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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만화가 故 미즈키 시게루 인터뷰 (下) ┣ 雜誌 歷史群像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1922.03.08 ~ 2015.11.30)

  만화가 / 요괴 연구가. 1922년 톳토리 현 사카이미나토 시 출생. 1943년 소집당해 라바울(뉴브리튼 섬)로 출정했다 폭격에 의해 왼손을 잃었다. 1946년 일본으로 돌아온 뒤엔 무사시노 미술학교 -> 카미시바이 업계 -> 대본만화를 거쳐 만화가가 된다. 1966년《텔레비 군》으로 제 6회 코단샤 아동 만화상 수상. 1990년《쇼와사》(전 8권)로 제 13회 코단샤 만화상 수상. 1991년 자수포장紫綬褒章을 수상. 대표작으로는《게게게의 키타로》《캇파 산페이》《악마 군》이 있으며, 저서는《미즈키 시게루 일본 요괴대전》《논논 할머니와 나》등 다수. 그런 한편, 전쟁 중의 체험에 기초한 작품으로《딸에게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전기》《미즈키 시게루의 라바울 전기》등이 있다.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1호(2000년 봄호) 140~145쪽의 기사인, 엔도 타카시遠藤隆 씨가 집필하고 스기모토 야스오杉本保夫 씨가 사진을 찍은(역자 : 집에 스캐너가 없어서 사진은 옮기지 못했습니다)《인터뷰 미즈키 시게루》를 번역한 것으로,《게게게의 키타로》등의 만화로 유명한 미즈키 시게루 씨의 전쟁 체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에 대해 미즈키 씨가 집필한 만화(각시수련님 번역)를 보고 느낀 것이 있어 제가 갖고 있는 잡지를 펼쳐서 옮겨 봤습니다.


《군대에서는 부대가 전멸한 건 문제되지 않지만, 소수가 살아남으면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상관들의 골치를 계속 썩인 미즈키 씨였으나, 언제나 만사가 그렇게 편히 흘러간 건 아니었다.

  그 "사건" 은 미즈키 씨를 포함한 10명의 병사들이, 적군이 상륙하는 모습을 탐지하기 위하여 경계근무를 맡아 파견된 장소에서 일어났다. 부대를 출발한지 약 3일 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미즈키 씨 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망원경으로 해안을 감시했다. 특히 밤에는 어둠을 타고 적이 내습해 올 위험이 컸기에 1시간 간격으로 바다를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날, 마침 동이 틀 무렵에 미즈키 씨의 경계근무 차례가 돌아왔다. 

  바다를 바라봐도 여전히 적의 그림자는 없었다. 미즈키 씨는 여느 때처럼 망원경을 숲 속으로 돌려서는 앵무새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동안에 새벽 시간이 눈 앞에 다가왔다. 새벽이 되면 사실상 적이 습격할 위험은 사라진다. '슬슬 동료들을 깨워야겠다.' 고 생각하면서, 미즈키 씨는 앵무새를 계속 관찰했다.

  "결국 훗날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들이 저기서 경계를 서고 있을 땐 이미 적군이 뒷산에서 매복을 마치고 공격준비까지 해 놓은 후, 언제 공격할지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거꾸로 감시당하고 있던 거지요.

  그러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모두가 교대로 경계를 선 후, 마지막으로 제가 경계를 섰습니다. 그 때 저는 바다가 아니라 앵무새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죠. 그들도 
'도대체 뭐 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웃음) 

  적의 기습은 새벽이 되기 직전에 시작되었다. 여느 때처럼 해뜨기 전의 경계근무를 마친 미즈키 씨가 복귀하려고 한 시각이었다.

  "호드득 호드득, 어딘가에서 장난감 총을 쏘는 듯한 건조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한데 이거... 하고 생각한 순간, 그게 자동소총 소리라는 걸 꺠닫고 모두를 깨운 후, 저도 황망히 도망쳤습니다."

  훗날 판명된 바에 의하면 이 기습으로 인해 아군은 사실상 궤멸상태에 빠졌다. 미즈키 씨는 방향도 무엇도 알지 못한 채로, 어둑어둑한 정글로 도망쳐 헤매었다.

