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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공지(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공지



  제 이글루스 블로그에 와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정치적인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지금은 사실상 역사 관련 이야기를 주로 번역하는 블로그를 굴리고 있습니다.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하므로 링크 신고나 포스팅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분께선 여기에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1. 정치성향은 보수우파입니다만, 옛날 같은 확고한 투쟁심이 없는 관계로 뉴스비평 밸리에 어울릴 정치 포스트는 삼갑니다.

  2. 포스팅은 주로 역사 밸리에 올리는 번역글이며, 종종 플레이하던 게임(주로 콘솔) 관련 포스트도 올리곤 합니다.

  2-1. 이미 출시된 지 시간이 많이 지나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 24 등에서 정석적인 방법으로 신간을 구할 수 없는, 주로 절판된지 오래된 일본 역사서적이나, 시간이 지나 구하기 어렵게 된 일본 역사잡지 기사 위주로 번역 포스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어로 정식 번역본이 나와있는 서적의 원서 / 일본 서점에서 판매되어 우리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서적은 엔간하면 번역하지 않을 것이며, 약간이나마 손을 대는 경우가 있더라도 책을 소개하는 정도 이상의 번역은 하지 않을 겁니다. 2018년 이전에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저자들의 저서와, 2019년 이후로 원작자 별세 70년이 지나 새로이 저작권이 해금될 책은 예외로 하겠습니다만, 국내 번역자분들의 손을 많이 거친 메이저한 작품들은 어쩌면 제 쪽에서 피하게 될지도?

  2-2. 일본의 무료 전자도서관인 아오조라 문고의 글을 읽고 있으며, 때로는 번역하기도 합니다.

  2-3. 최근에 일본 위키피디아 눈팅을 자주 하는 만큼, 그곳의 항목을 번역하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2-4. 콘솔 게임 애호가입니다만 근년 들어 시력 관계상 PS Vita나 3DS같은 주력 휴대용 게임기는 옛날과 달리 플레이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PS Vita 켜 본지 4개월은 더 된 것 같군요. ㅜㅜ 비슷한 이유로 스마트폰 게임도 잘 플레이하지 않게 됐습니다.

  3.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팬입니다.

  4. 가능하다면 댓글에는 답글로 답해드리고자 하나,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5. 제 포스트를 퍼가시는 건 자유입니다만, 퍼가실 때 그 출처를 적어 주셨으면 합니다.
 

독서201005 -《당신 속의 이상심리》中 '미시마 유키오' 독서



  이 글은 일본의 유명 정신과 의사분인 오카다 다카시岡田尊司 님이 2012년 1월 일본 출판사 켄토샤幻冬舎의 신서본 레이블로 출간하셨던《あなたの中の異常心理》(켄토샤신서幻冬舎新書 244)의 내용 중,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를 언급하신 몇몇 부분만을 번역한 글입니다.

  위 책은 2020년 현재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일본에서 팔리고 있는 책이므로 더 이상의 번역 포스트는 올리지 않으려 하며, 이 포스팅의 내용도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며,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엔 글을 내리려 합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완벽주의(p.21~22)

  -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가 강렬한 완벽주의자였다는 건 한 단어 한 문장을 허투루 쓰지 않는 그 완벽하다 싶기까지 한 문체와, 극도로 완성도가 높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그 성격과 라이프스타일 역시 완벽주의가 만연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시마는 약속約束을 중시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아무리 일거리가 쌓여 있어도 마감기한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시간 엄수에도 엄격하여, 자신이 지각하는 일도 없었지만 남이 지각한다 싶으면 15분 이상을 기다려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미시마가 아직 독신이었을 때, 교제하고 있던 여성이 식사 약속에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건【 천천히 식사하십시오. 】라는 메시지뿐으로, 미시마는 식사비용을 지불하고 이미 자리를 떴다고 했다. 여기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한 멸시와 풍자적인 대응이 감지된다.

  작곡가 마유즈미 토시로黛敏郎와 오페라 작업을 할 때도 마유즈미가 기한까지 작곡을 매듭짓지 못했기에, 마유즈미 쪽에서 사과하고 상연시기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시마는 그 작품의 상연 자체를 없던 일로 했을 뿐 아니라, 얼마 후 마유즈미와 절교했다. 최초에 했던 예정대로 되지 못한다면 타협까지 하면서 이를 실행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아예 백지화한 것이다.

