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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켄신의 부하》에치고군 효장열전 (完) 역사



  이 글은《直江兼続と戰國武將ㆍ合戰の真実》P. 80 ~ 84에 수록된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주요 신하들을 망라한 간략한 인물열전들의 모음집인【 에치고 군 효장열전越軍驍將列傳 】을 번역한 글입니다. 필자는 작가인 고故 모모세 메이지百瀨明治 씨. 


  야스다 나가히데安田長秀 - 강건용위强健勇威의 무사(생몰년미상)

  아가키타阿賀北 호족들의 일원으로, 에치고 칸바라 군 북부北蒲原 시라카와장白河庄 야스다죠安田条의 영주. 켄신의 아버지 나가오 타메카게長尾爲景 시대부터 신하로 복속해 있던 걸로 보이며, 텐분 13년(1544)에는 켄신의 형 하루카게晴景로부터 영지를 새로 받은 바 있다. 켄신이 린센사林泉寺를 나와 에치고 평정에 나섰을 때부터 그 진중에서 함께 하며, 켄신 옹립을 위한 쿠데타에도 참가했다. 이후, 켄신을 따라 간토나 신슈(信州, 시나노信濃)로 출진.

  에이로쿠 4년(1561)의 카와나카지마 결전에서는 나오에 카게쓰나直江景綱 / 아마카스 카게모치甘糟景持와 함께 신겐信玄의 장남인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의 군대를 쿠라시나倉科까지 추격하여, 전후 이 공적으로 켄신에게서【 피 묻은 감사장 】을 하사받았다. "야스다 지부쇼유님" 이라는 수신명이 적힌 이 감사장은 지금도 현존한다.  

  켄신이 죽은 후에 일어난 우에스기 가문의 후계자 다툼에서는, 카게카쓰 파景勝派에 가담하여 은상을 받았다. 텐쇼 9년(1581) 아가키타 호족인 시바타 시게이에新發田重家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내통하여 우에스기 가문에 반기를 들었을 때, 카게카쓰의 군령을 따라 시바타 공격에 나섰으나, 아직 그 결착이 나지 않은 동안에 병으로 죽었다, 고 전해진다.


  아라카와 나가자네荒川長実 - 신겐과의 일기토(생몰년미상)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총 5회에 걸쳐 벌어졌으나, 그 중에서 다케다 / 우에스기 쌍방의 주력이 격돌한 백미白眉의 일전으로 여겨지는 건, 에이로쿠 4년(1561) 9월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때 하치만바라에 본진을 치고 있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난전 속에서 우에스기 켄신의 칼에 상처를 입었다고도 하며, 그런 양웅의 일기토는《코요군칸甲陽軍鑑》등에 의해 널리 선전되었다.

  그러나《우에스기카고넨후上杉家御年譜》는 이 설을 부정하고, 실제로 신겐에게 달려든 자는 아라카와 이즈노카미 나가자네荒川伊豆守長実라고 한다. 즉【 아라카와 이즈노카미 말을 몰아, 신겐을 발견하고 세 번 타치太刀를 휘둘렀으나 베지 못하고, 신겐도 타치를 뽑을 경황이 없어, 부채로 (칼날을) 막아냈다고 한다. 이미 위험해져 있던 차에... 】

  아라카와 나가자네는, 우에스기 군의 선봉으로 특히 선발된 5명의 친위대旗本 중 1명이었다고 하나, 그 내력은 확실하지 않다. 텐쇼 3년(1575)의《우에스기 씨 군역장上杉氏軍役帳》제 17위에 아라카와 야지로荒川彌次郞라는 이름이 보이는 만큼, 나가자네는 그 일족이 아닐까 하고 일컬어지고 있다. 