  내일은 내 차례, 우연의 수레바퀴에 의해 재수없게 희생된 자와 살아남은 자를 가르는 운명의 갈림길은, 언제나 주위에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게 전쟁의 현실이다. 사실, 훗날 미즈키 씨는 자고 있는 동안 폭격을 받아 왼쪽 팔을 잘라내게 되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재수좋게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인 상황에서 미즈키 씨는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열대 정글 속을 헤매었다. 훗날의 "진흙 벽(누리카베)" 의 모델이 된 요괴와 조우한 것도 이 때의 경험으로, 무엇보다 식량과 물, 특히 마실 물을 전혀 발견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남방의 정글이라고 하면 먹을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처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채집할 법한 장소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도중에 있던 물웅덩이에서 고작 한 마리이지만, 새우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혹시 환상이 아닐까 싶었지만, 정말로 새우였습니다.

  그런데 그 새우는 반투명색이었지요. 잡아서 보니 반대편이 투명히 보였습니다.
(웃음)

  바위의 움푹 패인 장소에 고여 있는 물이었기에 깨끗했고, 날것이라도 괜찮겠지 싶어서 입에 넣은 건 기억합니다만, 그 맛이 기억나지 않네요. 단지 '오랫만에 동물성 단백질을 먹었다' 든가, '뭔가를 먹었다' 하는 실감은 묘하게 남았어요. 사실상 껍데기만 빼면 살은 없다시피한 새우였는데 말이죠."

  미즈키 씨는 전후 25년을 기념하여 이 체험에 대해 서술한 수필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지었다.

【 그로부터 5~6시간 정도가 지나 똥이 나왔다. 살펴보니 아까 먹은 새우가 갈색으로 변하여 몸 밖으로 나왔을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흡수할 만한 어떤 양분도 없었던 것이리라. 먹은 분량과 같은 분량이 다시 나온 듯 했다. 】

  전장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온갖 생물들이, 흡수할 만한 어떠한 양분도 없이 유린되어 간 것이다.

  상관에게 얻어맞고 또 얻어맞고도 고쳐지지 않아 주변의 일부 사람들에게는 기인 / 괴짜로 여겨지던 미즈키 씨가 지금까지도 그 후로도 없었던 분노에 휩싸인 건, 이 정글을 일주일 만에 간신히 빠져나와 원대에 복귀했을 때였다.

  "적의 습격을 받은 10명 중에서 최종적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던 건 저를 포함해 2~3명이었습니다만, 제가 돌아오니 상관이 꾸짖는 거에요. "왜 혼자서 돌아왔냐. 동료들이 죽었는데 왜 너만 살아 돌아온 거냐. 그리고 천황 폐하께서 하사하신 총(38식 보병총)을 잃어버린 건 또 뭐냐" 고 갈궜습니다.

  분명 총에 녹이 스는 것만으로도
"천황 폐하께서 내려주신 총을 소홀히 다뤘다." 며 반 죽을 정도로 패는 곳이니 평소에는 소중히 다룹니다만, 실제 전장에 맞닥뜨리면 역시 목숨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건 (그 상황에선)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하사관들 중에서는 최후까지 이런 데 집착하는 인간이 많아요. 그런 점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런 데다 그 때 저는 일주일 간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간신히 돌아왔단 말입니다. 거기에다 습격받을 때는 깜깜한 곳에서 자동소총이 난사되어 날아왔기에, 아무 생각없이 도망쳐 온 겁니다. 그걸 보고 왜 살아서 돌아왔냐고 책망하였기에 정말로 놀랐습니다.


  결국, 군대의 시스템이란 건, 부대가 전멸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소수의 생환자가 나오면 문제가 되는 거란 말이죠. "살아서 잘 돌아왔다" 든가 "수고했다" 곤 말하지 않아요. 대단히 왜곡된 시스템이죠. 이 때문에 얼마만큼의 병사들이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었겠습니까."

 
《정신이 들고 보니 부상당해 있었습니다. 팔을 절단해 준 건 군의관이긴 하나 안과의사였죠》

  목숨만 건져 생환한 미즈키 씨는, 그 직후 말라리아에 걸려 매일 42도의 고열로 신음했다.
 