  나중에도 다루겠지만, 이러한 완벽주의는 미시마를 자결이라는 래디컬하고 처참한 최후로 내몬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성공의 절정에서 왜 죽음을 선택했나(p.46~50)

  - 완벽주의자는 노력가다. 이상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무슨 일에서든 뭇 사람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이런 면이 건전하게 기능하여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게끔 돕는다. 그러나 한번 좌절하기 시작하면 완벽함을 추구했던 완벽주의자의 욕구는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한다. 완전 무의미한 짓을 벌이거나, 결과적으로 생활을 막다른 길로 몰아가서 스스로를 괴롭힐 무언가에 노력을 꼴아박는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은 발을 빼기 힘들어한다. 그러다 때로는 노력을 바쳤던 그것이 자신을 상처입히고 파멸로 몰아가게 되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이러한 타입의 사람들에겐, 무슨 일이 되었든 발을 빼지 않고 노력을 다한다는 그 자체가 삶의 증표로 기능한다. 더러는 자신의 죽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를 완수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들에겐 세부적 실패나 기대에서 벗어난 사태조차도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되기 쉽다. 완벽주의자들은 인생이 오르막을 그리고 있을 땐 그 강점을 충분히 발휘해 순풍에 돛 단 듯 성공의 계단을 달려 올라가나, 인생이 하강곡선을 그리게 되면 연약함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다.

  세간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성공의 절정기를 누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 어이없이 자살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자주 확인되는 건, 완벽주의가 역류하는 양태다.

  그 전형적인 케이스로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사건을 거론할 수 있으리라. 미시마의 처절한 최후는 그의 완벽주의가 없었다면 일어날 리 없는 사건이었다. 이노세 나오키猪瀬直樹 씨의《페르소나 미시마 유키오전ペルソナ 三島由紀夫伝》에 따르면, 미시마는 천재天才라는 시각만이 세간에 선전되었으나, 기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努力家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

  대장성(大蔵省, 재무성)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근무를 마친 후 새벽 2시까지 집필을 하다,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시 아침 일찍 출근하는 생활을 보냈다. 수면시간은 고작 3~4시간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명성을 떨친 이후에도 그는 결코 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야심찬 작품을 만들기 위해 씨름헀다. 그것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단 한 번도 마감기한을 어기지 않았고, 아무리 술판에서 달아올라도 밤 10시가 되면 칼같이 일어섰다. 극도로 금욕적이고 자기제어에 철저한 생활을 살았던 것이다.

  미시마는 대장성을 9개월만에 사직하고, 오리지널 장편소설《가면의 고백仮面の告白》에 작가로서의 명운命運을 걸었다. 동성애와 사디즘이라는 성적 도착에 대한 고백서였던 이 소설은 미시마의 기대와는 반대로 간행 당초엔 눈곱만큼도 팔리지 않아, 창백해진 미시마가 대장성을 사직했던 걸 후회하게 만들 정도였다.

  간행으로부터 반 년쯤 지난 후 서서히 주목을 받으며 드디어 재판이 이루어졌다. 신쵸문고新潮文庫에 작품이 수록된 이후부터 판매량은 일거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로부터 미시마의 작가생활은 완연히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워졌다. 다음 장편작《사랑의 갈증愛の渇き》이 7만 부, 29세 나이에 간행한《파도소리潮騒》는 발매 직후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화화된 작품들도 크게 히트하여 미시마는 국민적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31세 때 간행된《킨카쿠사金閣寺》는 미시마의 최고걸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뒤이어 출간된《너무 길었던 봄永すぎた春》도 15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미시마는 혼신의 대작을 만들기 위해 3년 세월을 쏟아부은 대장편《쿄코의 집鏡子の家》을 세상에 내었다. 이 소설도 10만 부를 판매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비평가들의 평가는 미시마 작품 최초로 혹독하였다. 미시마가 최초로 좌절을 맛본 셈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순조로웠던 미시마의 운기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그 다음 발표한《연회가 끝난 뒤宴のあと》는 前 외무대신 아리타 하치로有田八郎 씨로부터, "소설의 모델로서 이용되어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 며 소송이 제기되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미시마는 기사회생起死回生을 노리고 노동쟁의에서 소재를 딴 사회파 소설《비단과 명찰絹と明察》을 출간했으나 판매량은 신통찮아, 기대 미만의 숫자인 1만 8천 부가 팔리는 데 그쳤다. 미시마가 부진하고 있던 시기,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를 위시한 차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고, 판매량에서도 미시마의 그것을 압도적으로 제치기에 이르렀다. 30세 나이에 정점에 섰던 미시마도, 40세를 맞아 스스로의 조락凋落을 체감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시기부터 미시마의 마음 속에는 심히 고민하는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미시마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40세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러나 3년 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미시마가 아닌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였다. 자결하기 1년 전의 일이다. 미시마 본인은 "다음에 일본인이 받는다면, 그건 내가 아닌 오에일 거야." 라고 예언했다 한다.

  이미 미시마의 관심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극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40세를 넘긴 이후부터 4년의 시간은 완벽한 '죽음의 무대' 를 만들기 위해 바쳐진 세월이라 하겠다. 미시마는 지극히 그답게 최후의 작품《풍요의 바다豊饒の海》최종부인 <천인오쇠天人五衰> 마지막 장 원고를, 자결 당일날 편집자에게 넘기도록 매듭지어 놓았다. 죽는 날까지 마감을 지킨 후,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인생의 막도 내려버렸다. 그 모든 것을 스케줄대로 관리했다는 점에서 미시마의 인생은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딱히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최고의 사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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