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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제로센 파일럿 故 코마치 사다무 인터뷰 (1) ┣ 雜誌 歷史群像



  코마치 사다무小町定(1920 ~ 2012)

  전 일본해군 비행병조장(준위). 타이쇼 9년(1920) 이시카와 현 출생. 쇼와 14년(1939) 제 49기 조종연습소 졸업. 쇼와 15년(1940) 10월『아카기赤城』승선. 쇼와 16년(1941) 5월『쇼가쿠翔鶴』승선. 이후, 제로센零戰 파일럿으로서 하와이 / 라바울 / 뉴기니 / 인도양 / 산호해 / 솔로몬 / 트럭 / 괌 등의 온갖 항공전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도쿄 카마타蒲田에서 주식회사 그란타운 경영.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4호(2000년 겨울호) 150~155쪽의 기사인, 엔도 타카시遠藤隆 씨가 집필하고 미야지 신고宮司信吾 씨가 사진을 찍은《인터뷰 코마치 사다무》를 번역한 것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쪽 에이스 파일럿 중 하나(공동격추를 제외하고 최소 적기 18기 격추 인정)로 전후에도 살아남아 93세의 천수를 누린 코마치 씨의 태평양전쟁 체험담을 다루고 있습니다.(저번에 번역한 사람은 일본 우익에 몸 담았던 사람, 이번에 번역하는 사람은 과거의 제로센 파일럿, 다음에 번역할까 생각하는 사람은 북부 치시마 열도(現 쿠릴 열도) 위령회 회장 역임자. 제가 봐도 좀 위태위태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닌데..)



▲ 태평양전쟁 당시의 코마치 사다무


  "전투기 파일럿의 자질... 저로서는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분명히 전투기는, 막 공중전에 돌입하는 경우 등에서는 개개인의 판단이 중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개인주의적인 인간에게 어울리는 거라든가... 이런저런 말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기준을 가지고 성격 테스트와 같이 결정해버리는 건, 그릇된 결과를 낳지 않겠습니까.
  
  단지, 지상의 기압에 익숙한 인간이 5천 미터급 산에 오르면 뇌의 활동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는데, 전투기의 경우는 그만한 높이를 일거에 올라갑니다. 거기에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의 여부라든가. 굳이 전투기 파일럿에 대해 기준을 설정한다고 하면, 이런 점은 언급할 수 있겠군요.

  그래도 당시는 생리적인 데이터의 면밀한 해석 같은 게 없었으므로, 어찌됐든 교관이 연습생과 함께 상공에 올라가서, 조종기술이나 기관총의 명중률, 전반적인 거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이 녀석은 날카롭다.' 든가 '쓸 만하겠다.' 는 식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죠. 이는 교관의 오랜 경험에 의해 도출된 감과 같은 것에 의하는 것이지요."

  진주만 공격에서부터 종전까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제로센 파일럿으로서 태평양 전선의 거의 모든 곳을 전전한 경험을 가진 코마치 사다무 씨는, "전투기 탑승자의 자질은?" 이라는 이 쪽의 노골적인 질문에, 위와 같이 답해 주었다.

  그 코마치 씨가 도쿄 오타 구에서 경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그란타운(빌딩사업) 】의 사무실을 찾아가자, 회사명 옆에【 제로센 탑승원 모임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던 게 눈에 띄었다. 

【 제로센 탑승원 모임 】은 前 제로센 파일럿들을 중심으로, 쇼와 53년(1978)에 결성된 친목단체이다.【 제로센 탑승원 모임 】의 부대표를 맡은 코마치 씨는, 자신의 사무실을【 제로센 탑승원 모임 】의 사무소로 활용하여, 사무도 대행해주고 있다.   

  "회원은 현재 778명. 유족회원과 제로센 팬으로 이루어진 찬조회원 51명을 포함하면 합꼐 829명이 됩니다. 회원 중에서 최연소자가 72세이고 최연장자가 80대 후반. 갈수록 그 수가 줄고 있지요. 이제는 3년 정도 후에 해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요."

  코마치 씨는 올해(2000년) 80세.【 제로센 탑승원 모임 】의 동료들이 차례차례 현역에서 리타이어해 가는 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안광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코마치 씨의 건장한 육체는, 언제나 튼튼하고 단정하다.