  "말라리아도 그다지 얕볼 수 없어요. 우선 몸이 맹렬하게 노곤해지는데 그래도 전장이니만큼 그다지 뒹굴거리고 있을 순 없었죠. 몸이 건강하면 밖으로 관찰하러 다니면 될 텐데, 말라리아에 걸리면 자고 있을 수밖에 없기에 허락되지 않아요. 말라리아는 조용히 정양하는 게 제일이니까요."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 이번엔 폭격을 당하여, 왼 팔을 잃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미 부상당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취도 뭐고 없었고 수술도구도 없었기에, 군의관이 흔히 말하는 다용도 나이프 같은 작은 단검으로 절단해 주었죠. 군의관이라곤 하지만 안과의사였는데.(웃음)

  사람들로부터 "출혈을 대량으로 일으켰기에 의식도 몽롱했을테고, 마취가 없어도 그다지 아픔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닙니까?" 하는 질문도 받아 봤습니다만, 역시 아팠습니다. 특히 지혈할 때가 굉장히 아팠지요."

  왼팔을 잃어, 본래라면 비전투원의 입장이 되어야 했을 미즈키 씨였으나, 라바울은 전장의 최전선이다.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우선 적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곤 하지만, 방법은 남아 있는 다리와 오른팔을 써서 열심히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어느 날 미즈키 씨는 토인(土人, 미즈키 씨는 현지인들에 대해 친애의 정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 땅에 뿌리박은 사람들 / 대지의 정령과 같은 사람들이란 의미에서 습관적으로 토인이라 부른다. 이 원고에서도 그대로 사용하였다) 들의 부락으로 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적 항공기의 기총소사를 받았다. 왼팔을 잃은지 얼마 안 되었기에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아, 도망을 치려는 데도 도로를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사격의 표적이 되어 끈질기게 쫓겨다니다가, 밸런스를 잃고 팍 쓰러지자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적기의 추격이 멈추었다.  

  "그대로 길을 걸어가면 커다란 빵나무가 벼랑 위에 서 있고, 그 아래에 산울타리가 쳐저 있어서 실로 느낌이 좋은 부락이 되었지요. 그 곳이 저의 소중한 친구가 된 토페트로(=투라이 족)의 부락이었습니다. 저는 토페트로나 다른 종족 사람들과도 친해져, 그 곳을 다니는 동안에 몸도 계속 회복되고 건강을 되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또 걸리는 등, 일진일퇴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종전을 맞았습니다. 상관으로부터 집합을 명령받아 광장에 가 보니,【 포츠담 선언을 수락했다 】더군요.

  그 말이 일본이 이겼다는 말인지 졌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든 전쟁이 끝났다는 게 기뻤습니다. 종전 후, 즉각 "토마" 라는 포로수용소로 옮겨가서야 비로소 일본이 졌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결국 이 토마라는 곳에서 2~3개월 지내게 되었는데, 매일 같이 토페트로들이 있는 곳에 놀러갈 수도 있었고, 라바울에 온 이후 처음으로 얻은 천국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우리들이야 괜찮아요. 그러나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에게는 한恨을 전할 수단도 없지요.》

  "결국 전쟁이란 건, 시작해 보면 실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은 알게 되지요. 그러나 막상 시작되어 버리면 쉽게 끝나지 않는 게 전쟁입니다.

  대체로 일본 같은 경우, 저는 러일전쟁에서 이겨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힘을 과신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전쟁은 한 몫 벌 기회' 라는 사고가 정부 중핵이나 실업계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말하자면, 전쟁을 수행하는 게 국익으로 이어진다는 일그러진 발상이 태어났죠.

  우리들이야 일단 살아 돌아왔으니 괜찮아요. 큰 부상을 입거나 고통스런 질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고, 한도 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전쟁터에서 죽어버린 사람들에게는 한만이 남을 뿐,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없지요. 방도가 없죠.

  과거에 전장에서 부하를 떄리고, 죽어버리라고 강요한 사람들도 전후가 되어 만나보면 "그 때는 젊었으니까..." 하면서 변명하곤 합디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이제 극히 일반적인 사람들로 돌아왔기에 이 쪽에서도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런 보통 사람들이 전쟁이 터지면 광신적으로 변한다는 사실, 그것이 무섭죠."