  카와다 나가치카河田長親 - 호쿠리쿠 전선을 지휘(생년미상 ~ 1581)

  나가치카는 오미 지방近江國 모리야마守山 출신이라고 하나, 켄신이 두 번째로 입경하였을 때 부름을 받아 그 측근이 되어, 가까이에서 켄신을 모시게 되었다. 당초, 나가치카는 그 학식이나 교섭능력을 평가받아, 주로 외교문서 발급을 맡았으나, 이윽고 전장에서도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하면서, 간토關東나 호쿠리쿠(北陸, 역주 : 현재의 후쿠이 - 이시카와 - 토야마 - 니이가타 현에 걸친 지역)를 전전했다.
  
  그 중에서도 호쿠리쿠 전선에서 나가치카의 활약은 눈부신 데가 있었다. 그 공훈을 칭찬받아, 켄신으로부터 우오즈 성魚津城과 토야마 성富山城 등을 맡게 된 나가치카는, 그야말로 호쿠리쿠 전선에서의 우에스기 군 총지휘관이었다. 텐쇼 5년(1577) 켄신이 대망하던 나나오 성의 항복을 받았을 때, 그 수령사로 임명된 것도 나가치카였다.

  나가치카는 한편으로, 텐쇼 원년(1573) 다케다 신겐이 죽었을 때도 재빨리 이 정보를 입수하여 켄신에게 보고, 그를 기쁘게 했다고 한다. 켄신이 죽은 후에는,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오미 본향의 땅을 주겠다" 는 조건으로 (배반을) 권유받았으나 거부하고, 마츠쿠라 성주松倉城主로서 우에스기 카게카쓰를 섬겼다. 텐쇼 9년(1581) 4월에 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아유카와 모리나가鮎川盛長 - 혼죠 시게나가와 항쟁(생몰년미상)

  아가키타 호족들의 일원으로, 에치고 이와후네 군岩船郡 코이즈미장小泉庄의 아이카와相川를 영유하며, 오오바사와 성을 본거지로 삼았다. 원래는 혼죠 성의 혼죠 씨本庄氏의 가신이었으나, 아버지 키요나가淸長 시대에 자립했다.

  아버지 키요나가는 아가키타 호족으로서 우에스기 가문에 반항한 적도 있으나, 모리나가는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 인질을 바치고 켄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켄신이 죽은 후는 카게카쓰를 섬기며, 아가키타의 거두인 혼죠 시게나가에 맞서 여러 번 항쟁했다. 마고지로孫次郞라고 칭하고 있었다고 하나, 죽은 해는 명확하지 않다.


  야마요시 토요모리山吉豊守 - 가문 필두(1542 ~ 1577)

  에치고 슈고다이守護代인 산죠 나가오 씨三条長尾氏를 섬기며, 산죠 성三条城을 영유했다. 에이로쿠 12년(1569) 이후, 친위대로서 켄신의 측근이자 안내자奏者으로서의 지위를 점했다. 텐쇼 3년(1575)의《우에스기 씨 군역장上杉氏軍役帳》를 보면, 군역 377명으로 가문 내 최다의 머릿수를 부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장에서 활약한 것 외에도, 주로 오다와라 호죠 씨와의 절충에 나서, 엣소동맹(越相同盟, 에치고 우에스기 - 사가미 호죠 동맹)이 성립하는 데 크게 관여했다. 텐쇼 5년(1577) 6월, 36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죠죠 마사시게上条政繁 - 만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출사(생몰년미상)

  노토能登 하타케야마 씨畠山氏의 일족이었으나, 켄신의 양자가 되어 에치고 슈고守護 우에스기 씨上杉氏의 일족인 명문가 죠죠 씨를 이었다. 텐쇼 3년의《우에스기 씨 군역장上杉氏軍役帳》에서는 우에스기 일족 제 4위로 96명의 군역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인으로서 간토나 엣츄를 전전하며, 진다이(陳代, 영주의 대리자로서 출진하여 부대를 지휘하는 위치)에 임명된 때도 있다. 켄신이 죽은 이후에는 카게카쓰를 섬겨 그를 보좌했으나, 만년에 카미카타上方로 도망쳐 세키가하라 전투를 기점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등용되었다. 생몰년은 확실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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