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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오다 군단》수군지휘관 쿠키 요시타카 (下) ┣ 激鬪 織田軍團 (完)


  이 글은 (舊)《歷史群像シリ-ズ 20 激鬪 織田軍團》의 P. 174 ~ 177페이지에 수록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주요 가신 10명을 중점적으로 다룬《노부나가 가신단의 수수께끼와 실상》제 6화로, 오다 수군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제 2차 키즈 강 하구 전투에서 모리 수군을 격파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참패한)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를 다루고 있습니다. 1991년에 출간된 책이니만큼 어느 정도 필터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필자는 요시다 켄메이吉田兼明 씨.(1991년 당시 미에 현三重縣 향토사학자)


  연전연승의 쿠키 수군

  텐쇼 2년(1574) 7월 14일, 쿠키 요시타카는 아타케부네安宅船 10여 척을 이끌고 키소木曾 / 나가라長良 / 이비 강揖斐川의 하구河口인 나가시마長島 해상에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이란 여섯 자의 이름을 외우면서 부처님을 위해 죽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잇코종 신도를 토벌하기 위한, 세 번째의 간쇼사願證寺 공격이었다.

  수군의 총대장은 키타바타케 코쿠시 가문을 상속한 노부나가의 차남 산스케 토모토요(三助具豊, 훗날의 노부카쓰信雄). 이를 보좌하는 자들이 쿠키 요시타카 /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 / 이토 산노죠伊藤三之丞 / 미즈노 켄모츠水野監物 이상 네 무장이었다.

  명령 아래, 쿠키 수군이 가장 먼저 적의 최전선거점인 오시마 성채大島砦로 돌진했다.

  하구에서 10여 km 떨어진 성채의 성문 앞에서, 아타케부네를 이끌고 성문 앞에 자리한 요시타카는, 고슴도치처럼 내민 나가이텟포長鐵砲를 포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맹렬히 쏘아댔다. 이 쿠키 수군의 필사적인 전법 앞에 농성군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간쇼사 본진으로 도망쳤다.

  4년을 버틴 나가시마 신도들의 최후는 처참한 것이었다. 3개월에 걸친 농성전으로 전원이 기아상태에 빠졌고, 성채 다수는 이미 함락되었으며 각 성채의 남은 병사들은 나가시마 / 야나가시마屋長島 / 나카에中江라는 3개의 작은 성채에 몰려 있었다. 9월 29일, 노부나가의 최후명령이 전군에 통달되었다.

  군졸들은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성채 주변에 겹겹으로 목책을 치게 하여,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 없다는 속담 그대로 봉쇄하고는, 성 주위에 장작을 쌓아 마지막에는 사방에서 불을 질렀다.

  텐쇼 6년(1578) 정월, 노부나가는, 그 해 중으로 잇코종 신도들의 대본산인 이시야마 혼간사石山本願寺를 공격하겠다고 포고했다. 한편, 요시타카는 지난 해 가을부터 이세伊勢 오미나토大湊에 있는 시로지로四郞次郞의 저택에 체재하며 이세 / 시마 / 쿠마노에 이르는 선박 기술자들을 총동원하여, 스스로 설계도를 그리고, 사카이堺에서 견문한 외국 선박의 이점을 받아들인【 철판을 입힌 군선 】을 건조하는 데 몰두했다. 이 때 요시타카가 6척, 카즈마스가 이세 시라코白子에서 1척을 건조하였다.

  6월 25일, 완성된 7척의 군선을 40여 척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가 포위하여 오미나토를 출항. 사카이 항구로 향했다.
 
  9월 30일, 일본 최초의 관함식이 거행되었다. 사카이의 도시는 개벽 이래로 가장 시끌벅적해져, 칸바쿠關白 코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위시하여 쿠게公家 / 영주大名 / 거상豪商 / 선교사 등 초대된 손님에다, 먼 교토에서도 구경 온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노부나가는 크게 만족하며, 스스로 요시타카에게 황금 20매 / 옷 10벌 등의 포상을 내리고, 새로이 센닌후치千人扶持를 주었다. 거기에다 수백 명의 초대객들 앞에서 "내게는 강력한 쿠키 수군이 있다" 고 말하였다.

