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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오다 군단》노부나가 가신 인명록 (4) ┣ 激鬪 織田軍團 (完)



  (舊)《歷史群像シリ-ズ 20 激鬪 織田軍團》P. 198 ~ 203에 수록된 글입니다. 필자는 타니구치 카츠히로谷口克廣 씨(1991년 당시 코우지야糀谷 중학교 교사).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1535 ~ 1585) 고로자에몬

  이른 시기부터 노부나가를 섬기며 오와리 / 미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입경 이전부터 이미 부대지휘관의 지위에 있었다. 입경 후, 교토의 정치에 관여하였다. 겐키 원년(1570) 벌어진 아네가와 전투姉川の戰い 이후, 사와 산성佐和山城 공략부대의 주장이 되어, 다음 해 2월 성문이 열리자 이 곳에 배치되어 이누카미犬上 / 에치愛智 군 주변의 지역과 토착 사무라이들을 지배했다. 텐쇼(1573 ~ 1592) 초년부터 와카사若狹 지방의 지배도 위임받아, 와카사 다케다 씨武田氏의 옛 신하들을 배하에 거느린 것 같다.

  텐쇼 3년(1575) 7월 3일에 있었던 임관식除目에서 "코레즈미惟住" 성씨를 하사받았으나, 코쿠시國司로 임관되지는 않았다. 다음 해인 텐쇼 4년(1576)에 시작된 아즈치安土 축성 때는 총책임자를 맡았다.

  텐쇼 10년(1582) 5월, 오다 노부타카織田信孝를 보좌하여 시코쿠四國 정벌에 나서려던 때에 혼노사 정변이 발발. 히데요시와 합류하여 야마자키 전투에 참가하여,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 키요스 회의淸州會議에서 4명의 숙로宿老 중 한 사람이 되었으나, 언제나 히데요시에게 동조하며 그의 약진을 도왔다.


  하치야 요리타카蜂屋賴隆(생년미상 ~ 1589) 효고노카미

  미노 출신이라고 하나, 이른 시기부터 노부나가를 섬겼다. 에이로쿠 년간에 쿠로호로슈(黑母衣衆, 역주 : 검은 화살막이를 걸친 정예 연락장교)가 되기도 했으나, 입경 시에는 이미 한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그 후, 오미 히다 성주肥田城主가 되었다. 그러나 영지 / 요리키들의 상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텐쇼 8년(1580) 무렵부터는 키시와다 성岸和田城에 기거. 이즈미和泉 지방에 요리키들을 두고 있었을까?

  텐쇼 10년(1582) 5월, 노부타카를 보좌하여 시코쿠 정벌을 명 받았으나 혼노사 정변에 의해 (원정은) 중지. 야마자키 전투山崎の戰い에 참가했다. 이후에는 언제나 히데요시를 따랐다.


  하나와 나오마사塙直政(생년미상 ~ 1576) 쿠로자에몬, 하라다 빗츄노카미

  원래 이름은 마사카쓰正勝. 오와리 시대부터 노부나가의 호위 기마무사였다. 에이로쿠 년간, 아카호로슈(赤母衣衆, 역주 : 붉은 화살막이를 걸친 정예 연락장교)에 발탁되기도 했다. 겐키 년간에는 행정관들과 함께 교토 / 야마시로 지방의 정무에 관여하기도 했으며, 텐쇼 2년(1574) 5월, 야마시로 슈고山城守護가 되었다. 그렇다곤 해도, 그 지배권은 야마시로 남부에 한정되어 있었던 듯하다. 다음 해(1575) 3월, 여기에 야마토 슈고大和守護도 겸직하게 되어, 츠츠이筒井 / 이도井戶를 위시한 호족들을 막하에 두었다.

  그 해 7월 3일에 있었던 임관식에서 빗츄노카미備中守로 임관되고, "하라다原田" 성씨를 받았다. 텐쇼 4년(1576), 야마토 / 야마시로 부대를 이끌고 혼간사本願寺를 공격, 5월 3일, 미츠데라三津寺 공략에 실패하고 전사했다.   


  후와 미쓰하루不破光治(생몰년미상) 카와치노카미

  미노 출신. 노부나가에게 항복한 건, 에이로쿠 10년(1567) 무렵일까? 에이로쿠 11년 7월,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영접하는 사신으로서 에치젠越前에 파견되었다. 입경 후, 노부나가 호위 기마무사로서 각지를 전전. 텐쇼 3년(1575) 9월, 삿사 나리마사 / 마에다 토시이에와 함께 에치젠 2군을 하사받아,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의 감시를 명 받았다. 이후 카츠이에의 군단에 속하여, 주로 호쿠리쿠 방면에서 활약. 시즈가타케 전투 후,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여 영지를 보전했으나, 얼마 안 가 죽은 것 같다.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1538 ~ 1599) 마타자에몬

