 들어주겠다. 그 인질이 될 자를 불러오도록. 3일째 되는 날의 일몰까지 돌아오너라. 늦어지면 그 인질을 반드시 죽이겠다. 좀 늦게 와도 된다. 너의 죄는 영원히 용서해줄 테니까."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시오!"

  "하하하, 목숨이 소중하다면 천천히 오너라. 네 마음은 잘 알고 있다."

  메로스는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죽마고우 세리눈티우스는 깊은 밤, 왕성으로 불려왔다. 폭군 디오니스의 앞에서, 좋은 친구들은 2년만에 만났다. 메로스는 친구에게 일절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세리눈티우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로스를 꼭 껴안았다. 두 친구 사이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났다. 세리눈티우스는 포승줄에 묶였다. 메로스는 즉각 출발했다. 초여름,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덧글

  • 조훈 2015/05/30 22:43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5/05/31 07:23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 조훈 2015/05/31 16:21 #

    아닙니다. 이거 50번도 더 읽은 작품이고 저도 1학년 때 번역한 기억이 있네요.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5/05/31 07:35 # 삭제 답글

    읽고 나니 메로스가 더 개념없는 나쁜 놈이네요. 저런 친구때문에 자고 있다 끌려나와서 인질이 된 친구가 더 대단해보임.
  • 3인칭관찰자 2015/05/31 08:48 #

    ㅋㅋㅋ 그렇게 보니 분명 일리 있는 말씀이긴 합니다. 세리눈티우스=잠자던 배재대생 급이니(...)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1864
460
346334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