  그렇게 전투기 파일럿으로 가는 길에 발을 들이게 된 경위를, 코마치 씨는 낮으면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교육은 어쨌든 남자아이는 크면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니까, 막연하게 병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쇼와 13년(1938)에 해병단에 입대했습니다만, 전투기 파일럿은 시대의 주역이었단 말이죠. (파일럿이) 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열심히 한 결과, 다음 해에 해병단을 졸업하자마자 카스미가우라 항공대에 제 49기 조종연습생으로 입대했습니다."   

  코마치 씨는 그 후 약 1년 간의 맹훈련을 거쳐, 쇼와 15년(1940) 10월, 드디어 항공모함『아카기』에 승선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쇼와 16년(1941) 5월에는 항모『쇼가쿠』의 탑승원으로서, 진주만 공격에 참가하게 된다.

  "기동부대의 모든 함선이 에토로푸 섬 히토캇푸 만에 집결하였습니다만,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대규모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등의 온갖 소문이 돌았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모든 기종의 탑승원들이 항모『아카기』에 집합하여, 그 곳에서 사령관으로부터 진주만 공격의 계획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얼마 전부터 어쩐지 수상하다 했어요. 언제나 수많은 짐들이 흐트러진 채로 놓여있는 항모의 복도廊下가 순식간에 깨끗이 청소되어, 그 곳에는 맥주를 담은 상자들이 대신에 엄청나게 쌓여 있기도 했으니까요.

  출항한 후에는, 복도에 쌓인 맥주병들을 텅 비게 할 정도로, 연밀 술을 마시며 보냈습니다. 이상한 흥분에 사로잡혀 있던 탓인지, 샤워하듯 맥주를 마셔대도 곤드레가 되지 않아요. 마음 속이 오히려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쇼와 16년(1941) 12월 8일. 진주만 공격(=하와이 공격작전) 당일, 코마치 씨는 공격대가 아니라, 항모의 상공을 초계하며, 적의 반격을 요격할【 상공호위上空直衛 】의 임무에 종사했다. 제로센 파일럿 코마치 사다무의 첫 출진이었다.  


《어쨌든 상공호위인데도, 바로 밑에 있는 모함과의 교신조차 만족스럽게 되지 않으니 너무했죠. 색적기로부터 들어온 정보가, 이 쪽에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모함 탑승원으로서 제로센 파일럿의 임무는, 대충 분류하면 공격 / 수비로 나뉘어진다. 수비는 진주만 공격의 당일날 코마치 씨가 맡은【 상공호위上空直衛 】. 공격 쪽은 폭격기 등의 공격대를 적기의 요격으로부터 원호하는【 폭격 엄호대爆擊直掩隊 】와 적 함대 상공의 제공권을 장악하는【 제공대制空隊 】가 있다.  

  "상공호위를 맡을 것인가 폭격 엄호대 / 제공대를 맡을 것인가 하는 건, 로테이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상공호위 쪽이 더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폭격 엄호대 / 제공대는 공격 측이므로, 단순히 폭격만 잘 끝나면 이후는 잽싸게 물러나면 됩니다. (물론) 물러날 때 공격대의 후미를 맡아 적을 배제해야만 하니 그것도 위험한 전투기의 임무이겠습니다만, (그래도) 특히 대전 후반 이후 상공호위의 곤란함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고작 6기나 9기(전투기의 경우는 9기가 1개 중대)로 임무에 임했습니다만, 적기는 100기를 단위로 삼으므로 우리들의 신변을 지키는 게 고작이었죠. 그런데, 항모의 방위가 본래 임무였기에, 도망칠 수도 없었어요.

  현장의 인간으로서는 공격대를 줄여서라도 호위를 늘렸으면 했습니다만, 이를 편성하는 높으신 분들은 어떻게든 공격 측에 병력을 더 할당하고 싶어하죠. 이는 결국,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임무를, 실제로는 그들 스스로가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러한 딜레마는 언제나 느끼고 있었죠."


  상공호위는, 적기와의 싸움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아군 부대가 쏘는 총격도 위협적이다.

  "아래에서 쏘아올린 기총이, 저희 쪽의 기체를 향해 똑바로 조준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래(함선)에 있는 사람도 무서우니까,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죄다 적이라고 생각해서 쏴 버린 거죠.(웃음) 그래도 그들도 진지하게 임한 결과 그렇게 된 것이니, 불평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호위를 맡을 때에는, 신경을 적기에만 집중시키는 건 위험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는 별도로, 기실 코마치 씨가 언제나 전투 현장에서 최대 문제로 생각한 것은, 제로센의 무선전화 성능이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상공호위를 맡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모함과의 교신조차 만족스럽게 되지 않으니 심각하지요. 예를 들면 아침에 적의 공격대가 다가오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색적기索敵機의 편대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서 색적을 위해 날아갑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적을 발견했다는 연락이 들어옵니다. 그들은 무선 전신 전보를 쓰기에 대단히 먼 거리에서도 연락할 수 있죠. 이를 들으면 몇 도의 방향에 적이 있는지를 곧장 알 수 있습니다.

