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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오다 군단》모리 란마루와 그 일족들 (上) ┣ 激鬪 織田軍團 (完)



  이 글은 (舊)《歷史群像シリ-ズ 20 激鬪 織田軍團》의 P. 170 ~ 173페이지에 수록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주요 가신 10명을 중점적으로 다룬《노부나가 가신단의 수수께끼와 실상》제 5화로, 혼노사의 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따라 순사하였으며, 현재 노부나가의 대표적인 시동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모리 란마루森乱丸와 그 가족(주로 란마루의 형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필자는 타니구치 켄고谷口硏語 씨.(1991년 당시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비상근강사)


  노부나가 덕택에 입신立身한 모리 가문森家

  텐쇼 10년(1582) 6월 2일 새벽, 교토 혼노사本能寺 -

  어딘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란은 얼마 안 가, 혼노사 사방에서 들려오게 되었다. 그 날, 혼노사에 숙박하고 있던 건, 오다 노부나가와 몇 안되는 수행원들. 노부나가도 시동들도 바깥에서의 소란을【 아랫것들이 그 자리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 】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함성 소리가 들리며, 조총 탄환들이 쏘아져 날아왔다.

  "이것은 모반이다! 어떤 자의 소행인가?" 라고 묻는 노부나가에게, 시동 중 한 명인 모리 란마루森蘭丸가, "아케치의 군대로 보입니다!" 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노부나가는, "어쩔 수 없구나." 라고 한 마디 하면서 일어섰다.

  모두가 아시는, 혼노사 정변의 1막이다. 이《신쵸코우키信長公記》의 기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때 오다 노부나가의 최측근으로서 그를 섬기던 건, 모리 란마루였다. 그 후, 노부나가는 얼마 안 되는 시동들과 호위 기마무사들과 함께 스스로 활을 쏘고, 창을 꼬나쥐고 분전하다, 이윽고 자살하였다. 동시에 노부나가의 신변을 지키다 전사한 자가 20여 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모리 란마루는 물론이고, 란마루의 동생 보마루坊丸 / 리키마루力丸 형제도 있었다. 이 때의 나이가 란마루 나가사다長定 18세, 보마루 나가타카長隆 17세, 리키마루 나가우지長氏 16세였다. 

  모리 가문의 세 형제가 동시에 노부나가의 시동이 되어 있었던 건, 노부나가가 모리 가문森家을 대단히 중요시했으며, 모리 가문이 그만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모리 가문은 어떠한 가문이었을까? 

  모리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발탁되었고, 노부나가의 덕으로 입신한 가문이었다. 그 시조는 그 유명한 하치만타로 미나모토노 요시이에八幡太郞源義家의 6남인 요시타카義隆라고 전하며, 요시타카가 사가미 지방相模國 모리森를 영지로 삼았기에 "모리" 란 성씨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가계도(家系圖, 족보)에 의한 것이므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후 모리 가문은 연면히 이어져, 15대인 요시유키可行가 미노 지방美濃國 하구리 군羽栗郡 렌다이蓮台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요시유키의 아들이 요시나리可成이다. 모리 요시나리는 다이에이大永 3년(1523)에 태어나, 아명을 만滿, 요조与三라고 했으며, 자라서는 산자에몬三左衛門이란 통칭을 썼다. 이 요시나리 대에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노부나가를 섬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모리 가문은 토키 아케치 씨土岐明智氏의 신하로, 토키 종가가 사이토 도산齋藤道三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토키 아케치 씨도 멸망했다. 이후, 모리 요시유키 / 요시나리 부자는 유량하다 얼마 안 가 노부나가를 섬기게 된 것이다." 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전승은, 15대 요시유키가 미노 하구리군 렌다이에 거주하였다고 하는 것과, 훗날 모리 가문이 토키 아케치 씨 발상의 땅인 미노 카니 군可児郡을 영지로 삼은 사실을 바탕으로, 후세 사람이 창작한 것이 아닐까.

  그 이유는, 렌다이란 현재의 기후 현 카사마츠쵸笠松町 덴다이田代로 추정되는데, 이 땅은 중세에는 오와리 군 하구리 군에 속하여, 텐쇼 14년(1586)의 대홍수로 인해 키소 강木曾川의 물길이 거의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면서, 그 이후 미노 하구리 군이 되었기 때문이다. 

  센고쿠 시대戰國時代의 미노美濃와 오와리尾張의 경계는 키소 강으로, 노부나가가 미노 공략에 나서면서 키소 / 나가라長良 두 강의 합류점인 스노마타墨俣에 집착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양 지방의 접경선은 키소 강에 의해 상당히 엄밀히 구분되어 있었다. 따라서, 모리 가문이 미노 토키 씨를 섬겼었다곤 생각하기 힘들다.