  이른 시기부터 노부나가를 섬기며, 에이로쿠 년간에는 아카호로슈赤母衣衆에 선발되었다. 에이로쿠 12년(1569), 노부나가의 지시로 가문을 승계하여, 오와리 아라코 성주荒子城主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호위 기마무사로 각지를 전전했으나, 텐쇼 3년(1575) 9월, 삿사 나리마사 / 후와 미쓰하루와 함께 에치젠 2군을 하사받아, 시바타 카츠이에의 감시역을 명 받았다. 이후, 카츠이에의 군단에 소속되어 호쿠리쿠 방면에서 활약했다. 텐쇼 9년(1581) 노토能登 지방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즈가타케 전투賤ケ岳の戰い에서 히데요시와 내통, 싸우지도 않고 전선을 이탈했다. 이후 히데요시에게 중용되어, 만년에는 도요토미 정권의 5다이로五大老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미즈노 노부모토水野信元(생년미상 ~ 1575) 시모츠케노카미

  타다마사忠政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외삼촌에 해당한다. 오와리 오가와 성주緖川城主로, 오와리에서 미카와에 걸쳐 있는 영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텐분(1532 ~ 1555) 말년부터 노부나가에 복속하여, 이마가와 군今川軍과 여러 번 싸웠다. 에이로쿠 4년(1561) 오다 / 도쿠가와 연합을 주선한 것이 이 노부모토였다.

  아네가와 전투 / 나가시마 공략전 등에 종군. 미카타가하라 전투三方原の戰い 때는 이에야스를 구원하기 위해 원군으로 파견되었다. 노부나가 가신들 중에서는, 후다이(譜代, 특정 가문을 대대로 섬긴 신하들) 중신들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특이한 존재. 텐쇼 3년(1575) 12월, 다케다 씨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아, 27일,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이에야스에게 살해당했다. 사쿠라 노부모리佐久間信盛의 참언에 따른 것이라고 하나, 진상은 명확하지 않다.


  모리 나가히데毛利長秀(생년미상 ~ 1593) 카와치노카미

  모리 히데요리毛利秀賴라고도 한다. (역주 : 원래라면 노부나가의 주군 가문이었을) 시바 씨斯波氏가 남긴 아들이었다고 한다. 에이로쿠 3년(1560)의 오케하자마 전투桶狹間の戰い 이후로 노부나가의 신하로서 활약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후, 아카호로슈의 일원이 되었다. 노부나가의 호위 기마무사였으나, 텐쇼 2년(1574) 무렵부터는 노부타다의 군단에 속하였다. 텐쇼 10년(1582)의 다케다 공격 때도 노부타다 밑에서 종군하여, 타카토오 성高遠城 공성전 등에서 활약.

  전후, 시나노 지방의 이나伊奈 1군을 하사받았으나, 혼노사 정변에 의해 영지를 포기하고 본거지로 돌아갔다. 그 후는 히데요시를 섬겼다. 


  모리 요시나리森可成(1523 ~ 1570) 산자에몬

  미노 출신이라고 하나, 코지 년간(1555 ~ 1557) 부터 노부나가의 신하로서 활약하였다. 노부나가가 입경하였을 때는 이미 부대 지휘관 중 한 사람이었다. 입경 후, 교토의 정치에 관여하였으며, 겐키 원년(1570) 5월에는 오미 시가志賀 / 우사 산성宇佐山城을 맡게 되어, 시바타 카츠이에 / 사쿠마 노부모리 / 나카가와 시게마사와 함께 비와호琵琶湖 남쪽 강변을 지켰다. 그 해 9월 20일, 아사쿠라 / 아자이 연합군에게 우사 산성을 공격받아, 방어전에 힘썼지만 전사하고 말았다. 


  모리 나가요시森長可(1558 ~ 1584) 카쓰조

  요시나리의 장남. 아버지가 전사한 후, 13세의 나이에 가문을 승계하여, 미노 카네야마 성주兼山城主가 되었다. 노부타다 군단에 속하여, 엣츄 / 셋츠 등에서 싸웠다. 텐쇼 10년(1582) 2월, 다케다 공격에서는 선봉이 되어 활약. 전후 시나노 북부 4군을 하사받았으나, 혼노사 정변에 의해 (영지를 포기하고) 미노로 돌아갔다. 코마키 전역 때에는 히데요시 편에 붙어, 텐쇼 12년(1584) 4월 9일, 나가쿠테 전투長久手の戰い에서 전사했다.


  야나다 히로마사梁田廣正(생몰년미상) 사에몬타로, 베츠키 우콘다유

  오와리 출신. 야나다 데와노카미梁田出羽守의 아들? 겐키 원년(1570) 6월, 오다니 성에서 귀진할 때, 삿사 나리마사 / 츄죠 쇼겐中條將監과 함께 후미부대를 맡았다. 이 시기에는 아직 호위 기마무사로, 소부대의 지휘관에 지나지 않았다. 한 때는 오와리 부대尾張衆로 노부타다 군단에 속해있었던 것 같으나, 텐쇼 3년(1575) 7월 3일의 임관 의식에서는 우콘다유右近大夫에 임관되고, "베츠키(別喜, 戶次)" 성씨를 받았다. 

  그리고 그 해 8월, 에치젠 잇키 토벌 후, 카가加賀 지방 평정을 명령받고 히키야桧屋 / 타이쇼지 성大聖寺城을 거점으로 삼았다. 이 때 카가 지방을 영지로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평정전에 실패. 다음 해 소환되어, 오와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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