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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오다 군단》노부나가 가신 인명록 (1) ┣ 激鬪 織田軍團 (完)



   이 글은 (舊)《歷史群像シリ-ズ 20 激鬪 織田軍團》의 권말에 수록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주요 신하들을 망라한 간략한 인물열전들의 모음집으로, P. 198 ~ 203에 수록된 글입니다. 필자는 타니구치 카츠히로谷口克廣 씨(1991년 당시 코우지야糀谷 중학교 교사). 오다 노부나가 관련 전문가 중 한 사람인 타니구치 씨가 집필했기 때문에, 위 서적이 1990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봐도 시대에 뒤쳐진 내용이 별로 없으므로 이번의 기회에 올려보려고 합니다. 신분에 따라 총 6편에 걸쳐서 올릴 예정이네요. 


  일족들一門衆

  초기에는 노부나가의 뒷방패가 되어준 숙부 노부미쓰信光 / 동생으로 가문 계승을 둘러싸고 싸운 노부카쓰(信勝, 노부유키信行) 등이 있으나, 모두 코지 년간(1555 ~ 1557)에 사망했다. 여기에서는 노부나가가 입경한 이후에도 활약한 자들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1557 ~ 1582) 기묘마루, 칸쿠로, 아키타죠노스케, 산미츄쇼

  노부나가의 장남. 첫 출진은 겐키 3년(1572) 7월. 텐쇼 원년(1573) 7월 무렵부터 오와리尾張의 지배권 일부를 분담하는 형태로 노부타다 군단이 성립되었다. 이후, 주로 동 미노東美濃에서 다케다武田를 억누르는 역할을 맡았으나, 텐쇼 3년(1575) 11월 28일 노부나가로부터 가문을 물려받아 기후 성을 하사받았다. 마쓰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 토벌 / 아리오카 성有岡城 공성전 등에 종군. 다케다 공략전에선 총대장으로서 출진. 아버지 노부나가는 머지않아 텐카비토天下人의 지위도 물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혼노사 정변本能寺の變 당시, 니죠고쇼二條御所에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키타바타케 노부카쓰北畠信雄(1558 ~ 1630) 챠센, 산스케, 츄쇼

  노부나가의 차남. 에이로쿠 12년(1569) 가을에 키타바타케와 강화를 맺었을 때, 양후계자로서 보내졌다. 텐쇼 3년(1575) 6월 이후 키타바타케 가문 당주가 되었다. 다음 해(1576) 11월, 양아버지를 비롯한 키타바타케 일족을 멸살하고 이세 남부 일대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그 후, 유격군 중 하나로서 각지를 전전. 텐쇼 7년(1579) 9월에는 멋대로 이가伊賀 지방으로 출병하였다가 패배하여, 아버지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2년 후 다시 총대장이 되어 이가를 평정, 3군을 하사받았다.

  혼노사 정변 후, 아버지의 복수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오와리 지방을 가봉받는 데 그쳤다. 코마키의 역小牧の役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함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 맞서 싸웠으나, 결국 히데요시에 종속되었다. 텐쇼 18년(1590) 영지 교체를 거부하였다가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 영지를 몰수당한 후, 시모츠케下野로 유배되었다.


  칸베 노부타카神戶信孝(1558 ~ 1583) 산시치로

  노부나가의 3남. 에이로쿠 11년(1568) 북 이세의 호족인 칸베 토모모리神戶具盛의 양후계자가 되었다. 겐키 2년(1571) 1월 가문을 계승. 이후 형 노부타다를 따라 각지를 전전했으나, 생모의 집안이 신분이 낮았기에 같은 해에 태어난 형 노부카쓰에 비해 관위 / 영지 등의 면에서 냉대받고 있었다.

  그러나 텐쇼 10년(1582) 5월, 시코쿠四國 정벌군의 총대장으로 발탁되어 사누키讚岐 지방의 지배를 약속받았다. 혼노사 정변이 발발하면서 이는 수포로 끝났으나, 히데요시와 함께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죽였다. 그 후, 히데요시의 전횡을 보고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와 결탁, 히데요시와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오와리 우쓰미內海의 오오미도우사大御堂寺에서 할복자살했다.   