  이 색적기로부터의 정보를 상공호위를 맡은 제로센 부대에게 즉각 전해줄 수 있었다면, 아군 함대에서 약 30 ~ 40마일 떨어진 위치에서 적의 공격대를 포착, 삼격三擊이든 사격四擊이든 공격을 반복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적의 공격대는 사방으로 흩어져, 그 공격을 실패로 끝나게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무선전화를 쓸 수 없었기에 색적기로부터 오는 정보가 사령관이 있는 곳에서 정지해 버리고, 이쪽에는 들어오지 않았죠.

  그리고 상공호위를 맡을 때는, 모함의 상공을 언제나 크게 선회하는 형태로 날아다녔습니다. 때로는 적의 침입경로와 완전히 반대 방향을 날아다니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 때에
"그 쪽이 아니다. 이 쪽이다" 고 명령을 해 줄 전화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저는 택시 같은 데 타면 대단히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본부로부터 각 택시에 빈번히 무선이 들어옵니다. 루트를 지시하고, 다음으로 향할 곳을 지시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제로센 탑승원들의 목숨을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이 일본군 상층부에 있었다면, 무선전화를 개량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걸 되씹어 보면, 저는 지금도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분합니다."
   
     


덧글

  • 진충보국 2015/03/10 19:27 # 삭제 답글

    항상 좋은글 잘보고 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5/03/10 21:47 #

    격려 감사합니다. ^^
  • 도연초 2015/03/10 20:24 # 답글

    1. 사실 영전(제로센)의 조종사에 대하여는 '일곱 신하의 안건을 듣고 일곱 가지 행정을 동시에 처리했다는 쇼토쿠 태자와 같은 기지와 통찰력이 필요했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그럴 수밖에요.(이건 지금 전투조종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만)

    2. 현장경험이 없는 높으신 분에 대한 원망이 묻어나는 증언입니다만 그 현장 경험이 있었다던(실제로 초창기 조종사 시절의 '겐다 서커스'의 유래인 겐다 미노루의 영향으로 은근히 많은 에이스가 조종병, 조종사관으로 활약했습니다. 중일전쟁 후에는 거의 지상근무에 치중해서 그렇지...) 겐다 미노루조차도 전형적인 일본제국군 고위인사의 행태를 답습하는 한계를 벗지 못했던 것을 보면 참...
  • 3인칭관찰자 2015/03/10 22:17 #

    1. 말씀대로 조종사 자체가 원래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는 데다가 공업기술이 낮은 일본의 전투기였던 제로센 파일럿은 더한 페널티를 안고 있었을 테니...

    2. 그러고 보면 항공기를 몰다가 항공참모 등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텐데(후치다 마츠오도 그렇고...) 대부분 겐다처럼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걸까요.
  • 재팔 2015/03/11 19:53 #

    특히 겐다 친구 후치다는 회고록 읽으면서 참 구차한 변명 일색에, 자기 잘난 것만 이야기하고, 후반부 해전에서 자기가 작전 입안한 것에는 그냥 노력했다는 식으로 넘어가며 육군 항공대에게 책임 넘기는 거 보고 역시 끼리끼리... 란 생각이 들었네요 ㅋㅋ
  • 3인칭관찰자 2015/03/11 22:52 #

    재팔 // 진짜 대만 항공전에서 개판난 것과 전과가 허상이었다는 걸 육군에게 가르쳐주지도 않은 주제에 그들에게 책임 뒤집어씌우는 건 좀 많이 심하다 싶더군요.
  • 뚱뚜둥 2015/03/10 20:59 # 답글

    제로센 파일럿들이 전투기의 안테나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진짜겠군요.

    전후에 전투기의 무전기가 엉망인 이유를 확인해보니 전선피복 불량으로 알고있습니다.
    진주만 이후에 고무가 나오는 남방을 점령한 일본군이 무전기 문제를 방치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 3인칭관찰자 2015/03/10 22:06 #

    네. 기술과 자원이 딸려서 종이로 전선을 말아서 피복을 입혔다.. 고 들었습니다.