  미즈키 시게루 작품에 등장하는 서민은, 때때로 회사의 상사나 직장 선배 같은 사람(이들은 대체로 가정에선 아내에게 휘둘릴 법한, 사실은 마음 약한 소시민이 으스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들로부터 얻어맞곤 한다. 그 때의 효과음은 "ビビビビビ" 일 경우가 많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얻어맞을 때의 소리인데, 이 효과음은 아마 군대시절의 미즈키 이등병이 고참 병사나 장교들에게 얻어맞을 떄의【 느낌 】그 자체가 아닐까. "ビビビビビ" 하는 연발음에는 아마 미즈키 씨가 이러저러한 의미에서 쓰디쓰고 슬픈 체험을 했던 추억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나라의 의향을 거슬렀다느 것만으로【 역적國賊 】이라 불리던 시대에서, 얻어맞고 걷어차이면서도 마이페이스적인 삶을 관철해 온 미즈키 씨 개인의 강인한 삶은 미즈키 씨 자신이 인정하듯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의 시대에 청춘을 보내게 된 미즈키 씨들 세대의 발언량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미즈키 씨와 같은 분께 경청해야 될 말은 아직도 셀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다.



덧글

  • oldman 2014/11/07 19:55 # 답글

    '우리들이야 일단 살아 돌아왔으니 괜찮아요. 큰 부상을 입거나 고통스런 질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고, 한도 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전쟁터에서 죽어버린 사람들에게는 한만이 남을 뿐, 그걸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없지요. 방도가 없죠'

    이 문장이 가슴을 깊이 울립니다.

    좋은 번역글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3인칭관찰자 2014/11/07 23:30 #

    부족한 번역글 인상 깊게 읽어주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
  • 진냥 2014/11/07 22:44 # 답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본 제국의 천황제 침략주의를 고착시켜 패망으로 이끌게 되었다... 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당사자였던 작가의 이야기로 읽게 되니 더욱 각별하군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역사의 교훈을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언제 배울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14/11/07 23:30 #

    저도 진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천황제 침략주의란 말이 딱 적절하군요. 내부모순을 바깥으로 돌리고 전쟁에서 활로를 찾아 온 병영국가 일본제국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도저히 그렇게 침략국가로 비약할 순 없었겠지요.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 2014/11/08 19: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09 01: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瑞菜 2014/11/09 18:38 # 답글

    특집 드라마로 꾸민 기타로가 본 옥쇄 - 미즈키 시게루의 전쟁 이 있습니다. 찾아보면 나오더라고요.
    예전에 미즈키 시게루가 그린 전쟁 시절의 자전적 만화 내용과, 그 때의 상황을 다룬 드라마지요.
    보다보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인 부분의 대화가 와 닿는데, 이건 내용을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을 못하겠고.....
  • 3인칭관찰자 2014/11/10 18:32 #

    검색해 보니 카가와 테루유키 주연으로 2007년에 방영되었다고 나오네요. 일본에서 방영하는 TV 방송은 저희 집 케이블에서 채널 J랑 NHK가 안 나오게 된 이후론 잘 보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이런 드라마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 明智光秀 2014/11/10 03:42 # 답글

    저도 그 위안부 만화를 느낌표 있게 봤는데, 이 글까지 접하게 되니... 다시 느낌표 입니다.
    감사.
  • 3인칭관찰자 2014/11/10 18:42 #

    그 위안부 만화가 아니었다면 저도 이 글을 못 알아봤을 것이고, 따라서 번역할 일도 없었지 싶습니다. 옛날 이후로 아케치님께는 거의 받기만 했을 뿐이기에 이 번역글이 얼마나마 '느낌표'가 될 수 있었다면 기쁘게 생각합니다.
  • healpos 2014/11/13 14:42 # 삭제 답글

    번역 링크도 잘 봤습니다. 일본에도 저런 분이 계시다는게 흥미롭네요. 아;; 저번의 번역 쇼와사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지......
  • 3인칭관찰자 2014/11/13 20:06 #

    저런 분들이 일본 내에서 다수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해도 될 정도로 소수인 건 아니니까요.
  • 으허헝 2018/11/25 18:48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 3인칭관찰자 2018/11/25 19:52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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