  츠다 노부히로津田信廣(생년미상 ~ 1574) 사부로고로, 오오스미노카미

  노부나가의 서출 형. 텐분(天文, 1532 ~ 1555) 연간부터 미카와三河 안죠 성安城城 성장으로서 활약. 이마가와今川의 포로가 되어, 오다 측에 인질로 있던 마쓰다이라 타케치요(松平竹千代,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교환되었다. 오다 가문을 이은 이복동생 노부나가를 섬겼으나, 코지 3년(1557) 무렵 사이토 요시타츠齋藤義龍와 내통하여 키요스 성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민 적도 있었다.

  그 후에는 딴 마음 없이 노부나가를 섬기며, 텐쇼 원년(1573)에 노부나가와 쇼군 요시아키義昭가 충돌했을 때, 노부나가의 대리로서 화의를 맺었다. 그 다음 해, (이세伊勢) 나가시마長島 공략전에 종군하여 전사했다. 


  오다 노부카네織田信包(1543? ~ 1614) 산쥬로, 코즈케노스케

  노부나가의 동생. 에이로쿠 11년(1568) 북 이세의 호족 나가노 씨長野氏의 가문을 이어, 안키 군奄藝郡 우에노 성주上野城主가 되었다. 유격군단을 이끌고 각지를 전전, 텐쇼 9년(1581) 9월의 이가 공략전 이후에는, 이가 1군을 가봉받았다. 당시 노부타다 / 노부카쓰에 이어 오다 일족들連枝衆 중 서열 3위. 혼노사 정변 이후에는 언제나 히데요시의 편을 들어, 조카였던 노부타카 / 노부카쓰를 차례로 적으로 돌렸다. 그 때문에 히데요시의 우대를 받아, 종 3위 사코노에콘츄쇼左近衛権中将까지 승진했다.


  츠다 노부스미津田信澄(1557? ~ 1582) 고보, 시치베에

  오다 노부카쓰(노부유키)의 아들. 텐쇼 2년(1574)부터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노부나가의 측근 역할을 맡고 있었다. 텐쇼 6년(1578) 이후 오미近江 오미조 성주大溝城主가 되었다. 유격군단을 이끄는 무장으로서 각지를 전전하면서도, 노부나가의 측근으로서의 일도 맡고 있었다. 텐쇼 8년(1580) 혼간사가 오사카에서 퇴거한 이후로는, 오사카에 상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감한 성격으로 노부나가의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언제나 오다 일족들 중에는 서열 5위. 텐쇼 10년(1582) 5월, 노부타카를 따라 시코쿠 정벌에 나서기 직전에 혼노사 정변이 발발. 그의 아내가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이라는 이유로 의심암귀에 빠진 노부타카들에 의해 오사카 성 안에서 살해당했다.



  가로들家老衆
 

  노부나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 노부히데信秀에게서 나고야 성을 양도받았을 때, 4명의 숙로宿老가 노부나가에게 붙여졌다. 네 숙로는 첫째가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 둘째가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 셋째가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靑山與三右衛門, 넷째가 나이토 카츠스케內藤勝介였는데, 이 중에서 노부나가가 입경할 때까지 건재했던 건, 하야시 한 사람 뿐이었다.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생몰년미상) 신고로, 사도노카미

  "미치카쓰通勝"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오류이다. 노부나가가 어린 시절부터 필두가로였으나, 코지 2년(1556)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카쓰(노부유키)를 옹립하기 위해 노부나가와 싸웠다. 사면되어서 가로의 위치를 유지하긴 했으나, 24년이 지난 텐쇼 8년(1580) 그 때의 죄에 의해 돌연히 추방당했다. 텐쇼 3년(1575) 11월 이후 오다 가문의 가독이 양도된 이후로는 노부타다에게 배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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