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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세키가하라 (4)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7호(2001년 6월호) 50~65쪽의 기사인,《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세키가하라 - 세키가하라를 연출한 또 다른 남자를 번역한 것으로, 하시바 아키라(橋場明, 근래는 橋場日月이란 필명을 사용) 씨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1600년 9월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 이르기까지 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삶과 그 행보를 그리고 있습니다. 


  파탄난 구상

  이와 같이, 요시츠구가 북방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을 무렵, 중앙에서는 반대로 서군 승리의 방정식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서군 전략구상의 제 1은 기후岐阜 / 키요스淸洲를 최전선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으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가 떠난 성을 지키던 키요스 성의 장병들은 설득에 응하지 않았으며, 그 뿐만 아니라 기후 성은 이에야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행동을 시작한, 토요토미의 은고恩顧를 입은 동군 무장들의 공격을 받아, (1600년) 8월 23일, 고작 하루만의 싸움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스루가 후츄駿河府中의 영주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一氏는 미츠나리의 거병계획을 전해들었을 때,

  "오슈 군(奧州勢, 우에스기 가문上杉家)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 미츠나리가 깃발을 올렸다면 계획이 들어맞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에야스가) 에도江戶에 도착하기 이전에 추격해서 죽여버렸어야 이로울 것" 이라고 귀띰하였었다.(《혼다토시로오보에가키本多藤四郞覺書》) 그야말로 미츠나리의 거병은 너무 일렀거나, 내지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일렀다는 말은, 동군이 우에스기 군과 전면적인 전투 상태에 들어갔을 때 거병해야 했다, 는 의미이고, 늦었다는 말은, 이에야스가 아이즈 원정을 떠나는 도중에 습살(襲殺, 습격해서 죽임)할 기회를 뻔히 보고서 날려버린 것을 가리킨다. 이 점에 대해선 요시츠구도 "나이후(內府,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무사히 간토로 내려보내는 건, 호랑이를 천리 들판에 풀어놓는 것과 같다.(《오치보슈落穂集》)" 라며 미츠나리를 책망한 바 있어, 미츠나리의 타임 테이블 작성 기본 부분의 착오는 이에 이르러, 전략의 착오가 되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기후 성을 실함함에 따라, 자연스레 서군의 최전선 거점은 오가키 성大垣城이 되었다. 

  부랴부랴 미츠나리는 오미 지방에서 쿠마가이 나오모리熊谷直盛 등의 군대를 호출하여 오가키 성의 수비를 견고히 하려 했으나, 이런 잔재주만 부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서군의 전략 자체가 크게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9월 12일, 미츠나리가 마시타 나가모리增田長盛에게 보낸 편지에 이 수정안의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①【 여러 성의 곳곳에 테루모토輝元의 병력을 입성시키고 싶다. 】
  ②【 코우노(江濃, 미노 / 오미) 지방의 접경 마츠오 성松尾城, 여러 경계소에도, 츄코쿠 군을 입성시키고 싶다 】
  ③【 테루모토가 아직까지 출진하지 않은 것, 밑에서는 그 행동이 의심스럽다고들 하고 있다. 】
  ④【 테루모토가 출진하지 않겠다면, 사와 산성에 5천 명 정도의 테루모토 군을 입성시켜 달라. 】

  "서군 측의 각 성채에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의 군대를 입성시키고, 가능하다면 테루모토 자신이 출진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무리라면, 사와 산성에 테루모토 군 5천 명 정도를 입성시켜 달라," 고 미츠나리는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②번의 문장 의미이다. 종래 이 문장은, 마츠오 산松尾山에 모리 가문의 분가 집안인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가 입성하도록 미츠나리가 지시한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금에는 작가 키리노 사쿠진桐野作人 씨에 의해, "츄코쿠 군中國勢" 은 치쿠젠筑前의 영주였던 히데아키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모리 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지적되었다. 미츠나리는 마츠오 산에 모리 본군이 착진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제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 "마츠오 성" 뒤에 이어지는 "여러 경계소" 라는 부분에 대해서다. 대충 읽어보면 마츠오 산성 내부의 각 경계소에 모리 병사들을 배치한다, 고 해석하기 일쑤겠지만, 필자는 "여러 경계소" "마츠오 성" 과 병렬하는 세키가하라에 배치된 각 성채로, 미츠나리는 마츠오 산과 그 주변 일대 전체에 모리 본군이 포진하기를 희망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테루모토의 본군이 입성하게 된다면, 히데아키의 군세 1만 명과 달리 그 병력은 3만 정도가 되어, 마츠오 산성 내부의 경계소 따위는 가만히 놔 두어도 모리 병사들로 채워지는 게 당연한 것으로,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요청하는 건 부자연스러우리라.

  이는 역시 모리 본군 중에서, 1만 명을 (가능하면 테루모토 자신을 포함하여) 마츠오 산성에 입성시키고, 남은 2만 명을 주변의 성채에 배치시키는 걸 미츠나리가 구상한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된다면, 오가키 성 / 난구 산南宮山 / 세키가하라 사이에 포진한 서군 배치의 의미가 확실히 인식된다.

  말하자면, 마츠오 산성에 테루모토의 본영을 두고, 그 주변 일대에는 모리 본군을 동원하여 방비를 굳힌다. 그 동쪽에 위치한 난구 산에는, 모리의 별동대인 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 / 킷카와 히로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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