    밀덕지식이 부족해서 상세히는 모릅니다만, 태평양전쟁 개전 전에는 고무가 부족했고, 남방작전에 성공해서 고무를 얻은 이후에는 이미 전쟁상태에 돌입한 구미로부터 피복제조기를 수입해서 양산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로센 최종형(52형)에 부착한 3식 전화기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능이었다고도 합니다만, 탑재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 도연초 2015/03/10 23:06 #

    중일전쟁 당시만해도 주요 전략물자는 대부분 '미국산'이었습니다. 무전기에 중요한 전자부품(트랜지스터, 진공관 등)이 태평양전쟁 후로 양질 원료를 수출하던 것이 끊어졌으니(독일에서 구하면 될걸 감안해도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제대로 된 것을 태평양전쟁 이후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무전기는 통신이 가능했습니다. 편대비행때만요. 교전상황이면 통신불가능이 되는게 현실이었고요. 통신이 되어도 편대비행 수준으로 밀착된 상황에서만 잡음 속에서 어렴풋이 소통이 가능했는데 그런 걸 못하는 교전상황이면 노이즈에 묻혀버려서 없느니만 못한데 누가 쓰겠어요. 그러니 무전기 뜯고 안테나 잘랐다는 전설이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 재팔 2015/03/11 19:51 #

    자원의 문제는,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죠...
    일본이 공업력이나 기술력이 독일처럼 좋다고 가정을 해도 해상교통전에 전혀 관심 없는 해군 수뇌부들이 해군의 중추에 있었던 일본해군이니만큼, 배에 실은 물건들이 1년 동안은 일본에 잘 들어갔을지는 모르나, 그 이후에는 아마 일본 공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용왕에게 공양하는 비율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 도연초 2015/03/11 21:05 #

    재팔 / 해상교통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보급이라는 개념조차도 소홀히 한 일본제국이었으니 자원을 얻어도 일선으로 병기나 물자가 잘 지급될까 의문이고 말이죠;
  • 까마귀옹 2015/03/11 00:23 # 답글

    무기라는게 '바보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다루기 편한게 좋은 것인데, 당시 일본군의 장비들을 보면 어째 '천재 전문가가 다루지 않으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그 '제 성능'이란 것도 다른 '바보들의 무기'와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 3인칭관찰자 2015/03/11 22:44 #

    아무래도 다른 열강 국가들에 비해 '갖지 못한 나라'다 보니 전체적으로 기술이라든가 자원이라든가 인프라 같은 게 뒤떨어졌고, 그 약점을 인적자원을 좀 더 혹독하게 갈아서 보강하려고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단지 그렇게 사람들을 잡아봐도 뒤떨어지는 무기성능을 가릴 순 없는 것이니(...)
  • 천마 2015/03/13 11:19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당시 조종사로서 답답했던 심정이 잘 보이는 글입니다. 제로기의 무전기문제는 잘 알려진 고질적인 문제죠.^^;

    제가 일본 블로그에서 읽은건데 제로기의 무전기가 먹통이 된 이유중 하나로 엔진노이즈문제를 들더군요. 엔진이 작동하면 점화플러그나 발전기등에서 전파가 발생하는데 이게 무전기에 잡음을 일으킵니다. 지금도 카오디오 커뮤니티들를 보면 엔진노이즈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걸러내고 맑은 음질을 유지하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더군요. 이 노이즈를 걸러주는 필터가 있는데 당시 일본은 그런게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테스트할때는 멀쩡하게 작동하던 무전기가 비행중엔 심한 잡음으로 먹통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조종사분 인터뷰대로 적기 접근 상황을 무전으로 통보해줄 수 없어서 함대에서 신호탄으로 알려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타국 전투기들은 무전기 사용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을 보면 엔진노이즈필터가 있었다는 말인데 일본기술자들은 이런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게 좀 이해가 안되기는 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5/03/13 20:53 #

    점화 플러그나 발전기 등에 의해 생겨나는 엔진 노이즈.... 그런 문제도 있었군요. 그런데 말씀대로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해결이 된 것 같은데 왜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였을까 하는 건 의문으로 남는군요. 만주사변 이래 사실상 15년간 국가 준전시 / 전시체제였고, 중일전쟁이나 노몬한 전투에서 항공기 굴렸다면 무전이 안 먹으니 개량해야 한다, 정도의 전훈은 건져서 태평양의 전운이 급박해질 즈음까지는 보완을 해야 했지 않았나 싶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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