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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오다 군단》타키가와 / 카와지리의 불운 (下) ┣ 激鬪 織田軍團 (完)


  이 글은 (舊)《歷史群像シリ-ズ 20 激鬪 織田軍團》의 P. 186 ~ 189페이지에 수록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주요 가신 10명을 중점적으로 다룬《노부나가 가신단의 수수께끼와 실상》제 9화로, 1582년 3월에 오다 군이 다케다 카쓰요리武田勝賴를 멸망시킨 후 다케다 가문의 옛 영지에 입봉한 대표적인 인물인 카와지리 히데타카(河尻秀隆, 카이 지방甲斐國과 시나노信濃 스와 군諏訪郡의 영주가 됨)와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코즈케 지방上野國과 시나노 치이사카타小縣 / 사쿠佐久 군의 영주가 됨)가, 몇 개월 후 혼노사의 변이 터지면서 겪게 되는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필자는 마스다 미키增田美貴 씨.(1991년 당시 역사연구자)


  호죠 씨에게 패배한 카즈마스一益

  그리고 이번엔 타키가와 카즈마스(당시 58세)이나, 노부나가의 격려 아래 4월 초에 간토 8주를 제압하기 위해 코즈케上野 지방으로 들어가, 우마야바시 성厩橋城을 거점으로 삼았다. 노부나가는 히데타카와 마찬가지로 그 경험과 실적을 높이 사, 카즈마스를 이 땅에 배치한 것이다. 이 곳은 카이 지방과는 다른 의미에서 지배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간토에서는 다케다武田 / 호죠北条 / 우에스기上杉의 추세를 살피면서 그들에게 붙거나,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무장들이 많았다. 우선 그들부터 신하로 거느려야 한다. 노부나가는 히타치常陸 지방의 오타太田 / 카지와라
  그리고 그 옆에는 호죠 씨가 있다. 對 다케다 전에서는 협력했으나, 그 동향은 방심할 수 없다. 노부나가의 뇌리에는 "카즈마스 / 히데타카 / 이에야스의 세 방향에서 호죠 씨를 포위하겠다" 는 전략적인 구상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당시 코즈케 방면으로는 부슈(武州, 무사시武藏 지방) 하치가타 성鉢形城의 호죠 우지쿠니北条氏邦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유라 씨由良氏 / 나리타 씨成田氏와 같은 근린의 제장들은 카즈마스에게 인질을 바치고 종속하였으나, 오랜 기간 호죠 씨의 세력권과 마주하고 있던 자들이라, 그 내심은 미묘했다.

  이 때문에 카즈마스는 코즈케는 물론이고, 시모츠케下野 / 히타치 / 카즈사上總 지방에 이르기까지 제장들과 결속하려는 뜻을 보이며, 불안정한 지반을 굳히려고 했다.【 가까운 시기에 찾아오신다고 하니, 반드시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디.. 】와 같은, 친절하고 정중한 편지(히타치 카지와라 씨에게 보낸 편지)를 보내거나, 노(能, 역주 : 일본의 전통 가면 음악극) 등을 개최하면서 친목을 도모했다.

  이렇게 카즈마스가 분투하고 있던 바로 그 때, 혼노사 정변이 일어났다. 고심 끝에 카즈마스는 교토의 변보를 정직하게 조슈(上州, 코즈케 지방)의 호족들에게 밝히고, 그 진퇴를 상의했다. 섣불리 감췄다가 의심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슈인上州人들은 카즈마스의 마음에 화답하여, 그 결과 호죠 씨와 일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6월 11일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는 카즈마스에게【 우리 쪽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달라. 상담에도 응하겠다. 】는 편지를 보내며, 주의깊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탐색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벌써, 정변 후의 혼란에 편승하여 조슈로 진출하겠다는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앞에서 쓴 대로 코슈(甲州. 카이甲斐 지방)까지 탐내고 있었으니, 상당히 노회老獪했다.

  이렇게 하여 칸나 강(神流川, 코즈케 / 무사시 지방의 접경지)에서 전투가 벌어져, 6월 19일 타키가와 군은 호죠 우지나오北条氏直의 대군 앞에 참패를 당했다. 패전 후 조슈인들은 자기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도망치려는 기미를 보였는데, 카즈마스도 그들을 이 이상 묶어둘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조슈인들이 칸나 강 전투에 참전한 모습을 보면, 카즈마스의 노력은 어느 정도는 보답받은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히데타카와 같은 운명을 맞는 것도 신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실 카즈마스는 이 때, 이에야스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카즈마스는 알지 못했을 것이나, 이에야스와 호죠 씨는 카이 지방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었기에, 이는 상당한 묘안이었다. 단지 카즈마스는 승부를 너무 서둘렀다. 토대가 불안정한 채로 간토 제일의 실력자인 호죠 씨와 결전을 벌이는 건, 시기상조였다는 느낌이 든다. 히데타카가 이에야스에게 패배했다면, 결과적으로 카즈마스는 호죠 씨에게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입경을 서둘렀기 때문일지 모르나, 인심수람에 있어서도 전략에서도 카즈마스는 뭔가 약간 요령이 나빴다.

  그 후 카즈마스는 간신히 이세伊勢로 귀환하였으나, 이미 오다 가문織田家 중신으로서의 입장은 실추되어 있었다.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게 굴복하여 그 밑에 들어간 이후에도 한 번 잃어버린 행운은 돌아오지 않아, 카즈마스가 노부나가 시대와 같은 활약을 보여준 적은 두 번 다시 없었다.

  노부나가는 무능한 인물을 부양할 정도로 무른 남자가 아니다. 카즈마스도 히데타카도 노부나가의 신뢰에 부응할 만한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능력은 노부나가라는 나침반에 기대어 노부나가가 설정한 무대 안에서밖에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에도, 스스로의 지략으로 천하를 제압한 히데요시와는 달랐던 것이다.

  카즈마스 / 히데타카는 역전의 용장이면서도, 어딘가 서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르고 늦은 차이는 있으나, 결국 카즈마스도 히데타카도 노부나가를 따라 순사했다는 말이 되리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 둘에 있어서도 행복할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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