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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나카타 상점 대표이사 인터뷰 (1) ┣ 雜誌 歷史群像



  나카타 타다오(中田忠夫, 1927 ~ 2019.03.27)

  (밀리터리 샵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나카타 상점中田商店 대표이사역. 쇼와 2년(1927) 야마구치 현 쿠마게 군熊毛郡 히라오쵸平生町에서 태어나, 쇼와 19년(1944)에 도쿄로 올라갔다. 화베이 교통華北交通의 사원모집에 응모하여 쇼와 20년(1945) 7월에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카이펑(開封, 개봉) 철도국에 근무. 종전 후에는 그대로 중국에 머물며, 쉬저우(徐州, 서주)에서 장사를 체험했다. 쇼와 21년(1946) 4월에 귀국, 히로시마와 도쿄를 왕래하면서 군장품 매매를 시작했다. 그 후, 노점상을 거쳐 쇼와 31년(1956), 아메요코에서 1평 가게를 얻었다. 고급 수입잡화 / 전기면도기 / 장난감 권총 등을 판매하여 인기를 얻는 한편, 이 무렵부터 전쟁박물관에 대한 구상을 갖기 시작하였다. 쇼와 37년(1962)에 현재의 아메요코 점의 장소로 이전. 정교한 모델건을 제조ㆍ판매하여 유행을 일으켰다.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2호(2000년 여름호) 148~153쪽의 기사인, 엔도 타카시遠藤隆 씨가 집필하고 미즈노 이치우水野一宇 씨가 사진을 찍은《인터뷰 나카타 타다오》를 번역한 것으로, 일본 밀리터리계에서 지금도 유명한【 나카타 상점 】을 창설한 나카타 씨와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쿄 우에노의 JR 오카치마치御徒町 역에서 우에노 역에 걸친 고가선 아래와 그 양측에 늘어선 가드레일가에, 식료품 / 스포츠 용품 / 취미용품 / 각종 잡화류 등 온갖 물품을 취급하는 엄청난 수의 점포가, 미로와 같이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구역이 있다. 모두가 알고 계시는 아메요코アメ横이다.

  아메요코 - 즉 아메야 요코마치アメ屋橫町라는 호칭의 유래는 종전 직후, 도쿄에서도 손꼽는 암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이 근처에, 점포마다【 고구마 엿집芋アメ屋 】이 늘어서서 명물이 되었던 데서 시작되었다. 고구마엿芋アメ이란 고구마를 가공하여 엿(飴, 아메) 으로 굳힌 것으로, 당시에는 설탕을 위시한 감미료가 극도로 부족하였기에, 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이 시작될 때는 그렇다고 쳐도, 특히 쇼와 30년(1955) 무렵 이래 아메요코의 "아메"란, (엿이라는 의미의 '아메' 가 아닌) 실은 "아메리카(미국)의 아메" 라는 의미도 겸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쇼와 25년(1950) 6월부터 28년(1953) 7월까지 계속된 한국전쟁朝鮮戰爭 이후, 의류 / 잡화물 등 미군에서 방출된 물품이 아메요코에 대량으로 유입되어, 그 풍부한 물품들이 아메요코의 또 하나의 명물로서 정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메요코는 미군 방출품들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밀리터리 서플러스(군대에서 방출된 물건, 군복 / 군장품 등 밀리터리에 관련된 온갖 잡화류)의 메카가 되었다.

  그리고 나카타 타다오 씨가 경영하는 나카타 상점은, 쇼와 31년(1956)에 창립된 이래,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나카타 타다오 씨 자신도, 밀리터리 서플러스의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재이다.

  그 뿐만 아니다. 나카타 상점은 쇼와 3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정교한【 모델건 】유행의 진원지가 되었으며, 전후의 취미계에 남긴 족적은 대단히 크다. 암시장 시대의 생존자, 일본 제일로 불리는 밀리터리 서플러스 가게의 경영자, 모델건 유행의 진원지... 라고 하면, 나카타 씨의 이미지는 "전쟁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과 같은 색채가 입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카타 씨의 맨얼굴은, 철저한 반전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실제로, 쇼와 3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나카타 씨 인생의 최고목표는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도록 호소하기 위한【 전쟁박물관 】을 설립"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는 밀리터리 서플러스를 판매하고, 정교한 모델건을 만들어 팔면서도,【 장사를 함과 동시에 전쟁박물관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라는 의미가 대단히 강해졌다, 고 말한다.