  더구나, 토키 아케치 씨는 카니 군을 본거지로 삼고 있어, 미노 카니 군과 오와리 하구리 군 사이에는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다. 그런 토키 아케치 씨를 신하로 따랐다는 설은 더욱 더 성립하기 힘든 것이다.

  이상의 이유에서 나는, 요시나리는 당초부터 오와리 오다 가문을 신하로서 섬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모리 가문은 노부나가의 부장들 다수가 그랬듯이, 오와리의 농촌에서 성장한 소영주 중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귀신 무사시鬼武藏란 별명을 얻은 용장 나가요시長可

  어찌됐든, 모리 요시나리는 이른 시기부터 노부나가를 섬기며, 그것도 노부나가의 부장 중 한 사람으로서 제 1선에서 활약하였다.

  요시나리는 코지 원년(1555), 키요스 성淸州城 탈취전 / 그리고 오와리 우키노 전투浮野合戰 등에서 공적을 올렸고, 특히 에이로쿠 3년(1560)의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발군의 공적을 세웠다. 거기에다 에이로쿠 8년(1565)의 동 미노 공략전에서는 우호우 성烏峯城을 탈취하였으며, 도호라 성堂洞城 공격에도 참가했다. 이와 같은 공적에 힘입어 에이로쿠 8년 미노 카니 군 우호우 성을 하사받아, 이 땅을 카네야마(金山, 兼山이라고도)란 이름으로 고쳤다.

  그 후, 요시나리는 무게 하치만武芸八幡에 사카이 마사나오(坂井政尙, 역주 : 마사히사로 읽는 게 일반적)와 함꼐 킨제이禁制를 내리고, 에이로쿠 11년(1568)에는 교토에서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 사카이 마사나오 / 하치야 요리타카蜂屋賴隆와 함께 킨제이를 내렸다. 그는 이 무렵, 오다 노부나가의 부교닌(奉行人, 행정관)이라는 입장에 있었다.

  이렇게 카네야마 성주가 되고, 노부나가의 행정관으로서 장래를 촉맏받던 요시나리는 겐키 원년(1570) 대 아사쿠라朝倉 / 아자이淺井 전에서 전사했다.

  이 해 4월,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씨를 토벌하기 위해 에치젠越前으로 공격해 들어갔다가, 아자이 씨의 배반에 의해 퇴각하였다. 유명한 "카네가사키 퇴각전" 이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교토로 도망쳐 돌아온 노부나가는, 오미近江 지방의 요지에 유력 부장들을 배치하고 아사쿠라 / 아자이 연합군의 추격에 대비케 하여, 요시나리는 우사 산성宇佐山城을 지키게 되었다.

  그 후, 아네가와 전투姉川合戰을 거쳐 9월, 이시야마 혼간사石山本願寺가 결기했다. 노부나가가 이시야마로 향하자, 아사쿠라 / 아자이 연합군 3만 명이 이시야마 혼간사에 호응하여 오미 사카모토坂本로 진출, 요시나리는 우사 산성에서 치고 나가 방어전을 벌이다 결국 전사한 것이다.

  요시나리의 장남 요시타카可隆는 그 해 4월의 아사쿠라 공략전에 종군, 19세의 나이로 에치젠 테즈츠 산天筒山에서 전사했기에, 요시나리의 후계는 차남 나가요시長可가 잇게 되어 카네야마 성주가 되었다.

  나가요시는 에이로쿠 원년(1558)에 태어나, 쇼죠勝藏 / 나가카즈長一 등으로 불렸다. 그도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 용맹함을 갖고 있었고, 텐쇼 2년(1574) 16세의 나이로 이세 나가시마伊勢長島 공략전에 처음으로 출진했다. 텐쇼 10년의 다케다武田 공략전에서는 노부나가의 적자 노부타다信忠를 따라 타카토오 성高遠城 공략전 등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워, 다케다가 멸망한 후, 시나노 사라시나更級 / 타카이高井 / 미노치水內 / 하니시나埴科 4군을 하사받았다. 이로써 나가요시는 미노의 옛 영지와 합쳐 20만 7천 900석을 영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그는 무사시노카미武藏守에 임관하여 있었기에, 훗날 "귀신 무사시" 로 불리게 된다.

  이윽고 혼노사 정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쓰러지자, 시나노에 있던 나가요시는 급히 미노로 돌아가 동 미노의 평정에 분주하며, 하시바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의 싸움에서는 히데요시에게 붙어, 동 미노를 굳히며 오다 노부타카織田信孝를 기후 성에 못박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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