  텐쇼 6년(1578) 11월 6일, 잇코종 신도들의 마지막 거점인 이시야마 혼간사로 들어가는 사실상 해로海路 상의 현관문인 키즈 강 하구木津川河口에, 코다마 나리히데兒玉就英 / 우라 효부浦兵部 등 역전의 해군 장수들로 구성된 모리의 선단 6백 수십 척이, 그 씩씩한 모습을 드러냈다.

  먼 옛날 겐페이源平의 시대부터, 일본에서 비할 바 없는 해적군단으로서, 연면히 그 무용을 칭찬받아 온 코우노河野 / 무라카미 씨村上氏를 중핵으로 삼은 모리 수군은, 2년 전에도 오다 노부나가의 편을 든 단노와 슈메효에淡輪主馬兵衛의 수군과 대결, 득의로 삼는 "학익진鶴翼の陳" 으로 이를 포위한 후, 순식간에 3백 여 척의 군선을 불태우고 2천 여 명 가량의 단노와 병사들을 죽이는 대승리를 거둔 실적이 있었다.  

  모리 수군은, 쿠키 요시타카의【 철판을 입힌 군선 】이 이즈미 남쪽 해상에서 사이가 당雜賀黨을 격파한 것도, 사카이의 관함식에서 은 평판도, 정보 전체를 다 꿰고 있었다. 그러나, 모리 수군은 장수에서 졸병에 이르기까지 "일개 작은 지방의 이름 없는 해적 출신인 쿠키 따위가 뭐라고" 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명성에 자부하여 도취해 있었다.

  참깨만한 크기로 보이던 군선이 콩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 쿠키 요시타카의 황금으로 만든 신장대처럼 생긴 선박용 지휘채가 휘둘러졌다. "봉시진蜂矢の陳" 을 친 신예함 7척은 침착하게 적 선단의 중심을 향하여 뱃머리를 몰아갔다. 봉시진이 적 선단에 돌입하자, 적의 불화살이 7척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바로 그 때였다.

  하늘을 울리는 작열 소리가 해면을 뒤흔들었다.

  지켜보는 사이에 불화살을 쏜 군선의 아구라櫓가 부서져, 힘이 장사인 사수의 피가 갑판을 피로 물들였다. 병량을 가득 실은 대선大船은 홀수가 깨져, 무참한 모습으로 불을 뿜으며 침몰했다.

  일순, 아연해 있던 모리 수군이었으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름난 수군이다. 즉각 태세를 정비하여, 비밀병기【 호라쿠 탄환焙烙玉 】을 쿠키의 쿠로후네黑船에 "귀신은 물럿거라" 하는 심산으로 던져댔으나, 이번에는 단노와 수군과 같이 불바다가 되지 않았다. 철판을 입힌 갑판에는 무리한 시도로, 대포와 수류탄의 싸움이란 누가 봐도 결과가 뻔했다.

  득의의 전법을 끝까지 구사해 본 모리 수군은, 이 이상 싸우면 선단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모리 씨의 패망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깨닫자, 군량은 물론 무기와 탄약들까지 바닷속에 던져버려,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한 후에 도망쳤다.

  모리의 원군에 최후의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이시야마 혼간사는, 그 후 두 번에 걸쳐서 모리 씨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다시 (모리 수군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해전에서 대승리했다는 보고를 받은 노부나가는, 미치도록 기뻐했다고 한다. 그 증거로, 해전 직후 쿠키 요시타카를 종오위하 오오스미노카미大隅守에 서임시키고, 시마 지방에다 셋츠 지방攝津國의 노다 후쿠시마野田福島를 합하여 3만 5천 석의 영주로 만들어 주었다.

  키즈 강 앞바다 해전은, 요시타카와 쿠키 수군의 이름을 "일본 제일" 로 만들었고, 노부나가는 10년 간이나 골치를 썩은 (잇코종) 신도들을 진압하면서, 천하포무天下布武를 향해 질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부나가가 요시타카의 탁월한 능력을 발굴하여 활용한 것이, 노부나가 자신을 크게 비약시키는 원천이 되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덧글

  • 2015/01/08 00: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08 00: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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