  나카타 씨의 바램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나카타 씨의 전쟁 / 패전체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리라.


《전쟁 말기인 쇼와 20년(1945), 화베이 교통의 인원모집에 응모한 나카타 소년은, 그 눈으로 대륙을 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모든 것은 전시중에 건너간 중국의 쉬저우徐州에서, 특히 쉬저우 경찰 유치장에서의 체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유치장에서 저는 네 명의 소중한 동료를 잃었고, 그 중 두 명은 제 손으로 매장했습니다."

  이야기의 경위는 즉, 다음과 같다.

  쇼와 20년(1945) 2월, 나카타 씨는 중국에서 군수물자 수송 등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화베이 교통 】의 인원모집에 응모하여, 중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약관 17세의 나이였다.

  고향 야마구치 현山口縣에서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여, 예비교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것이 작년 여름. 그러나 근로동원이 계속되어, 결국 공부할 틈도 얻지 못했던 나카타 소년은 패전의 낌새가 농후해져가던 일본을 떠나, "어찌됐든 내 눈으로 대륙을 보고 싶다" 는 막을 수 없는 열정을 에너지로 삼아, 단신으로 중국에 건너가기로 결의했다.

  "그런 시기에 중국에 건너갈 수 있었던 건 화베이 교통이 군속회사였기 때문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철도운송이 주된 사업이었지요. 단지 화베이 교통에 응모한 것은 2월이지만, 동기 동료들과 중국으로 향한 것은 6월이었습니다. 도중에 시모노세키下關에서 폭격을 당해 10여 일간 발이 묶여버렸기에, 중국 본토에 발을 들인 건 결국 7월에 접어든 후였습니다.

  그렇기에, 베이징北京에서 우선 1주일을 보내고, 카이펑開封 철도관리국의 인사명령이 날아와 카이펑으로 향했습니다만, 그 때는 이미 7월 중순으로, 그 후로 1개월도 되지 않아 종전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노고에 대한 보답은, 어이없는 패전이었다. 그러나, 나카타 씨의 진정한 대륙체험은, 오히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패전을 알게 된 건 8월 15일 저녁, 회사의 무기고에서 38식 보병총과 14년식 권총(=피스톨), 수류탄 등이 꺼내어져, 그 자리에 있던 50여 명의 사원들 모두에게 지급되었습니다. 주변에 흩어져서 살고 있던 사원들의 일본인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죠."

  나카타 씨들은 열차포를 장비한 장갑열차 세 대에 나눠타고 결사의 각오로 출격했다. 다행히도 무기를 사용할 기회는 없었고, 사원 가족들을 데리고 무사히 카이펑에 돌아올 수 있었으나, 다음 날부터는 38식 보병총으로 무장하고 회사 창고의 경비를 서는 일상을 한동안 보냈다.

  그러는 동안에 11월이 되어, 일본으로 철수하는 배에 타기위해, 나카타 씨는 카이펑 철도국의 동료와 그 가족들 약 300명과 함께, 열차를 통해 우선 쉬저우로 향하게 되었다. 쉬저우는 철수선이 떠나는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靑島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는 분기점으로, 그 곳에서 어디를 경유하여 철수선에 타는지에 대한 지시를 기다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쉬저우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입사동기인 동료들 6명과 상담하여,【 이대로 기다려봤자 뾰족한 수가 없는 거 아닌가. 우리들만이라도 한시라도 빨리 항구에 가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제멋대로인 사고였는데, 결국 우리들만 단독행동을 취하게 된 거죠."

  나카타 씨를 포함한 7명은, 3일 후에 열차에서 내려, 자기들만이라도 우선 칭다오로 향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카타 씨가 출발을 코앞에 두고 39도가 넘는 고열을 내며 몸져눕게 되어,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탈력감에 전신을 침범당하게 되었다.

  "그들을 거치적거리게 할 수 없었기에 훗날, 반드시 일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여, 저는 동료들과 울면서 그 자리에서 헤어져, 일단 열차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나카타 씨와, 여섯 명의 동료들의 운명의 행방은 크게 갈리게 되는데, 그 운명의 장난에 맞닥뜨리기 전에, 나가타 씨는 이 쉬저우에서 훗날 나카타 상점을 무대로 개화시킨 상재商才의 편린을 일찍이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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